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무렵 달리며 만나는 얼굴들이 주는 건강함은 일상의 모든 시간에 새로운 변화를 안겨 줬다. 나에게 아침 달리기는 세상의 건강함을 만나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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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좋은 시간과 장소? 그런 건 없다. 모든 것은 나의 문제이다. 내 마음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어디를 달리더라도 내가 만족한다면 그 코스는 나에게 최적의 코스다. 어느 시간에 달리더라도 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좋은 시간으로 기억된다면 그때가 바로 내가 달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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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조롱받는 시절이다. 분명 기자는 어둡고 불의한 곳에서 고통받는 평범한 이웃을 위해 함께 싸우는 직업이라고 배웠다. 반대로 부패한 권력은 감시하고 모질게 지적하는 직업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막상 언론사에서 맞닥뜨려야 했던 현실은 타협과 타협의 연속이었다. 나 자신이 부끄러워질 때 신발 끈을 고쳐 맨다. 그리고 힘차게 달린다. 외력에 흔들리지 않는 내력을 세우기 위해.
--- p.77
달리기가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달리는 동안 나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점이다. 같은 코스를 달려도 방향이 바뀌면 새로운 코스 같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서도 다르다. 같은 장소가 똑같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 p.99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이나 힘든 시간, 지루하고 긴 싸움 등을 달리기에 비유하곤 하는데, 나는 어쩌다 보니 20대 초반부터 질병과 싸우는 무척 긴 거리의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적어도 진짜 달리기는 힘들면 걷거나 멈출 수 있고, 결승점을 내가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달리기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밖에서 달리는 것보다 훨씬 더 숨이 차고 힘들었다. 이 끝이 보이지 않는 달리기를 하는 내가 길 위에서 진짜 달리기를 시작한다면, 십수 년을 이어 온 질병도 결승점에 도착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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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동안 내 두 발바닥의 어느 부분이 지면과 닿고 있는지, 발소리는 너무 크지 않은지, 지금 내 코로 어떤 냄새가 들어오고 있는지, 두 팔은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는지, 시선은 앞을 향해 있는지, 두 눈엔 무엇이 담기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달리고 있는지, 내 속도는 적당한지 등 오직 달리기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날 겪었던 거친 시간들이 산책로 위로, 한강으로, 바람 속으로 밀어 내졌다.
--- p.143
달리다 보면, 빙빙 도는 트랙 안에 점철되어 있는 무수한 달리기의 순간들을 마주한다. 학창 시절,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괴롭힘을 피해 도서관으로 향했던 달리기, 시험 등수가 게시판에 붙을 때면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복도로 향했던 달리기,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이 황망해 쓰러지기까지 멈추지 않았던 달리기,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번민하며 다 털어 내기 위해 했던 달리기…. 그 밖에도 어제와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달려온 매일의 수많은 내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달리고 있음을 본다. 그러면 나는 차마 그들이 홀로 달리도록 두질 못한다. 함께 달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 순간에 빠져든다. 아니, 어쩌면 그들이 나를 홀로 달리도록 내버리지 않고서, 함께 오늘의 달리기를 이룰 수 있게 하는지도 모른다.
--- p.161
달리는 도중에 힘들어서 걷거나 잠시 숨을 고르는 게 패배나 포기를 뜻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길고 오래 가기 위해 쉴 뿐이다. 늦었다고 하지만 나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여전히 달리는 중이다. 나의 속도로 끝까지 가는 걸 목표로 해 본다.
--- p.200~201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이 삶을 견디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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