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지기 쉬운 모델
이미 1950년대 초에 매카시즘은 미국식 모델의 모순을 드러냈다. 냉전 상황에서 반공주의는 위스콘신 출신 상원의원인 조지프 매카시가 주도한 ‘마녀사냥’을 정당화했으며, 그 대상은 이민자, 동성애자, 프롤레타리아화하고 있는 중산층 등, 빨갱이’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모든 사람에게로 확대되었다. 1960년대는 특히 미국 남부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대항한 투쟁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 이는 WASP(앵글로 색슨계 신교도 백인종) 중심의 미국식 모델의 결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1964년에 마침내 시민권에 대한 법률이 공포되었으나 바로 그 뒤를 이어 베트남 참전이 결정되었다. 인종 분리 반대주의 목사였던 마틴 루터 킹과 같은 해인 1968년에 암살된 로버트 케네디 대통령이 예언했던 것처럼 베트남 전쟁 참전은 나라의 “영혼을 잃게 할” 위험이 있는 고질병을 지속시켰다.
1980년대 미국은 레이건 행정부에서 신자유주의와 냉전의 복귀로 다시 부상했으며, 소련이 붕괴하면서 세계 유일의 강대국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과거의 분열은 이제 민족(아프리카계, 라틴계, 앵글로 색슨계 백인), 문화(창조주의자들과 바이블 벨트) 대 자유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의 대립) 등에서 집단주의로 나타났다.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와 그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사업가 도널드 트럼프가 이러한 모순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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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새로운 ‘대륙’
다른 거대 환류를 관찰하다가 그 중심에도 플라스틱이 집중되고 있는 동일한 현상을 관찰했다. 따라서 5개의 플라스틱 대륙(북태평양, 남태평양, 북대서양, 남대서양, 인도양)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 플라스틱 대륙은 눈에 잘 보이지 않으며, 이것을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사실 오염된 해안선 사진을 이용한 것이다. 플라스틱은 아주 작은 조각의 형태로 있었으며, 5밀리미터보다 더 큰 조각은 드물고 두께도 약 30밀리미터로 밀도가 낮다.
요약해서 말하면, ‘대륙’은 관찰된 현실이라기보다 단지 더 강하게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다. 그러나 이러한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해 우려해야 할 이유는 많다. 인간에게 위험하지 않더라도, 해양동물군에 수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바다거북이 해파리로 착각하여 삼킨 비닐봉지는 위험한 덫이 되어 바다거북을 질식사하게 만든다. 이런 특별한 경우 외에도 바다에 떠다니는 아주 작은 크기의 플라스틱 잔해를 수많은 물고기가 삼키게 되고, 이는 먹이사슬을 통해서 점점 쌓여간다. 게다가 플라스틱 쓰레기는 특정 미생물의 이동을 촉진하여 다른 종을 해치고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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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탄생
메소포타미아 신화에는 에누마 엘리쉬라는 두 단어로 시작하는 창조 서사시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 두 단어는 제목으로 사용된다. “위에 하늘이 아직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고, 아래 마른 땅이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을 때, 신들의 아버지 압수와 신들을 낳은 모체 티아마트가 자신들의 물을 한데 섞고 있었다. 신이 나타나지 않아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고 운명이 결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신들이 그들 안에서 생겨났다.” 티아마트는 태초의 카오스에서 의인화된 소금물이다. 압수는 담수이다. 그들의 결합으로 안샤르와 키샤르, 즉 ‘하늘의 아버지’와 ‘땅의 어머니’가 탄생했다. 이 신성한 부부는 메소포타미아 신전의 최초의 세 신, 하늘을 다스리는 아누, 인간의 운명을 주관하는 엔릴, 지혜와 원시 바다의 신 에아를 비롯하여 그 밖의 다른 모든 신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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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덕하면서 행복할 수 있을까?
