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귀비 정찬은 마포구 서화동에 위치한 프라이빗 키친이다. 이곳에는 주력 메뉴도 고정 메뉴도 없다. 심지어 100% 예약제에다가 최소 일주일 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장이 불가한 불친절 식당이다. 위치도 전혀 이점이 없는데, 동네는 지나치게 조용하고 주변 건물은 낡은 것들뿐이다. 금귀비 정찬이 자리 잡은 건물 역시 해가 잘 드는 것 말고는 아무런 장점이 없다. 바깥에는 그 흔한 대형 쇼핑몰조차 없다. 손님이 있을 리 만무한 조건. 그야말로 실패하는 자영업 조건이 총망라된 이곳 금귀비 정찬은, 성공 신화를 이룬 식당이다. 프랜차이징 없이 월 매출 5천만 원을 가뿐히 찍으니 말이다. 다음 달, 다다음달 예약까지 꽉 들어찬 금귀비 정찬은 항상 인산인해를 이룬다. 번화하지 않은 동네에서 유일하게 번화한 곳이다.
모든 실패 조건을 깔끔히 보완하는 성공 조건이란 의외로 단순하다. 금귀비 정찬은 일대일 맞춤 코스 요리를 제공한다. 한식, 양식, 일식, 중식 무엇이든 상관없다. 예약자를 위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요리를 만들어낸다. 대신에 100%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므로 방문을 원하는 손님은 까다로운 양식에 맞게 내용을 작성해야 한다. 선호하는 맛과 향, 최근 겪었던 일, 식사 시간 으로 당신이 찾고 싶은 가치, 어린 시절 당신을 즐겁게 했던 음식, 극복하고 싶은 기억이나 상처 등 꽤 복잡하고 번거로운 질문을 던진다. 예약자가 기꺼이 과정을 감수해야 식당은 오직 그만을 위한 코스 요리를 제공한다. 한마디로 이곳은 감성 케어 시간을 판매하는 곳이다. 식당은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보듬어주는 것을 제1 원칙으로 삼는다. 식은 계란찜을 애피타이저로 내놓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손님 성향을 최대한 반영하여 최선의 의미를 담아낸 결과이리라.
덕분에 가격은 더럽게 비싸다. 오너의 딸인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대신에 100% 신뢰 가능한 정성과 노력을 약속한다. 이게 식당의 가치, 아니 우리의 가치다. 그럼에도 손님이 끊이질 않는 걸 보면 사람들은 금귀비 정찬에서 요리와 더불어, 다른 무언가를 얻어가는 것 같다.
---「1. 계약」중에서
간단하게 말하자면, 내 이름을 딴 간이식당인 ‘물망초 식당’에서 7명의 손님을 맞이해야 하며 그들의 편식 습관을 개선해야 한다. 어떻게 접객을 할지, 어떤 방식으로 편식을 개선할지는 전적으로 나의 몫이다. (중략)
“왜 하필이면 조건이 편식이야?”
벽 간판 속 가게 이름과 엄마를 번갈아 바라보며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엄마 역시 나와 벽 간판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엄마답게 차분한 목소리였다.
“요리하는 사람이라면 사람을 사랑해야 하거든.”
그게 편식이랑 무슨 상관이야?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엄마의 말뜻을 알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계약서에 서명했으니 가타부타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은, 아빠가 늘 했었던 말이었으므로 내게는 익숙 했다. 어째서 그게 편식과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물망초는 내 이름 문망초에서 그냥 따온 거야?”
“그냥이란 건 없어. 거기에도 이유가 있어.”
“이유가 뭔데?”
“물망초의 꽃말이 뭔지 아니?”
“진실한 사랑, 나를 잊지 말아요.”
“그래, 그거야. 네 이름에도, 그 식당에도 꼭 필요한 거야.”
철학 과제 같은 말이었다. 나는 사뭇 진지해진 엄마의 얼굴을 보고 더 묻지 않았다. 물어도 이해하지 못할 말뿐이려니 싶어 넘기고 말았다. 나는 계속하여 벽 간판을 바라봤다. 왠지 눈을뗄 수 없었다. 정말로 시작됐구나, 금귀비 정찬으로 향하는 레이스가.
---「1. 계약」중에서
“이곳은 손님의 마음에 필요한 요리를 제공합니다. 정해진 메뉴는 없어요. 다만 손님의 성향과 편식 사연, 살아오신 이야기 등 많은 것을 제가 듣고 알아야만 합니다. 그걸 바탕으로 요리를 만들 계획입니다. 절대로 이상한 곳이 아니니 안심하세요! 최상급 식자재만 사용할 거고요! 돈은 안 받을 겁니다!”
돈을 안 받는다는 말은, 여유를 부리며 멋있게 해야 할 말이었다. 그러나 미심쩍다는 눈빛에 당황해 버려 성급히 뱉고 말았다.
“식당 오픈하고 첫 손님이셔서 제가 지금 긴장했습니다!”
허겁지겁 발언을 정리했으나 어째 분위기가 더 산으로 가고 있었다. 남자는 웃지 않았다. 한번 웃어줄 법도 한데 야박한 현대인이 틀림없었다. 그는 한참 내 말을 듣고만 있다가 가게를쓱 둘러보았다.
“정말로 편식을 고쳐주나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그가 대화에 참여해 준 게 다행이다.
“고치고 싶은 편식이 있긴 해서 왔거든요. 정말 사장님이 고칠 수 있을지…….”
“심리적 편식이라면 제가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알레르기를 고치는 의사는 아니지만, 음식으로 마음을 보듬는 요리사는 될 수 있을 거예요.”
---「2. 용기를 주는 김치만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