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츰 그들은 순식의 노래에 취해갔다. 음정도 박자도 더이상 필요치 않았다. 한 사람의 혼이 담긴 노래에 음정과 박자가 무엇이 그리도 중요한 것인가. 아니,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이미 음정이나 박자 따위에 제한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노래는 이미 그들 자신이었다. 음정도 박자도 그들의 것이었다. 그들이 지금 눈으로 뒤덮인 산 속에서, 김 중사의 폭행의 위협 아래 부르는 노래에는 그들 자신의 삶과 소망과 꿈이, 그들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아무리 서투른 노래일지언정 순식의 노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그 노래에 담아 그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서투르다, 서투르지 않다, 못 부른다, 잘 부른다 따위는 더이상 아무런 문제도 될 수 없었다.”
--- 최인석, 「노래에 관하여」
“그녀가 3학년이 되었을 때, 그녀의 선배들은 말 잘하고 인물 훤한 그녀를 어떻게든 잘 키워보려고 했다. 그 무렵 학생회에서 일하고 있던 그 남자도 그녀의 자유주의적 성격을 비난했다. 결국 그녀는 전혜린을 버렸다. 그것까지가 그 남자가 그녀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그녀가 전혜린을 버리는 순간, 그 남자는 그녀를 떠났다. 그 남자는 아직도 명확하게 그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현장에 들어갔었구나? 힘들었겠네. 그 남자는 애써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뇨. 정말 재밌게 보냈어요. 해고되지만 않았어도 더 할 수 있었는데 아쉬워요. 거기 사람들, 정도 많고 단순하고…… 그런 게 좋더라구요. 계도 만들어서 지금도 만나요. 할 수만 있다면 다시 들어가고 싶지만 이젠 나이도 차고 해서 힘드네요. 그 남자는 더욱더 그녀를 이해하기 힘들어졌다. 전혜린과 해고 노동자. 슈바빙의 가스등을 그리워하던 그녀. 방학이면 독일문화원을 들락거리며 독일어를 배우던 여자. 그 남자에게는 그녀의 이야기가 자신을 조롱하기 위해 꾸며대는 것처럼 느껴졌다.”
--- 김영하, 「전태일과 쇼걸」
“나는 졸업을 했는데, 승혜는 이제 겨우 복학해 삼 학년이 되었다. 승혜뿐 아니라 남자애들이 좀처럼 자라지 않는 시대였다. 집에 내려가서 교직 발령을 기다리겠다고 말했을 때, 승혜는 농담하느냐고 했다. 오빠는 군대엘 갔고, 엄마는 가망 없는 시골 생활로 인해 우울증에 걸렸으며 아버지는 귀향의 낭만을 즐겨볼 사이도 없이 막노동에 지치고 있었다. 그리고 여동생은 적대감을 가지고 나를 대했고, 집의 경제는 이자에 이자가 물리면서 하루하루 빚이 불어나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정해준 나의 방으로 돌아왔다.”
--- 전경린, 「바닷가 마지막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