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딴 남자의 무릎에 머리를 얹은 상태로 죽었다. 차가 우유수송차와 정면충돌하고, 우유수송차는 다시 떡갈나무를 들이받아, 차체 위로 도토리들이 우박처럼 후드득 떨어져 튕겼다. 시어러 씨는 팔인가 다리 하나를 잃었다. 나는 엄마를 잃었다. --- p.7
이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나는 현장을 보며 행위를 상상하고, 머릿속에서 재연하고, 인간 행동의 여러 요소들을 설명하는 심리적 표지들을 밝혀낸다. 나는 상담실에서 심란한 사연을 숱하게 보고 들었다. 슬픈 사람, 외로운 사람, 단절된 사람, 화난 사람, 불안한 사람, 질투하는 사람, 자살하고 싶은 사람과 죽이고 싶은 사람을 치료해왔다. 인간 불행의 가장 깊은 심연을 파헤쳐왔지만 그럼에도 늘 한 층이 더 있음을, 더 어둡고 더 위험한 층이 있음을 알고 있다. --- p.44
“저는 지금 혼자 일해요.” 그러고는 가장자리에 금박을 입힌 검은 명함을 내민다. 필기체로 ‘마인드헌터’라고 쓰여 있다. 아랫줄에는 이름이, 뒷면에는 대문자 약어 몇 글자가 적혀 있는데, 대부분은 아무 뜻도 없다. 더 작은 글자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를 자세히 알려준다. 범죄 프로파일러, 경찰 자문, 직원 배경 조사, 그리고 심리 검사.
“장사는 잘되나?”
“성황이죠! 범죄는 성장 산업이니까요. 교수님이 이 프로파일링 공연을 시작하셨잖아요. 정말이지 머리를 잘 쓰신 것 같아요.”
“그건 공연이 아니야.” --- p.72
질문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여기에는 성적인 요소가 없었다. 하퍼는 강간당하거나 유린당하거나 자상으로 훼손되지 않았다. 거의 정반대였다. 범인은 하퍼의 정숙함을 보호하려고, 또는 무고함을 지켜주려고 신경을 썼다. 이상화된 동화 같은 휴식 장소를 만들어냈다. 왜? 하퍼는 엘리자베스가 표상하지 않은 무언가를 표상했을까?
--- p.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