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 잘 아는 것보다 미지의 것이 얼마나 더 흥미진진한지, 글렙스키 씨는 모를 리 없으시겠죠? 미지의 것은 상상력에 불을 지피고, 혈관을 따라 피가 더 빠르게 돌게 하고, 놀라운 환상을 낳고, 약속하고, 유혹합니다. 미지의 것은 한밤의 칠흑 같은 심연 속에서 반짝이는 작은 불꽃과 비슷하죠. 하지만 일단 아는 것이 되어 버리면 밋밋하고 단조로워지고 무미건조한 일상이라는 배경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그 안으로 스며들어 버리죠.”
--- 「제1장」 중에서
“내가 마법사를 믿느냐고요?” 그가 되물었다. “나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믿습니다, 페테르. 마법사들, 하느님, 악마, 유령…… UFO…… 인간의 뇌가 그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이 세상 어딘가에 그것들이 존재한다는 뜻 아닐까요. 그게 아니라면 인간의 뇌가 어떻게 그런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겠습니까?”
“당신은 철학자군요, 알레크.”
“그래요, 페테르. 나는 철학자지요. 나는 시인이자 철학자이자 엔지니어입니다. 혹시 내가 만든 영구기관들을 보셨습니까?”
--- 「제3장」 중에서
“시계를 잃어버리셨습니까?” 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렇소!”
“시계가 없어진 사실은 언제 아셨습니까?”
“방금 전이오!”
시답잖은 장난은 끝났다. 금시계 절도는 펠트 실내화 절도나 샤워장 유령극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 시계를 언제 마지막으로 보셨습니까?”
“오늘 아침 일찍.”
“그 시계는 평소에 어디에 보관하십니까?”
“나는 시계를 보관하지 않소! 시계를 보지! 그 시계는 내 책상 위에 있었소.”
나는 잠시 생각을 했다.
“이렇게 하시면 어떨까요.” 나는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일단 도난 신고서를 작성하십시오. 그러면 제가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모제스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잠시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가 잔을 홀짝이더니 말했다.
“대관절 도난 신고서와 경찰에 당신이 무슨 볼일이 있소? 나는 내 이름이 쓰레기 같은 신문에 오르내리는 걸 절대 원치 않소. 왜 직접 이 사건을 맡으려 하지 않는 거요? 보상금까지 걸지 않았소. 선금을 원하시오?”
“저는 이 사건에 개입할 입장이 아닙니다.”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그의 제안을 물리쳤다. “저는 사립 탐정이 아니라 공무원입니다. 지켜야 하는 윤리 규정이 있고 그 외에도……”
--- 「제4장」 중에서
자정이 다 되어 갈 무렵 우리는 뜨거운 포트와인 한 병을 끝장내고 어떻게 하면 나머지 손님들에게 그들이 산 채로 이곳에 갇혔다는 사실을 좀 더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을지 의견을 나누었고 세계가 겪고 있는 몇 가지 문제들도 해결했다. 이를테면, 인류가 기아를 겪게 될 운명인가. (그렇다, 그럴 운명이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우리는 이미 없을 것이다.) 자연계에는 인간의 의식으로 인지할 수 없는 존재가 있을까. (그렇다,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존재를 결코 인지하지 못한다.) 세인트버나드 렐은 이성을 가지고 있을까? (그렇다, 가지고 있다. 하지만 머저리 같은 과학자들에게 그 사실을 납득시키기란 불가능하다.) 이른바 열죽음이 우주에 위협이 될까? (아니다, 주인장의 헛간에 1형은 물론 2형 영구기관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위협이 되지 않는다.) 브륜의 성별은 무엇인가. (나는 어느 쪽인지 결국 증명하지 못했는데, 주인장은 괴상한 브륜이 좀비인데, 마법으로 되살아난 망자이므로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주장했다.)
--- 「제7장」 중에서
“[…] 당신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어요. 당신은 가장 뻔한 길을 따라가고 있어요. 바로 그래서 정작 가야 할 길에서 아주 많이 벗어난 거죠. 당신은 알리바이를 조사하고, 단서를 모으고, 동기를 찾고 있죠. 이런 사건에서는 당신이 알고 있는 수사 기법 같은 평범한 개념은 의미가 없어요. 빛의 속도를 뛰어넘는 속도에서는 시간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죠……”
“그것이 당신의 예감인가요?” 내가 씁쓸하게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
“빛의 속도를 뛰어넘는 속도에서의 알리바이에 대한 당신의 철학 말입니다. […]”
--- 「제10장」 중에서
“이런 겁니다. 일단 이론에서부터 출발하죠. 아직도 연구가 많이 되어 있지 않은 중앙아프리카의 어떤 부족들은 무당과 주술사들이 고대로부터 자신의 부족민들 가운데 죽은 이들에게 생명의 모습을 되돌려 주는 기술을 갖고 있었어요……”
내가 끙 하고 신음 소리를 내자 주인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현실 세계에서는 그러한 존재 즉, 살아 있는 자의 겉모습을 하고 얼핏 봐서는 스스로 사고하고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죽은 사람을 좀비라고 부르죠. 엄밀히 말해서 좀비는 시체가 아니에요. 말하자면 좀비는 살아 있는 유기체의 제3의 상태라고 할 수 있죠. 현대 과학기술을 이용한다면 좀비는 기능적으로 매우 정밀한 생물학적 기계가 될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수행하는……”
“잠깐만요, 알레크.” 내가 피곤한 듯 말했다. “나도 티브이를 보고 가끔 극장에 갑니다. 괴물 프랑켄슈타인이며 그레이 레이디, 존의 핏방울, 드라큘라 같은 것들을 보려고 말이죠……”
“그것들은 전부 무지몽매한 상상력의 산물이에요.” 주인장은 품위 있게 반박했다. “그리고 드라큘라는 애초에……”
--- 「제11장」 중에서
“자 그럼,” 내가 말했다. “우선 당신이 누구인지, 이름이 뭔지 알고 싶습니다.”
“루아르비크.” 그가 얼른 대답했다.
“루아르비크…… 그러면 이름은?”
“이름요? 루아르비크입니다.”
“루아르비크 루아르비크 씨?”
그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나는 눈이 심하게 사시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늘 경험하는 불편함을 무시하려고 애썼다.
“대충 그렇습니다.” 그가 마침내 대답했다.
“무슨 뜻입니까? 대충이라니?”
“루아르비크 루아르비크.”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치죠. 당신은 누구죠?”
“루아르비크.” 그가 대답했다. “나는 루아르비크입니다.” 그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루아르비크 루아르비크. 루아르비크 L. 루아르비크.”
루아르비크는 충분히 상식적이고 어느 때보다 진지해 보였다. 그 점이 무엇보다 놀라웠다. 어쨌거나 나는 의사가 아니니까.
“당신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물어본 겁니다.”
“나는 정비사입니다.” 그가 말했다. “정비사 겸 조종사.”
“무엇을 조종하시죠?” 내가 물었다.
그러자 그는 두 눈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는 분명 내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좋습니다. 그건 넘어가죠.” 내가 얼른 말했다. “당신은 외국인입니까?”
“매우.” 그가 대답했다. “상당히.”
“아마도 스웨덴인이겠죠?”
“아마도. 상당히 스웨덴인.”
--- 「제12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