한동안 비어 있던 내 좌판 앞에 허리 굽은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선다. 할머니는 그냥 가자고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끈다.
“아녀. 내가 하나 사줄껴. 당신 이거 사고 싶어 했잖여.”하시는 할아버지께 할머니는“아이쿠. 아녀유. 돈두 없구먼유. 다 늙은사람이 구루무는 무슨 구루무. 내 괜히 해본 소리였구먼유.이 나이 되도록 안 발라도 잘 살고 있는걸유.”대답하시고는 내 옆 생선 파는 아저씨한테 다가선다.
“이 고등어는 얼마유? 짭짤한 거로 한 손만 주세유.”
하지만 할머니는 속주머니에 넣어둔 돈을 꺼내다 말고 “아이고. 아이들이 주고 간 천금 같은 오만 원이 이젠 이만 원밖에 안 남았네. 추석 때 주고 간 돈인데, 객지 나가 몸 상하며 벌어다 준 돈인데. 이렇게 쓰면 안 되는데.”하시며 벌써 토막 내어 담아놓은 고등어를 도로 내려놓고 일어선다.
생선장사 얼굴이 확 변하더니“추석 지난 지가 벌써 두 달이 넘어가는데 돈 오만 원 주고 간 것을 여지껏 들고 있어요? 참 어지간한 노인네네. 그럼 돈 삼만 원으로 두 달을 지냈다는 거여? 그자식도 누군지 대단하네. 요새 오만 원이 돈여? 이 토막난 고등어는 누구한테 팔란 말이요.”하고 소리치고 할머니는 머뭇거리는 할아버지 손을 놓고 굽은 허리로 혼자 앞서간다.
“나한테는 돈이 없어서. 미안하우. 미안하우.”
죄 지은 듯 더듬거리며 발길을 돌리는 할아버지 등 뒤로 생선장수 아저씨는 “에이, 재수없어.” 투덜대며 소금을 뿌리더니만 그래도 화가 안 풀리는지 봉지에 담은 고등어를 들고 쫓아가며 “영감님.” 하고 소리친다. 앞서가던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향해 거기 서 있지 말고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게 급하다.
덩달아 마음이 급해진 나는“아저씨. 제가 가지고 갈께요. 장사 끝나고 사갈려고 했는데 저 주세요. 할머니가 돈이 없으신 모양이네요. 그럴 수도 있잖아요.”하고 생선장수 아저씨를 달랬다.
할아버지는 못내 마음에 걸리는 듯 뒤를 돌아보시다가 나하고 눈이 마주쳤다. 난 가볍게 고개를 숙여 ‘걱정하지마세요.’하는 마음인사를 전했다. 오만 원을 갖고 두 달을 주무르고도 고등어 한 손 사기가 그토록 어려워 봉변을 당한 할머니의 마음을 되짚어보니 가슴이 아려왔다.
해가 넘어가고 장사 접을 준비를 하는데 오전에 할머니 손에 이끌려 갔던 그 할아버지가 내 앞에 서서 머뭇거리신다.
“어, 할아버지 다시 오셨네요. 무슨 일이세요?”여쭈니“애기 엄마. 집이 어디인가? 도회지 사시는가?”하신다.
“네. 왜 그러시는데요?”
“아까 그 고등어 애기엄마가 샀지요?”
“네. 제가 필요해서 산 거예요.”
“이거 내가 농사 지은 참깬데 참깨 사다 먹으면 이 참깨하고 고등어하고 바꾸면 어떨까. 염치없지만.”손에 들고온 비닐봉투를 펼쳐보이며 머뭇머뭇 말을 꺼내시는 그 표정에서 얼마나 많이 망설이며 한 걸음인지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세요. 그렇게 하세요. 그렇잖아도 깨 사야 했었는데. 잘 되었네요.”하자 할아버지 얼굴에서 민망함과 곤혹감이 사라지고 금세 환해진다.
“그런데 이 참깨 다 가져요?”
“그려. 그거 다.”하시고는 할아버지 눈길이 화장품에 가서 머문다.
