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는 나에게 제안을 하셨다. ‘미국’이라는 곳으로, 문화 체험을 위한 여행을 시작하자고…. 만 14살, 조금은 이를 수도 있지만 이 교차점에서 눈빛의 생기를 되찾을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마치 무형의 춤과 같이 흥겨웠다. 이러한 기쁨은 그야말로 ‘말로 표현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시간은 흐르는 물처럼, 쓸어가는 바람처럼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난 여행에 한 발을 내디뎠다. 교차점에서 내딛는 한 발은 엄숙했으며, 무거웠다. 약 1년간의 부재. 그것은 나 자신과 내 가족 모두에게 있어 어려운 결정이기도 했다. 지구본의 반 바퀴쯤 돌았을까, 그새 미국 공항에 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아시아계의 사람이 아닌, 콧대가 높고 키가 훤칠한, 외국인이었다. 그때야 비로소 내가 다른 나라에 왔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다고나 할까, 비행기는 착륙한 지 오래였지만 기분은 하늘에 있는 듯하였다.
내가 간 곳은 인디애나 주, 어번 시. 높은 아파트 대신 거대한 나무가 자리 잡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상가 대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집들이 시야에 들어온 것이었다. HF(host family)는 참으로 좋았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께서 나를 host해 주셨는데,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서 행동 하나 하나에 결점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상대방을 배려하는 느낌이 들어 내 자신 또한 할머니께 존경을 표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시는 감자 수프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가 간 학교는 크리스천 학교였다. 왕궁같이 거대한 학교가 아닌, 소박하게 지어진 유치원 같은 학교가 맘에 와 닿았다. 내가 학교에 다니면서 제일 처음 신기하다고 느낀 것은, 과목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 Lakewood park Christian school은 신학과 영어가 필수 과목이었다. 그 외에 내가 택한 수업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컴퓨터, 흥미는 없지만 재능이 있는 수학 중에 도형학을 택하고, 미국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미국사를, 건강을 위해 체육을, 흥미가 있는 미술, 그리고 생소하지만 한 번쯤은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한 심리학을 택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심리학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흥미 있었다. 둥그렇게 테이블을 만들어 토론하는 형식이었는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거야말로 죽어가는 교육 시스템의 구원자이자 꼭 도입해야 할 시스템이라고 느꼈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11학년 과정을 택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약간 아쉽기도 하지만 일면으론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됐다고도 생각한다. 시간이 꽤 흐른 듯 느꼈지만, 여전히 의사소통이 힘들기는 했다. 이런 의사소통의 장애는 친구 사귀기에도 큰 문제가 생기기에, 소극적인 태도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의사를 전달해야만 한다. 그래서 의사표현을 할 때 제스처를 섞어 가며 의사를 전했다. 의사소통이 원만해질 즈음, 내 곁엔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있었고 자연스레 영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애석하게도 여전히 말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들리는 대로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월 어느 때, 어느 정도의 구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 pp.153~154
…저는 delaware christian high school에 다녔어요. 한마디로, 기독교계 학교입니다. 그래서인지 학교에서 성경을 배웠습니다. 맨 처음, 성경을 배울 때 반 친구 얘들이 성경구절을 가지고 선생님과 토론을 하는데, 진짜 눈앞이 깜깜하더라고요. 왜냐면, 전 신약순서도 몰랐거든요. 하지만 나중에 시간이 가면서 하나님 앞에서 필요한 것은 언어적인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제가 좋아하는 과목이 되었습니다. 역사시간에 한국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의 역사 선생님은 저에게 친구들에게 한국에 대해 가르쳐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셔서, 저는 한복, 그리고 엽서 등 집에서 들고 간 것을 몽땅 들고 갔지요. 그리고 역사 선생님은 한글로 된 동화책을 가져오셨습니다. 제가 한국에 대한 소개를 할 때 미국 친구들은 한글과 독도에 대해 엄청난 호기심을 보여주었습니다. 다행히도 친구들이 제 발표를 좋아해 주었고 그 뒤에 딴 반의 요청으로 초청강사도 갔다 왔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학교의 특징이 있다면 매주 목요일에 초청한 사람들이 간증하는 것이 있었어요. 이것도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부분 중 하나입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제가 꼭 권유하고 싶은 것은 클럽 활동입니다. 저는 소프트볼과 농구를 했었습니다. 저는 태권도를 8년 정도 배웠기 때문에 어느 정도 운동엔 자신이 있었는데, 미국아이들은 저를 뛰어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varsity 팀에도 들어가고 재미있는 클럽활동을 했습니다. 미국의 클럽활동은 방과 후 2시간의 연습이 있고, 연습기간 후에는 학교별 시합이 있습니다. 딴 학교 아이들과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매력이지요.
저희 학교에서 저는 첫 교환학생이었고, 소수의 동양인 학생 중 하나였습니다. 한국인은 주변에서 찾기도 어려울 정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학교 친구들은 저에게 다가와 주었고, 첫 만남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 친구들과 어떻게 친해지는 거냐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지나가면서 ‘안녕?’, ‘오늘은 무슨 일이야?’이러면서 쉽게 친해질 수 있고 나의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면 학교 친구들도 편견 없이 다가와 미친 듯이 같이 놉니다. 그냥 한국 고등학교 아이들 같아요. 그리고 친구들 많이 사귀고 싶다면 클럽활동을 하면 빨리 사귈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의 경우도 그랬거든요. 힘든 운동 같이 하면서 서로 의지하고 게임에서 이기면 같이 기뻐하고, 그러면서 친해지는 것 같아요. 지금도 가끔 facebook에서 서로 글도 남기고 채팅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2012년 제가 졸업하고 나서 저도 그 아이들 졸업하는 거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제가 미국교환학생을 다녀와서 가장 많이 발전한 것은 영어문법도 아니고 발음도 아닌, 인간과의 관계, 한국인이라는 자긍심, 사람에 대한 배려, 그리고 삶에 대한 만족입니다.
--- pp.170~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