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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구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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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구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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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3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394g | 140*205*15mm
ISBN13 9791130680842
ISBN10 113068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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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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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는 따라오라고 손짓하고는 마구잡이로 얽힌 잡초를 풀어 헤쳤다. 폭찹은 벌써 그 주변을 맴돌며 미친 듯이 킁킁거리고 낑낑대기 바빴다.
포지가 다시 말했다.
“저기!”
월터도 보았다. 빽빽한 수풀에서 비어져 나온 발을. 정확히는 두 발을.
한쪽 발에는 엄지발가락 부분에 구멍이 난 운동화가 신겨 있었다. 다른 쪽은 멍들고 긁힌 맨발이었다.
포지가 속삭였다.
“누굴까?”
월터는 속이 울렁거렸지만 어쩐 일인지 그 발들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포지는 유리병들이 든 비닐봉지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나무 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입술에 손을 대고는 “쉬잇” 하고 속삭였다. 그러고서 막대기로 덤불을 이리저리 젖혔다.
단풍나무 아래에 널브러져 있는 건 사람의 시체였다. --- p.27~28


형은 왜 그렇게 하모니를 떠나고 싶어 했을까? 군 생활이 정말 그렇게 훨씬 더 좋았을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해외 전쟁터로 싸우러 가면서 어떻게 동생한테 작별 인사도 하지 않을 수 있어? 집에 왔다 가기로 약속해 놓고선. 내가 형을 얼마나 사랑했는데!
월터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찌르는 의문은 따로 있었다.
‘형은 하모니로 돌아올 마음이 있기는 했을까?’
봉투를 쥔 월터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열어볼까? 어쩌면 이 마지막 편지에 형은 월터가 듣고 싶은 말을 전했는지도 모른다.
하모니가 그립다고.
집에 가고 싶다고.
하지만 아니라면? --- p.68~69


“찾았어요!”
월터와 포지가 숲을 빠져나오며 소리치자 트럭 짐칸에서 낮잠을 자던 밴조가 화들짝 놀라 일어나더니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니, 너희 둘은 할 일이 그렇게 없냐? 이 노인네 심장마비나 일으키는 게 최선이야?”
월터는 무릎에 두 손을 얹고 애써 숨을 고르며 말했다.
“스타캐처 찾았어요!”
밴조는 발딱 일어나 앉더니 짐칸 난간을 붙잡고 외쳤다.
“내 열기구? 내 삶? 내 심장? 내 대담무쌍한 모험?”
그러고는 하늘을 우러러봤다.
“내 기도가 응답을 받았구나. 오, 영광의 날이로다!”
포지가 트럭 범퍼에 올라탔다.
“열기구가 찢어지고 진흙투성이가 되어 물뱀이 우글거리는 강물에 반쯤 잠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나 봐요?”
싱글벙글하던 밴조가 즉시 정색했다.
“넌 어째서 내 기쁨에 찬물을 끼얹는 게냐? 불쌍한 절름발이가 괴로워하는 걸 보면 좋아?”
포지는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아뇨, 단지 진실을 마주할 각오를 하시라는 거죠. 그렇지, 월터?” --- p.110


“스타캐처는 어떡해요?”
월터가 묻자 밴조는 힘없이 대답했다.
“트럭이 없으면 내 사랑하는 열기구를 구출할 길이 없구나. 대담무쌍한 모험의 꿈도 이루어질 수 없겠지.”
포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월터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밴조와 포지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그냥 손 놓고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열기구를 가져가 버릴지 모르는 판에?”
“그럼 어쩌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트럭이 여기 퍼져서는 꿈쩍도 못 하는데. 트럭 없이는 내 사랑 스타캐처를 되찾아 올 수 없단 말이다.”
바로 그때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월터가 꿈에도 생각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 백만 년이 지나도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을 법한 말이었다.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그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나한테 트럭이 있어요.” --- p.139


월터는 바구니 난간을 꼭 붙잡고 눈앞에 펼쳐진 시골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불현듯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저 멀리 옆면에 빨간 페인트로 ‘하모니’라 적힌 급수탑이 보였다. 형과 친구들이 저녁에 자주 모여 놀던 바로 그곳이었다.
바람에 밀려 떠가는 동안 월터가 아는 장소들이 계속 나타났다.
형이 월터에게 트럭 운전석을 양보해 주었던 오크 그로브 감리교회 주차장.
형이 숱하게 터치다운을 했던 하모니 고등학교 미식축구 경기장.
형이 월터에게 알려줬던 채터후치강의 낚시 명당.
형이 애지중지하는 트럭을 몰고 누비던 좁은 시골길까지.
월터는 저 아래 펼쳐진 형의 세상을 점점 더 가까이 흘러가며 보고 있었다.
월터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주 선명한 목소리가 월터에게 말을 걸었다.
“야, 대단하지 않냐? 너랑 나랑 같이 내 세상을 보는 거.”
월터는 눈을 떴지만 물론 형은 없었다. 적어도 실제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형은 없었다.
하지만 월터는 형을 느낄 수 있었다.
저 아래에 하모니가 흘러가는 동안 바로 곁에 형이 있었다.
--- p.23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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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기고 부서졌음에도 다시 찾아와야 하는 열기구는 주인공 월터의 마음과 닮았다. 유일한 친구이자 세상 전부라 할 수 있는 형을 잃어버린 어린 월터. 열 살 소년의 가슴속에는 슬픔과 상실감, 분노와 울분이 차오른다. 열기구처럼 뜨거운 서러움이 점점 더 크게 부풀어 오른다.
월터는 결국 추락한 열기구를 찾아내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거대한 열기구를 운반하기 위해 목숨처럼 애지중지하는 형의 트럭을 직접 운전한다. 그 과정에서 먼지 한 톨 없이 반짝반짝 광이 나던 트럭은 이리저리 쓸리고 긁히며 더러워진다.
이 위험천만한 모험을 통해 마침내 월터는 알게 된다. 상처도 마음속에만 얌전히 보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쓸리고 긁히며 때가 묻어도 한 번쯤 세상에 내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 꼬맹아. 넌 할 수 있어.” 자꾸만 들려오는 형의 환청은 어쩌면 월터가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 이희영 ([페인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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