“이거 할머니 갖다 드리세요. 세수하고 바르시면 돼요. 그리고 이건 할아버지 바르시구요.”하고 화장품 두 개를 건네니 아이고. 내건 관두고 우리 할망구 거나 주면 돼요. 그런데 그래도 되나? 내가 너무 염치없구먼.”하신다.
“아니에요. 이정도면 참깨 만 원어치도 넘어 보이는걸요. 할아버지도 가지고 가세요. 그래야 계산이 맞아요. 괜찮아요.”
“정 그러면 염치없지만 내 것도 우리 할망구 거로 바꿔주면 안 될까.”하며 웃으시는 모습이 눈물나도록 정이 넘친다.
할아버지 말씀대로 할머니 것으로 두 개 챙겨드리고 고등어도 넘겨드렸다.“조심해서 가세요. 할아버지.”하니 아까처럼 자꾸 뒤를 돌아보시며 그려. 그려유. 복받을껴. 복받을껴. 내 잘 쓸게요. 우리 할망구가 좋아하겠는걸.”하신다.
별반 팔지는 못했지만 오늘 만큼은 착한 일 했다 싶어 스스로에게 동그라미 백점을 주고 나니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 pp. 130∼132
굴다리 밑에 쥐약 파는 아저씨가 내 스카프를 주워들고 계신다. 그 옆으로는 빨래집게와 실타래 등속을 파는 아줌마, 눈만 빼꼼 내놓고 목도리 둘둘 감은 채 꽁꽁 얼다시피 한 감 몇 개 놓고 앉아 계시는 할머니가 보인다.
한 바퀴 둘러본 내 눈길이 닿은 곳은 연탄불 화덕 위에 얌전히 올라 있는 흰 가래떡. 천 원에 여섯 개다.
가래떡 굽는 냄새가 고소하게 퍼진다. 한입 베어 무니 아...맛있다. 굴다리를 나와 옆자리에 있는 아주머니들 하나씩 잡숴보시라고 가래떡을 돌렸다.
그런데, 아주머니들 모두 어린아이마냥 콧물을 흘린다. 추워서 절로 흐르는 콧물을 닦아내는 손등들은 죄 터져 있고 손마디 끝은 쩍쩍 갈라져 있다.
한 해 동안 피땀 흘려 농사짓고 겨울장에 먹거리 들고 나온 아주머니들 손은 눈뜨고 볼 수가 없다. 흙일에 다 갈라진 손끝이 얼어서 피가 맺혀 있다. 열 분 중 일고여덟 분은 모두 이런 손을 지니고 있다. 떡가래 물고 서 있는 내가 철없이 느껴져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다. 알토란 같은 자식 끼고 살아내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던 손들인지... 이런 날 서로 쳐다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한 주먹 치밀어 올라 손 낫게 해주는 내 화장품을 하나씩 돌렸다. 어차피, 앞으로 남기고 뒤로 밑지는 쑥맥 소릴 듣는 내가 아니던가.
화장품 받아든 아주머니들 고마워하시며 시금치, 무, 파, 밤... 팔려고 가지고 나온 것 조금씩들 들려주신다. 사양해도 소용없다. 안 받으면 혼난다. 내가 돌린 화장품 값어치를 금세 넘어버린다. 나는 본의 아니게 영악한 사람이 되고 만다.
......
얼마 전부터 한가한 시간이면 인터넷에 올리곤 했던 내 장터 이야기를 읽고 서울서 누가 찾아왔다. 순간, 장터에 서있는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멀리서 찾아온 손님을 피해 급히 짐을 쌌다. 당황했던 탓도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기운을 잃었다.
낮은 자리에 선 사람들의 성실함을 닮겠다고 했던 내가... 비겁하고 속 좁은 짓이었다.
먼 곳에서 온 손님은 내 옆자리 과일노점 순영이 엄마한테 길에서도 따뜻하게 몸을 덥힐 수 있는 손난로를 맡기고 갔다. 그 손난로를 받아들고 얼굴도 모르는 그 분을 떠올리며 나는 자꾸만 자꾸만 살고 싶어졌다.
그날 이후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늘 나와 함께 한 손난로를 장거리 사람들은 신기해하고 부러워했다.
