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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잎에도 깔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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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잎에도 깔깔

: 모든 것이 눈부셨던 그때, 거기, 우리들의 이야기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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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6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322g | 128*188*15mm
ISBN13 9791197894503
ISBN10 119789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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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꺅~~~ 다시 한번 함성이 터졌다. 임의 승리였다. (…) 아이들의 시선이 오늘의 주인공들에게 집중되었다. 오는 햇살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데, 오의 얼굴을 바라보던 임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숨이 가쁜 듯 어깨를 들썩이더니,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며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까칠하고 도도했던 임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떠들고 시시덕거리던 아이들과 덩달아 싱글거리던 선생님은 동시에 충격을 먹었다. 그제서야 우리는 여태껏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벼락처럼 깨달을 수 있었다.
--- p.22~23 「야생의 시대」 중에서

한참을 웃다 보니 거짓말처럼 행복했다. 배도 아프지 않았고, 서러움도 날아갔다. 시현은 할 말이 없을 때마다 딸꾹질하듯 괜히 “개놈!”이라 소리를 질렀고, 나는 그 소리만 들으면 자동으로 웃음 폭탄이 터졌다. 저녁이 되자 시현은 버스정류장까지 배웅하겠다며 옷을 챙겨 입었다. 나이키 잠바, 그리고 하얀색 나이키 운동화.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짐’이 묻어 있었다. 나의 스펙스는 멀리서 보면 나이키와 닮아서, 그날 나는 시현과 커플 신발이라도 맞춘 듯 마냥 뿌듯했다.
--- p.53 「운동화 삼국지 2 - 나이키와 닮아서」 중에서

“쌤, 지영이가 선생님 좋아한대요~~.” 누군가 난데없이 폭로라도 하면 60명이 동시에 책상을 드럼처럼 두들기며 놀란 갈매기 소리를 냈다. 짝사랑은 그렇게 모두의 축제였다. …… 그때 우리는 가랑잎이 떨어져도 웃었고, 안 떨어지고 버텨도 웃었으며, 마침내 버티다 떨어진 가랑잎이 굴러가기라도 하면 너무 웃다가 대부분 배가 찢어졌다. 심지어 도덕 선생님은 진지한 말투로 묻기까지 했다. “제발 이유나 알자. 도대체 너희들, 왜 웃는 거니?”
--- p.104 「(짝)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중에서

우리는 대체로 2교시가 끝나면 밥을 먹었다. 쉬는 시간이 가까워지면 여기저기서 부시럭부시럭 뭔가를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다. 종이 울리자마자 일제히 뚜껑이 열리고, 빠르게 돌린 비디오테이프처럼 가공할만한 속도로 도시락이 비워졌다. 행동이 느려터진 몇 명을 제외하고, 60명 중 50명 정도는 그 시간에 1차를 끝냈다. 점심시간이 되면 방금 도시락을 삼킨 위장은 완벽하게 초기화되었고, 우리는 다시 사발면이나 노을빵을 찾아 매점으로 우르르 2차 원정을 떠났다.
--- p.116 「저 들에 콩깍지」 중에서

“참 예쁘다. 너네.” 앞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선생님이 갑자기 무심코 중얼거렸다. 뭐라는 거지? 반어법의 일종인가?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말이라 다들 조용했다. 선생님은 우리가 못 들은 줄 알고, 이번에는 부연설명까지 덧붙였다. “너희들 어쩜 다 이렇게 예쁘니. 인생에서 제일 예쁜 나이야. 이렇게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걸 보니 아주 반짝반짝 빛이 난다야.” 우리들은 그제야 와하하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에에에에에이 뻥 치시네. 거짓말도 정도껏 하셔야죠. 자기가 더 예쁘면서.” (…) “아냐, 진짜야. 나중에 너희도 알게 될 거야. 지금 너네가 얼마나 예뻤는지. 아유, 요 모습 그대로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두고 싶다.” 소녀 같았던 가정 선생님의 말투가 너무 폭신해서, 나는 하마터면 그녀의 말을 믿을 뻔했다. 헌데 지금이 가장 반짝인다는 그 말에 나는 왜 조금 슬펐던 걸까.
--- p.160~161 「못난이 컴플렉스」 중에서

아빠에게도 해답을 검색할 구글이나 지식in이 필요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때의 아빠는 아직 마흔을 넘기지 않은 청춘이었다. 아직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을 나이. 말을 잊은 사람처럼 며칠을 침묵 속에 살다가도, 술 한 잔에 다른 사람처럼 웃고 노래하던 아빠는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영혼이 사는 것처럼 까마득하게 이질적이었다. 그 생경함이 어색했기에 나는 그에게 끝내 다정한 딸은 되어주지 못했다. 그 둘은 결국 하나라는 것, 무겁게 입을 다문 그도, 미성으로 슬픔을 노래하던 그도, 육중한 수레를 끌며 수풀을 헤쳐가던 젊은 남자도, 외로움이, 자유가, 동경이 메아리치는 골짜기에서 잠시 일탈을 꿈꾸었을 누군가도, 아무도 없는 바다 위에 홀로 누운 것처럼 막막했을 젊은 날의 내 아버지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이미 스산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훌훌 먼 길로 떠난 후였다.
--- p.198~199 「사랑이 메아리칠 때」 중에서

마음에 주기적으로 질풍이 불고, 불안의 정령들은 아직도 내 방 앞을 서성거린다. 내 속에는 내가 여전히 많다. 그럴 때면 그때처럼 거기에 앉는다. 네모난 공간 속에 머리를 묻고, 하나, 둘, 셋, 넷 작은 소리로 숨을 고른다. 어느새 머리 위로 투명한 막이 내리고, 주위의 빛과 소음은 서서히 물러난다. 눈을 감는다. 투명한 별들이 어둠 속에 부유한다.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저 깊은 곳에서 따뜻한 물이 찰랑거리며 차오른다. 간질간질한 안락함이 발가락 끝에서 꼬물거린다.
나의 사춘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 p.245~246 「에필로그, 언제까지나 사춘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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