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언제인가?”
언뜻 ‘시간’을 물어보는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한 질문처럼 들린다. 하지만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 이하 SF)에서는 별 뜻 없는 질문이 아니다. 왜일까?
첫째, 시간여행을 많이 하는 SF에서 ‘여기’는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여기’는 때로는 우연히, 때로는 의도적으로 바뀔 수 있다. 지금 내가 존재하는 이 순간이 유일한 일상일 수밖에 없지만, SF에서 ‘여기’는 하나가 아니다. 우리는 눈을 감고 다시 뜨는 사이 계속 시간이 변하는 가변적인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여기’라는 말은 단순히 한순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는 전혀 다른 시간대의 ‘여기’로 변할 수 있기에 계속해서 변하는 ‘어떤 시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언제’인지를 물으면 사람들은 보통 숫자로 된 연도로 답한다. 다른 문학 장르에서도 대부분 주인공이 사는 현실의 연도를 ‘언제’의 답으로 삼는다. 그렇지만 SF에서는 시간여행이 가능하므로 엄청나게 앞선 연도 혹은 과거의 연도로 여행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802701년이라고 답했다고 해보자. 매우 놀라운 숫자이기는 하지만, 이 숫자도 한 해씩 쌓여서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나온 숫자다.
SF에서는 802701년처럼 어마어마한 시간대로 갑자기 떠날 수 있고 때로는 0년으로 갈 수도 있다. 어쩌면 숫자로 연도를 세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 인류 탄생 이전이라고 뭉뚱그려 답할 수도 있고, 지구가 멸망한 이후 새롭게 시작된 어느 시간으로 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연도로 가늠되는 시간이라는 개념은 지구라는 행성에서만 유효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여기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우주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답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1부 | SF, ‘신의 영역’인 시간에 돌을 던지다」중에서
“어디로 갈 것인가?”
SF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문장이다. 이 질문에는 네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새로운 것을 찾아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모험심, 낯선 것을 탐구하는 호기심, 어디든 갈 수 있는 능력, 어디로 가든지 거기서 살아남고 번영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어쩌면 거대한 보상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 이 모든 것이 그 말 한마디에 담겨 있다. 이런 것들은 SF를 읽고 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른 어떤 장르에서보다 더 크게 만족을 느끼는 감정이다. 바로 SF의 인기를 만들어내는 감정인 것이다. 따라서 ‘어디로 갈 것인가?’는 그냥 자주 등장하는 말이 아니라 꼭 등장해야만 하는, 또한 계속해서 더 묻게 만들어야만 하는 말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SF는 이 질문에 답을 하면서 생존해나가기 때문이다.
---「3부 | SF의 무대, 어떤 상상은 현실이 된다」중에서
“왜 읽고 쓰는가?”
이는 지극히 평범한 질문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답은 단순하지 않다. 문학으로만 범위를 좁혀 이 질문을 던져도 우리는 너무도 다양한 답, 때로는 매우 다른 답을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그 이유가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그저 재미로 쓰는 사람,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 쓰는 사람, 변화를 원해서 쓰는 사람, 예술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쓰는 사람….쓰는 이유만큼이나 읽는 이유도 다양하다. 재미로 읽는 사람, 자랑삼아 읽는 사람, 고민의 해답을 찾기 위해 읽는 사람, 자신을 바꾸기 위해 읽는 사람, 문학적인 연구를 위해 읽는 사람…. 독자 수만큼이나 문학을 읽는 이유도 무궁무진하며 다양하다.
SF도 별반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대중과의 밀착된 관계에서 발전한 장르이기에 더 그렇다. 하지만 다른 문학 장르보다 늦게 시작해 역사가 짧은 탓에 그런 다양성을 갖게 된 과정은 조금 다르다. 또한 SF가 대중적 장르로 시작했다는 사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힐 무렵 TV나 영화 등의 시청각 매체, 이후에는 비디오 게임 같은 매체가 대세를 이루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왜 읽고 쓰는가?”는 “굳이 왜 SF를 쓰고 읽는가?”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SF라는 문학 장르에서 이 질문은 장르의 생존에 대해 묻는 것이기도하다.
---「3부 | 우리에게는 SF적 상상력이 필요하다」중에서
우리는 보통 SF를 이야기할 때 공상과학 소설을 떠올린다. 사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허상이나 상상의 영역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장르가 SF이기 때문에 이를 현실 도피의 장르라고도 말한다. 그렇기에 SF를 읽으면 ‘왜 그런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읽느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SF라는 말 자체는 항상 허상이나 공상이 따라붙고, 그런 의미에서 사실주의와는 반대되는 장르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로빈슨은 자신이 SF를 쓰는 이유에 대해 “사실적으로 쓰고 싶어서 SF를 썼다.”라고 말하고 있다. 로빈슨이 지구상에서 바로 지금 여기,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만 쓰는 것은 아니다. 그는 우주 전쟁 등에 대해 쓰면서도 자기가 쓰는 글이 사실주의적이라고 말한다.
---「4부 | 새로운 눈으로 SF를 바라보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