18세기 영국 철학자 제레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이 기초를 마련한 공리주의 철학은 모든 인간은 욕구에 따라 다양한 활동을 하고, 그 활동을 통해서 즐거움을 경험한다. 효율성의 원칙에 따라 행복은 도덕적 능력뿐만 아니라 신체적 혹은 정서적 만족감과도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행복은 효율성의 원칙을 따르면서 얻게 되는 결과이다. 따라서 만족감을 높일 수 있는 행동은 도덕적이라고 판단될 수 있다. 공리주의적 사고는 행복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방식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는 한 도덕적이라고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우리 시대의 인식과 더욱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행복한 삶에서 도덕의 비중을 줄이는 상대주의 개념은 행복에 대한 집단주의 개념과 훨씬 더 잘 어울리는 듯하다. 행복에 대한 집단주의 개념은 정치 분야에서 많이 인용된다. 프랑스 혁명의 주동자 생쥐스트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역할이 정부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그 후 많은 정치적·사회적 요구가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졌고, 모든 도덕적인 고려를 배제한 채 단지 편안한 상태로 여겨지는 행복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입법 조치가 요구되었다. 행복의 문제는 정치 영역에서 핵심 쟁점이 되었으며, 경제 및 사회학적 지표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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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하게 사용되는 자원
전반적으로 수자원은 충분한 편이다. 연간 인구당 6,500입방미터 이상 소비할 수 있으며, 이것은 전 세계 평균 소비량의 5배 이상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지리적인 것이다. 일부 지역은 공급이 충분히 잘 이루어지고 있지만, 다른 지역은 몹시 부족한 상황이다. 브라질이 그러한 예를 아주 잘 보여준다. 세계 유량의 15퍼센트를 차지하는 아마존이 있는 브라질은 물이 가장 많은 국가 중 하나이지만, 동북부 지역은 영구적인 가뭄과 그로 인한 식량 문제를 겪고 있다.
양만이 유일한 문제는 아니다. 시간에 따른 강우 분포 문제는 특히 농업에서 더욱 중요하다. 가뭄은 작물의 생장을 막을 수 있으며(사헬의 여러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다), 반대로 수확기에 비가 너무 많이 쏟아지면 작물이 손상될 수 있다. 1788년에 이런 상황은 프랑스 혁명의 전조가 되었다. 따라서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물은 시간(저수지, 댐) 및 공간(물의 이송)에 따라 물 공급을 조절할 수 있는 수자원 관리 시설의 존재 여부에 달려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경제적 수단이나 정책에 따라 달라진다. 이스라엘과 카메룬은 전반적으로 물에 대한 접근성 수준이 비슷하지만, 그 이유는 완전히 다르다. 이스라엘은 수자원이 매우 적지만 기술적 능력이 강하고, 반면에 카메룬은 수자원이 아주 풍부하지만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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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내리기 매우 어려운 시기…
‘인류세’는 대기에 관한 연구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파울 크뤼첸과 생물학자 유진 스토머가 제안한 용어다. ‘인간의 시대’라는 새로운 지질 시대를 가리킨다. 이 새로운 지질 시대는 수많은 어려움을 야기했다. 우선 언제부터 인류세로 정할 것인가? 매우 타당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인류화는 한 시점에 동시에 발생한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는 다양한 물결처럼 퍼져 나갔다. 따라서 이에 따른 지질학적 표지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이에 답하기 위해 수많은 가설이 제안되었다. 크뤼첸은 1784년에 증기기관의 발명을 제안했고, 다른 사람들은 기원전 5000년 강력한 온실가스 메탄을 대량으로 방출하게 된 쌀 경작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을 제안했다. 결국, 1610년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이 시기에 아메리카 대륙과 다른 대륙과의 무역은 끔찍할 정도로 원주민들의 인구 감소를 초래했지만, 그 지역의 산림이 증가하고 온실가스 배출은 줄어들었다.
토양에 방사성 미립자를 남긴 핵 실험을 중단(또는 거의 중단)하기로 한 1964년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아니면 퇴적층을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지 않을까? 지구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척추동물인 닭 뼈(그들의 끔찍한 운명으로 인해서 계속 재생산되어서 지구상에 230억 마리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가 인류세의 기준이 되는 화석으로 제안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인류세가 지층학 단계에 들어갈 자격이 있을까? 토론의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동물상, 식물상, 퇴적 주기가 인간에 의해 심하게 변형되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모든 사회가 이에 똑같이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며, 어쩌면 지구의 이러한 변형에 있어서 자본주의 사회의 책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환경학자 안드레아스 말름은 ‘자본세’로 부르자는 제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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