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숲을 걸으며 생각했다. 다시 나무에 오르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나무에서 떨어지는 일도 없고, 그래서 아플 일도 후회할 일도 없겠지?
하나같이 더 나은 일만 있었다.--- p.7~8
어느 저녁, 코끼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꼭 나 자신에 대해 뭘 생각해봐야 하나?’ 계속 쓸데없는 것만 떠올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아니면 누가?
코끼리는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p.25
우선 세상 모든 것은 제각각 유일한 존재라고 이야기할 거야. 세상에는 태양도 하나, 달도 하나, 그리고 너희 인생도 단 한 번뿐이라고.
난 최선을 다해 연설한 다음 이렇게 외칠 거야. “그리고 세상에는 단 하나의 ‘나’만 존재해. 그것이 바로 나, 코끼리야.”--- p.78
그러나 딱정벌레는 그렇게 외치지 않았고, 자신을 우울하게 하는 침울한 사색에 잠겼다. 결국 미끄러져 넘어지고, 해가 자신을 작심하고 쏘아보고, 모두 자신에게 적대감을 보이기는커녕 더 비참하게도 자신을 응원하고, 우울함이 마치 바위에서부터 생긴 양 세상이 그 바위 밑에 무너져버릴 것이라는 생각. 세상이 무너져버리면 더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겠지. 아무것도……--- p.96
살살 떨어지라고 쓸까 말까?
그래, 그건 좀 비웃는 것 같고, 비아냥거리는 것 같기도 해. 난 원래 좀 빈정대지. 빈정대는 바퀴벌레.
그리고 다시 거울을 보며 자신이 누구인지 똑바로 바라보았다. 예전부터 늘 그런 모습이었고, 앞으로도 늘 그대로일 모습을.--- p.102
풍뎅이는 한숨을 쉬었다. 비밀이란 복잡한 거구나. 그래서 이 세상에 비밀이란 없는 거구나. 풍뎅이는 빙글빙글 돌다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장미 덤불 속 장미꽃 사이로 날아갔다.--- p.115
나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을 경험해보고 싶어. 고통을 느낀다든지, 어떤 일에 대해 후회를 한다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난처해한다든지, 계획했는데 실천하지 못한다든지……
--- p.119
꼭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어도 깜빡일 수는 있지. 반딧불이는 생각했다. 의미 없이 그냥 깜빡이는 거.
땅거미가 질 무렵 반딧불이는 어느 정도 멀리 날아가 뽕나무 가지에 앉아 주변을 밝히며 그냥 깜빡거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좀 슬프긴 해, 그게 사실이긴 하지만, 불행한 건 아니야. 암, 나는 불행하지 않아. 불행하고 싶지도 않고.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야. 그렇게 믿어. --- p.130~131
코끼리는 그 슬픔도 문제가 되는지, 그리고 동물들이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알고 있을지 궁금했다.
코끼리는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미 태양의 첫 빛줄기가 자작나무 잎사귀에 맺힌 이슬을 비추고 있었다.
내 슬픔을 해결할 방법을 찾았어. 코끼리는 감격스럽고 기뻤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누구도 필요치 않아.--- p.136
내가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춤을 춘다면,
절반은 성공한 거야,
그것만으로도 꽤 괜찮다고 생각해.--- p.168
나무에 오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떨어지는 건 예술 같은 거니까.
나만의 작품.--- p.184
가장 평범한 것은 아픔이고,
아픔은 존재하는 것 중 가장 평범하며,
아픔은 곳곳에 있어.--- p.192
나는 옳은 결정을 좋아하지 않아.
이제야 알겠어,
현명하고, 신중하고, 숙고 끝에 내린 결정들.
나는 잘못된 결정이 좋아,
즉흥적으로 내린,
매일 되풀이하는 그런 결정들.--- p.197
그리고 여기, 내가 있어.
내 인생도 그냥 이렇게 흘러가겠지,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는 생각 한번 해보지 않고.
그리고 저기 달이 떠 있어.
달은 생각을 하지 않아.
절대 지지도 않고.--- p.204
떨어지는 것의 반대는 뭘까?
올라가는 걸까?
아니야, 어딘가 궁지에 빠져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거겠지.
그럼 후회의 반대는?
--- p.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