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했던 얘기 말인데, 결국 만남이란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런 게 뭔데?”
“그때는 뭔지 몰라서, 그냥 바람 소리인가 생각했지만, 나중에 깨닫게 되는 거. 아, 그러고 보니 그게 계기였구나, 하고. 이거다, 이게 만남이다, 딱 그 순간에 느끼는 게 아니라, 나중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거.”
“작은 밤의 음악처럼?”
“맞아, 그거.
---「아이네 클라이네」중에서
“지금도 그 친구가 자랑스러워?”
“물론이죠.”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지금의 유미가 훨씬 자랑스러웠다. “그 특이한 남편도 지금은 수박에 뿌리는 소금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고요.”
“그렇구나.”
“얼마 전에 친구한테 물어봤어요. 대체 남편의 어디가 좋았냐고.”
그런 질문을 한 건, 오랜만에 고향에서 만났을 때였다. 패밀리 레스토랑 구석 테이블에서 그녀는 유모차를 옆에 두고
다정하게 미소 짓더니,“잘은 말 못 하겠는데 남편하고 나, 아이들의 조합이 꽤 맘에 들어”라고 대답했다.
---「라이트헤비」중에서
5년 전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사근사근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분노나 불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때는 그랬지.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있었고, 딸아이가 한 살이 되었을 무렵이었던가. 이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을 무렵의 내 모습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5년 전의 자신에게 질투가 났다. “너는 모르겠지만” 하고 사진 속 자신에게 충고를 하고 싶어졌다. “다음 갱신 때에는 홀로 쓸쓸하게 맥주를 마시며 아내에게 연락이 오지 않을까 휴대전화를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놈이 되어 있을 거야.
---「도쿠멘타」중에서
“후지마, 잘 들어. 부부 문제는 외교야, 외교. 여자는 종교도, 역사도 다른 외국이라고 생각해야 해. 그런 사람들끼리 한지붕 아래에서 살 부비며 살려면 당연히 외교적 교섭 기술이 필요하지. 첫째, 의연한 태도. 둘째, 상대의 면을 세워 주면서. 셋째, 확답은 하지 않는다. 넷째, 국토는 수호한다. 알겠어? 이혼도 하나의 선택지야. 함께할 수 없는 타국과는 거리를 두는 게 국민을 위해서도 좋지.”
---「도쿠멘타」중에서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정한 연인 사이였다. 크게 싸운 적도 없었고, 다른 이성에게 한눈을 판 적도 없어서 ‘기근 없는 에도시대처럼 태평성대다’라고 표현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때는‘아니, 에도시대보다 우리가 훨씬 평화롭지’라고 구니히코가 웃으며 대답했고, 아케미도 동의했다.
흑선도, 메이지 유신도 없이 이대로 둘이서 결혼하게 되겠지. 아케미도 말은 안 했지만 그렇게 예상했다. 하지만 흑선이 나타났다.
무엇이라 이름 붙여야 하는지 아케미도 알 수 없었다. ‘질렸다’나 ‘매력이 안 느껴진다’ 같은 종류의 감정은 아니었다.
---「룩스라이크」중에서
의식이 돌아왔을 때, 처음으로 들은 건 마쓰자와 켈리의 목소리였다. 하염없이 ‘일어나’라고 외치고 있었다. 관람석에서도 제 이름을 부르는 대합창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음악처럼 오노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불현듯 그저께 집 근처에서 들었던 ‘사이토 씨’의 노래가 조용히 흘렀다. 작은 밤의 노래가, 음악이 오노를 조용히 흔드는 것 같았다.
---「나흐트무지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