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품 좋은 부모님께서 부유한 환경 아래 날 키우시고, 멋지고 아름다운 오빠와 언니들 사이에서 자라며 어느 것 하나 부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랄수록 나쁜 일들이 생겼습니다. 어린 시절에 친척 오빠한테 나쁜 일을 당하기도 하고, 택시 기사한테 두 번이나 납치도 당하고, 데이트 폭력도 당해서 고막이 찢어지고 온몸이 멍 투성이였습니다. 우리 가정사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나쁜 일을 겪으면 겪을수록 더 하나님한테서 멀어지고, 점점 미신이나 우상을 찾아 나섰습니다. 친구들과 후배들도 다 토정비결, 점술가, 무당들을 찾아다녀서 내가 이상하다고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프롤로그」중에서
내일이 안 오길 바란 날도 많습니다. 그건 가족이나 친구가 해결해 줄 수 없고, 스스로 벌떡 일어나 툭툭 털고 갈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답입니다. 내가 아버지를 찾기까지 헤맨 긴 여정을 들려드릴게요. 당신은 이 글을 읽으며 나만큼 먼 길 돌지 말고 지름길로 왔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내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면서 이렇게 바보 같은 사람도 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잡는 기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프롤로그」중에서
하나하나 다 잃어가고, 더 고통의 늪으로 빠질수록 내가 더 악착같이 살고, 잘 하면 또 언제나처럼 이겨낼 거라 생각했다. 얼마나 안타까워 하셨을까? 엄마가 마지막 떠날 때가 되어서야 난 하나님을 겨우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바보다」중에서
죽을 방법에 대해 정보를 모으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똑같을 테니 한 달간 여기저기서 수면제 처방을 받아 모으고 집에 있는 감기약, 진통제, 해열제 다 모아서 한 입에 털어 넣어볼까? 그러다 만의 하나 안 죽고 평생 바보로 살면 어쩌지?
가뜩이나 아픈 엄마한테 더 민폐만 끼치면 어쩌지? 높은 데서 떨어질까? 떨어지다 보면 심장마비로 죽기 때문에 막상 떨어져서 느끼는 고통은 없다잖아.
그런데 온몸이 다 부러지고 다 터지면 보는 사람들이 놀라고 끔찍해 할텐데 괜찮을까? 그건 정말 싫어.
---「나의 진짜 속마음」중에서
사람을 믿지 말자, 나이가 많고 많은 경험을 한 어른이라 해도 사람이고 나약한 존재이다. 상처받고 나약한 사람은 지금 자기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지 모른다. 나도 그렇다, 나도 모르게 상처 주었을 수 있다. 제발 조심하자. 한 번 말할 때 세 번 생각하자. 안 해도 될 말은 꺼내지도 말자.
잊어버리자, 하나님 말씀만 기억하고, 하나님만 바라보자.
---「사람의 말」중에서
익숙해지고, 잘한다고 생각할 때 사고가 난다.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고, 이렇게 살짝 다쳤으니 한참 또 조심할 것이다. 운전자 사고, 집안의 사고, 일하면서 사고 나는 것 모두 마찬가지이다. 긴장이 풀리고 괜찮겠지 싶을 때 사고가 난다.
난 이번에 살짝 다친 것이 정말 감사하다. 안 그랬으면 자만하다가 더 크게 다쳤을 지도 모른다. 하나님을 만나고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겠지.
---「사고가 생기는 때」중에서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니 무엇을 할 용기도 잃고 주저앉았다. 부모님도 차례 차례 돌아가셨다.형제들은 너무 멀리 있었고 마음이 약하고 아팠던 남편도 세상을 떠났다. 그제서야 깨닫는다. 하나님은 빼앗은 게 아니다. 처음부터 내 것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어려움 없이 계속 갖고 있고 어려움 없이 누리고 있었으면 난 정말 영적으로 나쁜 사람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라서 다행이야」중에서
왜 저 아이가 학대를 당해야 하고 나쁜 사람은 벌 받지 않고 잘 살아야 하는가? 우리 엄마도 교회 가시다가 넘어져서 팔이 부러졌다. 하나님이 바쁘신가? 우리나라가 너무 작은 나라라서 잘 못보시는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지금 잠깐 그렇게 보이더라도 속아선 안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길이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공평하다고 생각될 때」중에서
하나님은 그들이 점괘가 분명 틀렸다는 것을 내게 분명 증거하셨다. 과거 몇 가지 맞추는 것으로 내 미래를 저당 잡혔던 것이다. 정말 어떻게 하나같이 다 틀릴 수가 있지?
생각해보면 맞춘 것 보다 틀린 게 더 많았다. 직장 생활, 결혼 생활, 어느 것 하나 똑바로 맞춘 게 없다. 가끔은 듣기에 좋은 말만 해주고, 가끔은 무섭게 해서 또 찾아오게 하고, 뭉뚱그려 설명해서 맞는 듯하게 보이고 20퍼센트 답답하고 궁금하게 해서 자꾸 의존하게 했다.
---「그들이 틀렸다」중에서
예배 시간에도 바로 옆에 앉아 나를 감시하다가 예배가 끝나자 더 강력하게 손을 잡아 끈다. 뿌리치고 나와서 다시는 그 교회에 가지 않는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나를 물가로 인도하시지 억지로 잡아 끄시지 않는다.
내가 옳은 선택을 하든지 아니던지 존중하시고 기다려주시지 강요하지 않으신다. 예전의 나였다면 또 교회 자체와 멀어졌을 지도 모른다. 역시 교회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고 행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고 정죄하고 돌아섰을 지도 모른다.
---「사람 보고 다니지 말자」중에서
정말 하나님께서는 원하기만 하면 나를 위해 최고로 좋은 것만 주시며,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주신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할 몫을 다하고 마지막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셔야 그 행복이 완성되는 것이다. 내 조련사이자 내 모든 것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오늘도 잘 따라가야겠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중에서
남자는 무서운 존재이고, 내게 위험한 존재라는 인식이 내 잠재의식을 사로잡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와 함께 나눴으면 조금 빨리 편안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무서웠고, 난 너무 어렸다. 마흔이 넘는 나이가 되어도 그 사고는 내게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처럼 찍혀 있었고, 그를 어디서 만날까봐 무섭고, 그가 아주아주 비참하게 살고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피해자는 이렇게 그 굴레 속에서 살고 있는데 가해자가 행복하게 살고 있으면 세상이 불공평한 것이라 생각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게 큰 과제를 주셨다. 어려서부터 자주 외웠던 주기도문을 통해서 였다.
---「용서할 수 있을까?」중에서
사람이 줄 수 있는 위로는 한계가 있다. 그들의 삶에도 나름의 어려움이 있고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사느라 바쁘고 그들도 딸린 가족과 생활이 있기에 아무리 마음은 함께 하고 싶어도 해줄 수 있는 정도가 있는 것이다.
그들이 내게 전화해도 나도 마찬가지이다. 바로 뛰어갈 수도 없고 친구 생각만 할 수도 없다. 오직 하나님만 내가 부르기만 하면 바로 내 곁에 와서 받아주신다.
---「진짜 위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