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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 브라이드 1
중고도서

윈터 브라이드 1

박소연 | 가하 | 2019년 01월 03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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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1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556쪽 | 690g | 148*200*35mm
ISBN13 9791130033563
ISBN10 1130033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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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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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아이가 얼굴 가득 활짝 웃음을 띠며 현관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그 열렬한 환영에 순간적으로 윈터는 멈칫했다. 아이의 손에는 후견인에게 주겠답시고 제멋대로 만든 화관이 들려 있었다.

“저기요, 이거 봐요! 예쁘죠? 선물이에요!”
“…….”
“색을 구별 못 한다고 했잖아요. 근데 색깔이 옅고 짙은 건 구별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모든 게 까만색이랑 하얀색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러면 아예 내 표정도 볼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나.

새삼스레 내려다본 화관은 아이가 말한 대로 짙은 색의 꽃들 사이에 옅은 색의 꽃들이 끈을 꼬듯 섞여 들어가 있었다. 솔직히 예쁜지 아닌지는 판단하기 어려웠으나 색을 볼 수 있는 아이가 보지 못하는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려 애썼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아이가 쉴 새 없이 조잘거렸다.

“뭔가 제대로 된 걸 주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이것저것 준다고 했었는데 제대로 된 걸 준 적은 없었잖아요? 내가 씌워줄게요. 분명히 예쁠 거예요!”

그렇게 떠들어대며 소맷자락을 당기는 아이를 앞에 두고 윈터는 속에서 울컥 무언가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서요! 왜, 마음에 안 들…….”

갑자기 목덜미에 들이대어진 칼날과 거기에 말라붙은 피에 아이의 얼굴에서 한순간에 미소가 사라졌다.

수축한 동공. 경직한 어깨. 엇박을 치며 세차게 뛰는 심장. 익숙할 터인 공포의 반응.

아이의 손에 들려 있던 화관이 힘없이 바닥을 굴렀다.

이것이 그의 ‘정상’. 이제야 받아 마땅할 반응을 끌어냈는데도 어째서인지 한없이 불쾌하다. 시소를 타듯 정신없이 출렁이는 기분에 이성이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당겨진다.

“사랑스러운 리즈벳.”

굳은 아이의 얼굴을 살짝 들어올려 뺨을 다정히 쓸었다. 지끈, 머리가 다시 조여온다.

“나는, 사람을 죽인단다.”

머리 한쪽에서는 잔인하게 상처 입히길 원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그러기를 거부한다. 양쪽으로 잡아당겨져 찢어져버릴 것 같다.

“사람을 죽이고, 아프게 하고, 소중한 것을 빼앗아. 기억해내라, 어리석은 꼬마야. 난 네 납치범이다. 난…….”

또다시 머리가 지끈거린다. 얼어붙은 눈동자를 보자 저도 모르게 말이 막혔다. 반쯤 오기로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이런 내가, 아직까지도 예뻐 보이니……?”

아이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입이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면서 드는 끔찍할 정도의 초조함에 윈터는 머리가 어지러워질 지경이었다. 지금 이렇게 묻는 것도, 대답을 기다리는 것도, 당장 이 칼을 휘둘러 이 작은 아이를 죽여버리지 않는 것도 모조리 예상 밖의 행동이었다. 겨우 정상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순식간에 비정상으로 추락한다.

한참 후에야 아이가 입술을 달싹이며 입을 열었다.

“날…… 죽일 거예요……?”

윈터는 웃어버렸다. 묻고 싶은 건 오히려 나다.

“……글쎄.”

나는 대체 너를 가지고 뭘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지?”

그러니까 네가 말해봐. 내게 가르쳐줘.

“……죽이지 않으면 좋겠어요……. 죽이지 마세요…….”

속삭이는 듯이 시작했던 말은 이어질수록 물기를 머금고 젖어들어 결국 아이는 말꼬리를 가늘게 떨며 흐느꼈다.

“그냥…… 착하게 살면 안 되는 거예요?”
“…….”
“예쁘다고 했던 거, 진짜예요. 착한 사람이었잖아요……? 내가 아플 때 간호도 해줬고, 덧셈도 가르쳐줬고, 철자도 가르쳐줬고, 요리도 먹어줬고, 또…… 또……!”

필사적으로 말한다. 아이의 눈에서 단순한 절박함 이외의 것을 보았다 생각한 것은 자기기만이었을 뿐일까. 아이는 그의 소맷자락을 꽉 쥐었다.

“착하게 살 수도 있잖아요…….”

어째서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쓰는 걸까. 살고 싶다면 그냥 살려달라고 빌면 될 터, 사실은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저리 부정하려 들다니. 그건 마치.

마치, 내가 착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그 믿음. 그 호의. 어쩌면 이렇게 어리석고 어쩌면 이렇게 한심하고 어쩌면 이렇게 괴로울 정도로 안쓰러운지.

“……귀여운 리즈벳, 그러면 네가 나를 그렇게 만들어봐.”

결국 윈터는 아이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손에서 떨어트린 검이 화관 속에 파묻혔다. 그렁그렁하게 눈물이 맺힌 눈가를 손끝으로 다정하게 매만지며 생각했다.

어차피 모든 것이 유희일 뿐이라면 이런 변덕조차 괜찮지 않은가.

“죽고 싶지 않으면 내가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들어봐. 나를 철저히 길들여서 네게 손끝 하나 대지 못하게 만들어봐. 그러면 나는.”

이런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뭘 할 수 있겠나. 냉소적으로 생각하면서도 윈터는 마치 무언가에 씌기라도 한 듯 그렇게 말하며 아이의 이마에 부드러이 입을 맞췄다.

“나는, 네 어리석은 소망에 답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게 될지도 몰라.”

그렇게 아이를 계속 가까이에 두고 머리칼을 어루만지며 그 작은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를 들었다. 한참을 굳어 있던 아이는 새처럼 떨며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뺨을 간질이는 머리칼의 감촉에, 목을 끌어안는 팔의 압력에, 지극히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생명체의 호흡 소리에 윈터는 가만히 눈을 감고 그 작은 몸에 팔을 둘러 더욱 가까이 끌어안았다.

느낄 수 있을 리 없는 따스함을 느낀 것 같아서 스스로에게 조소했다. 그럼에도 놓고 싶지 않았다. 아이의 발치에, 등 너머에, 사방에 어느 순간 피어나 있는 꽃들을 보고 처음으로 어느새 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거의 100년 만에. 처음으로.

봄. 이 작은 계집아이는 그야말로 봄 그 자체였다.

“윈터라고 불러라, 사랑스러운 리즈벳.”

아이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며 속삭였다. 제가 지은 것은 아니었으나 지극히도 어울리는 호칭이 아닌가. 아이에게 저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겨울일 터이니.

끔찍하겠지. 지금 이 순간도 절절히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째서 오라비의 전령을 쫓아 도망가지 않았던가 하고. 저를 끌어안고 있는 이 순간에도 속으로는 저를 저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이제 아무래도 좋다. 과정이 어찌 되었든, 결과가 어찌 되었든 이 아이는 내 것이다. 내가 빼앗았다.

절대로 안셀라에게는 돌려줄 생각이 없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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