“그건 어디서 사는 거유. 아이고, 따숩네. 어쩌자고 이렇게 작은 것이 따숩댜. 우리는 돈 있어도 이런 거 어디서 사는 건지 몰라서도 못사네. 증말로 돈은 있는디.”
장 보러 나온 사람들도 한번씩 쳐다보는 손난로. “그거 참 신통하네.”들 했다.
춥지만 추운 줄을 모른다. 바람 불던 그 황량한 신탄장거리의 추위를 막아주던 작은 손난로, 불어나는 매상, 친근해지는 장거리 사람들, 보이지 않지만 전해져 오는 따뜻한 마음들...
세상은 온통 봄날이다.
살아가면서 단 한번도 희망을 놓은 적은 없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상황이었을 때도 나는 한번도 희망을 놓은 적은 없다. 살아가다 보면 더없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고집스럽게 믿었다.
돌아보면 사방이 꽉꽉 막힌 벽이었을 때도 잠시 숨을 멈추고 기다렸다. 벽이 열릴 때까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외치면서.
나는 자꾸만 자꾸만 살고 싶다.
--- pp. 74∼78
그 해엔 겨울이 유난히 빨리 온다고 했다. 일찍부터 처마 끝이 얼어붙는데 차가운 구들장이, 일찍 진 꽃들이 사뭇 원망스러웠다. 해를 잡고 늘어지고 싶은 마음 위로 두런거리는 아이들의 속삭임이 낙엽처럼 쌓이고 있었다. 추위도 가난만큼 고독하다는 것을 그해 겨울 알았다.
몇 해 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눈이 많이 와서 읍내서 동네 들어오는 시내버스가 이틀 동안 재를 넘지 못해 끊겼고 아이들은 시냇가에 아기노루가 내려왔었다고 소리 높여 떠들고 다녔다. 대문 없는 마당에 아이들이 눈사람을 두 개나 만들어놓고 미끄럼을 탄다며 비료 푸대를 하나씩 들고 언덕 위로 올라갔다. 누렁이가 신나게 꼬리를 흔들며 아이들을 뒤따르는 것을 본체만체 나는 보일러실을 불안하게 들락거렸다.
일찌감치 저녁밥을 해먹고 방에 들어앉았다. 옛집이라 등은 따뜻한데 웃풍이 세서 누워 있으면 코가 시렸다. 세상이 온통 흰눈으로 덮여 그 새하얀 빛이 달빛마저 하얗게 흡수해버린 밤.
보일러 스위치에서 띠띠 하는 소리가 나더니 비상깜박이가 들어왔다. 기름이 떨어졌다는 신호였다. 하필 이 추운 날...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그때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너희들 김밥놀이 하고 싶다고 했지? 일어나 김밥놀이 하자. 엄마가 김밥말이 해줄게. 자, 일어나. 어서.”
엎드려서 만화책을 보며 낄낄거리던 두 녀석은 내 말에 뛸 듯이 좋아한다. “정말? 야, 신난다. 정말이지 엄마?”
나는 그럼, 그럼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장롱 속에 있는 이불을 모두 내려놓았다.
“지금부터 김밥 만다아.”
먼저 큰 녀석을 이불 속에 넣고 돌돌 말았다. 그리고는 작은 녀석도 둘둘 말았다. 이불 틈새로 얼굴만 쏙 내민 두 녀석이 서로를 보고는 재미있다고 까르륵댄다.
아이들이 밥이고 이불이 김이다. 이게 바로 짱구 만화에 나오는 김밥놀이다.
“움직이지 마! 김밥 풀어진다. 가만 있어. 마지막으로 계란 후라이 덮는다.” 하고 담요를 덮어주었다.
“엄마, 더워. 숨막혀.” 하는 아이들.
“이제 엄마가 책 읽어줄게. 가만히 들어봐.”
그날 밤 나는 아이들에게 유태인의 ‘탈무드’를 읽어주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아이들이 어느새 고른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쌔근거리는 숨소리 사이로 밤은 깊어갔다. 점점이 온기가 걷혀가며 추워지고 있었다. 아이들 옆자리에 비집고 누웠는데 코끝도 시리고 마음도 시렸다. 젠장, 누가 나도 김밥처럼 말아주었으며...
