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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한 청진기엔 장난기를 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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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한 청진기엔 장난기를 담아야 한다

: 위드 코로나 의사의 현실 극복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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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3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324g | 120*200*15mm
ISBN13 9788950900007
ISBN10 895090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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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들의 수술방은 책임감이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곳이다. 의사가 이어놓은 뼈와 인공관절을 가지고 환자는 한평생을 살아야 한다. 뇌혈관 수술, 심장판막 또는 신장이식등 한 순간의 술기로 여생의 질이 결정될 수 있다. 회식 자리에서 술이 거하게 취한 어느 교수님이 의사들에게 한탄 섞인 부탁을 한 적이 있다. 평생 함께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짊어질 수 없다면 좋은 의사가 될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몇 개월 전에 여섯 살 아이의 엄마를 병원 로비에서 만났다. 얼굴빛이 건강해 보였고, 퇴원할 때보다 살도 조금 더 찐 것 같았다. 그녀는 커피를 손에 들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반가웠지만 인사를 나누지는 못했다. 한동안 책임감에 마음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것으로 치사를 받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녀가 이제는 일곱 살이 된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나에게는 책임감을 짊어질 눈에 보이지 않는 근력이 조금 더 생겨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상은 충분하니까.
--- p.34~35

우리는 흔히 많이 생각하는 문제가 중요한 문제라고 착각하는 오류에 빠진다. 우리의 골통은 작아서 쉽게 사소한 생각들에 점령당해버리고 만다. 사소한 것들이 골을 반복적으로 치면 세상 중차대한 골칫거리로 둔갑한다. 사실 따져보면 별것 아닌 것들이 내가 지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압도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가끔은 정신을 리셋해야 한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로 이 땅에 왔음을 다시 상기해야 한다. 회진을 돌 때 환자들의 얼굴을 오롯이 쳐다보았다. 집중하니 느낌이 다르다. 다 내려놓고 그저 얼굴만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면 할 말도 생기고 여유도 생기고 재미도 생긴다. 이참에 더 노력해보기로 한다. 좀 더 실존적 자세로 삶을 대하는 것이다. 여러 계산을 내려놓고 회진을 돌 것이며, 만나는 ‘얼굴’들에 집중할 것이며, 안경이 멋진 분 또는 손톱이 예쁜 분에게도 칭찬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 p.117~118

“어머니의 희망과 기도를 제가 잘 압니다. 그러나 제가 의사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드님은 소생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어머니는 더욱 강해지려고 했다.
“아니에요. 내가 약해지면 안 되지. 마음을 더욱 강하게 먹어야지. 아들은 이겨냅니다.”
아마도 지난 몇 개월간 밤낮 없이 기도를 했을 것이다. 혼자서 병원을 찾아오지도 못할 정도로 연로한 어머니지만, 어디서 나오는지 힘과 열정이 끊이지 않았다. 사랑과 슬픔이라는 반대편에 서 있는 감정 두 가지는 한 인간 ‘의지’를 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 같았다. 깊은 슬픔의 기원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랑과 슬픔은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모순이다.
--- p.127~128

엘리베이터에는 이제 사용금지가 붙어 있는 버튼이 2개다. 3층 버튼은 이미 한 달 전부터 사용금지다. 3층에 코로나 환자들을 수용하기 위한 병동이 생겼기 때문이다. 3층 사용금지는 더욱 철저하게 지켜져야 한다. 3층에서 내려 자칫 실수로 오염 구역에 들어갔다간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2주간 격리될 수도 있다. 버튼 사용금지는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접근금지를 의미한다.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온 환자 한 분이 5층에는 안 서냐고 물었다.
“5A 병동 가시는 거죠? 1층에 가셔서 A동으로 이동하시고 거기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합니다”라고 대답해주었다. 환자가 의아스럽다는 눈빛으로 도로 내렸다. 의아스러울 수밖에 없다. 코로나19가 만들어놓은 엘리베이터 풍경이다.
--- p.209

나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일반병상에 오버배드로 받아야 할까? 준중환자실 어디라도 비집고 들어갈 것인가. 아니다. 중환자실 4인실 병상 중 한자리 남은 자리가 적절할 것 같다. 내가 더 이상은 못 받는다고 장담해놓은 그 자리다. 선택에 여지가 없다. 면구스럽지만 간호사들에게 부탁을 했다.
“미안하다. 한 명만 더 살리자”라고 말하자 간호사실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던 석다솜 간호사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로 끄덕끄덕했다. 다행히 크게 저항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간호사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질문이다. ‘지금 우리가 피곤하니 나중에 살리면 안 돼요?’라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고마웠다. 병상 배정반에 ‘○○○ 환자 나은병원에 입원하겠습니다’라는 문자를 남겼다. 늘 이런 식이다. 미안할 뿐이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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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그렇지만 특히 코로나19 시대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순전히 의사는 무슨 생각을 하며 일하는 것일까, 하는 작은 호기심으로 읽었다가는 적지 않게 충격을 받을 것이다. 슬픔과 고통이 가득한 공간, 예민하고 날 설 수밖에 없는 환경 가운데 그들은 늘 머물러 있다. 생과 사를 오가는 공간에서 애도하며 반성하지만, 때로는 웃음기가 번질 수 있는 곳에서 펼쳐지는 희로애락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길 바란다. 병원 안팎의 풍경 묘사와 삶에 관한 진심 어린 고찰은 드라마나 소설 못지않게 큰 몰입도를 더할 테니 말이다.
- 손힘찬 (오가타 마리토, 국내 1호 뉴미디어 콘텐츠 디렉터,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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