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잠자리 물잠자리가 한 마리
떠내려온 단풍잎에 가만히 앉아서
햇살을 끌어당기는 저 고요
흐르는 물살에는 햇살의 파문
동심원 동심원엔 끝없는 긴장
물잠자리 물잠자리가 끌어당기는
풍경과 풍경 너머의 풍경
물잠자리 물잠자리가 끌어당겨 온
동심원 동심원의 저 고요
그림자 하나 없이 숨죽이는 풍경들
물잠자리 물잠자리가 한 마리
잠시 붉어진 단풍잎에 가만히 앉아서
햇살을 끌어당기는
동심원 동심원의 저 투명한 긴장
개여울도 흐르다 잠시 숨죽인
햇빛 햇빛에
막 피어나는 꽃 한 송이
햇빛고요. ■
---「햇빛고요」중에서
네게 불쑥 건네고 싶은 것 그냥,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지나가듯 그냥, 아무리 살아 봐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냥, 네게 휙 안겨 주고 싶은 그냥, 고양이처럼 꼬리 치며 안겨 오는 그냥, 사랑이란 것도 때로는 다 부질없다 싶을 때 꺼내 보는 그냥, 발버둥 쳐 봐도 다 알 수 없는 삶 같은 그냥, 봄 햇살 아래 알종아리를 드러내고 싶은 그냥, 야옹거리며 내가 네게로 가는 마음 그냥, 목욕탕이 쉬는 수요일 같은 그냥, 왜냐고 묻지 않는 그냥, 아무에게나 내 속을 털어놓고 싶은 그냥, 한시도 내게서 떨어져 나가 본 적 없는 그냥, 밥 한 그릇을 잘 비운 것 같은 그냥, 우리네 삶의 종착지 같은 그냥, 길고양이 같은 그냥, 그냥 그렇게 산다 싶은 그냥, 불쑥 오늘 너에게 또 건넨다! 그냥. ■
---「그냥」중에서
당뇨에는 효험 있다 그래도 돼지감자는 뚱딴지, 니 잊었다는 말 거짓말, 하마 잊었다는 말 거짓말, 잠시 꿈에 들었단 그 말 거짓말, 이제는 사랑도 옛말이라고 손사래 쳤던 그 말 거짓말, 돼지감자는 뚱딴지, 캐고 보면 뚱딴지, 니 잘 가라 흔들던 그 손 다 거짓말, 손가락 걸었던 그 약속 잊었다는 말 거짓말, 니 잘났다 돼지감자, 캐고 보면 뚱딴지, 나는 단숨에 돌아설 수 있다는 그 말 거짓말, 돼지감자는 잘나도 뚱딴지, 이제는 서로를 놓아주자는 그 말 거짓말, 아무래도 뚱딴지, 벚꽃처럼 분분히 헤어지자 그 말 거짓말, 돼지감자는 뚱딴지, 아무리 잘나도 뚱딴지, 이제 꿈에서 깨어났다는 그 말 거짓말, 그저 다 지나간 봄빛이었다는 말 거짓말, 한순간의 폭풍우였다는 그 말 거짓말, 다 잊었다는 그 말 거짓말, 돼지감자는 뚱딴지 알고 보면 뚱딴지, 니 잊는다는 그 말 거짓말, 하마 잊었다는 그 말 거짓말, 까마귀처럼 새하얀 까마귀처럼 말캉 거짓말, 돼지감자는 뚱딴지. ■
---「돼지감자는 뚱딴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