추위와 둘이 날이 새도록 누워 있는데 뼛속까지 시려왔다. 문 창호지에 비친 하얀 세상 때문에 시린 게 아니었다. 여인의 옷벗는 소리처럼 사그락거리며 내리던 눈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은 것은 한겨울 추위에 기름이 떨어져버린 서러움보다는 그 서러움을 함께 나눌 사람이 곁에 없다는 아픔 때문이었다. 그 아픔이 추운 마음을 매섭게 파고들었다.
--- pp. 67∼69
딸아이가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가정환경조사서를 가져왔다. 직업, 주거환경, 월수입... 볼펜을 손에 쥐고 한참 헤매며 앉아 있던 나와 딸아이의 눈이 마주쳤다.
“엄마, 그냥 써. 있는 그대로. 걱정하지 말구요.”
“그래도 되겠니?”
듣고 보니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써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간단한 걸.
이 어린 딸이 가끔 내 친구가 되기도 한다. 아니 나보다 더 생각이 깊을 때가 많아 놀랄 때가 있다.
......
언젠가 아이들이 볼까 싶어 사용하지 않는 방으로 두꺼운 겨울이불 꺼내 들고 들어가서 세 겹을 뒤집어쓰고 펑펑 우는데 딸아이가 이불 사이를 들추고 들어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내가 무슨 말 하나 해줄게. 엄마, 잠깐만 그만 울고... 엄마, 이거 알아? 사람은 슬퍼서 우는 게 아니고 울어서 슬픈 거래. 사람은 기뻐서 웃는 게 아니고 웃어서 기쁜 거래. 그러니까 엄마도 웃어. 그럼 기뻐지니까.”
이렇게 착한 딸아이 마음 아프게 한 나는 철없는 엄마다.
언젠가는 셋째 언니가 딸아이에게 “네 엄마 좀 부탁해. 네가 하도 의젓하고 이뻐서 언니 같다. 차라리 네가 엄마 해라.” 했다.
--- pp. 63∼64
하루 종일 손수레에서 빵을 굽고 집으로 들어가면 불이 꺼져 있다. 아무도 기다려 주는 사람이 없다. 열쇠를 찾아 방문을 열면 어둠이 방안에 깊게 고여 있었다.
방안에 들어서면서 무너지듯 주저앉는다. 아이들을 데려오려면 힘을 내야 하는데, 기껏 죽지 않으려고 밥을 먹었다. 밥이 안 넘어가면 죽지 않으려고 죽을 끓여 먹었다.
부지런히 먹긴 먹었는데 점점 살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처녀때 몸무게보다 가벼워졌다. 덜컥 겁이 났다. 입던 옷이 헐렁거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현기증이 나서 주저앉아 버렸던 그 시간. 나를 위해서는 반찬 한 가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저 붙어 있으니 목숨이었던 게다.
살면서 돈을 아까워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 시절 죽을 끓이든 밥을 끓이든 나를 위해서는 쌀 한 줌 사는 돈이 아까웠다.
하루 일을 마치면 팔리지 않은 빵 반죽이 남았다. 하루 종일 발효하여 더 크게 부풀어오른 빵 반죽. 쓰레기 봉투는 240원. 남은 반죽 버릴 쓰레기 봉투값도 아까웠던 때다.
팔리지 않아 남은 밀가루 반죽을 설거지 세제 대신 쓰기 위해 얼마간 떼어놓고 나머지로 수제비를 끓였다. 이스트와 바닐라향과 설탕가루가 든 반죽으로 끓인 수제비. 달착지근한 게 중국집을 찾아들면 느껴지는 향료냄새가 끓어올라 고개를 외로 꼬기도 했다. 그래도 그 수제비를 먹었다. 쓰레기봉투 값도 줄이고 쌀값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해 빵 굽는 손수레가 팔릴 때까지 날이면 날마다 혼자 수제비를 끓여먹었다.
--- pp. 3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