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에 대한 명상
명상은 우주적인 것이다. 그것은 어느 특정 종파나 교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명상은 동양이나 서양에 속하는 것도, 힌두교, 불교 혹은 수피즘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수면이 모든 사람의 자산이듯이 명상은 모든 사람의 자산이다. 그것은 전 인류의 것이다. 명상은 어렵거나 생소한 것이 아니다. 우리 대부분은 일상생활 속에서 이미 그것에 친숙해져 있다. 명상 없이는 의사가 질병을 진단할 수 없으며, 변호사는 서류를 준비할 수 없으며, 학생은 시험에 통과할 수 없다. 자동차 운전에서부터 음식을 조리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수학 문제를 푸는 데 이르기까지, 이 모든 기술이나 기교는 명상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집중의 힘에 의하여 완전해진다. 그러나 이것들은 외부로 향한 명상의 모습이다. 외부 대상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주의를 내부로 돌려 내면에 있는 존재에 초점을 맞출 때, 그것은 참나에 명상하고 있는 것이 된다.
샥티파트
현자 바시슈타는 라마에게 “신을 보기는 너무나 쉽다. 두 눈을 깜박이는 동안에도 신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세월이 흘렀건만, 그대는 여전히 신을 보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우파니샤드에는 신이 삿(sat), 칫(chit) 그리고 아난다(ananda), 즉 절대적인 존재, 의식 및 희열의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삿은 모든 장소, 모든 사물 및 모든 시간대에 존재하고 있는 진리를 의미한다. 진리가 모든 곳에 있지 않다면 그것은 진리일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절대적 존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만트라
마음을 다루기 위한 또 하나의 훌륭한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만트라의 도움을 얻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발에 박힌 가시를 빼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가시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경전에 따르면,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생각인 만트라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고 한다.
시다 명상
어린 새끼 사자는 당나귀와 함께 자랐다. 그 새끼 사자는 당나귀와 함께 살면서 당나귀의 만트라인 “히힝, 히힝”이라는 소리를 반복했다. 그들과 더불어 먹으면서 더러운 빨랫감을 지고 강을 따라 오르내리기 시작하였다. 사자는 자라면서 자신을 당나귀라 생각하고 당나귀의 습관과 방식을 따랐다.
어느 날 당나귀와 더불어 강둑에서 풀을 뜯고 있을 때, 다른 사자가 물을 먹으러 강가에 왔다. 이 사자는 물을 먹고 있다가 당나귀 사이에 있는 젊은 사자를 우연히 보았다. 나이든 사자는 그와 같은 애처로운 상황에 처해 있는 자신의 형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서 “형제여, 이게 무슨 꼴인가?”라고 물었다.
“나는 나의 형제와 같이 있다.”라고 젊은 사자가 대답을 했다. “그들이 어떻게 네 형제인가? 그들은 당나귀고 너는 사자다. 나와 함께 물가로 가서 물 속에 비친 네 모습을 보아라. 네 모습과 나의 모습을 비교해 보라.” 젊은 사자는 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나이든 사자의 모습과 꼭 같다는 사실을 알았다.“그들이 너의 형제인가? 이제 ‘히힝’이라는 소리를 그만두고 포효하기 시작하라!”
그 젊은 사자는 포효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든 당나귀가 달아났다. 두 마리 사자는 숲 속으로 달려갔다. 젊은 사자는 당나귀로부터 사자로 변형되었다. 그는 자유롭게 되었다.
--- 본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