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맛자락이 둥글게 퍼졌다. 허나 파라락 하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고요하게 흩어진 치맛자락은 꽃봉오리 닫히듯 가라앉아 다시 발치까지 늘어졌다. 굽힌 무릎을 피며 통, 뛰어오르자 하늘을 훌훌 날아오를 듯 몸이 가볍다. 손끝은 새의 날개처럼 활짝 펼쳐져 곧고도 유려하게, 눈에는 차갑게 빛나는 달을 담아내었다. 발걸음마다 바람 밟는 소리가 나고, 가느다란 목덜미에는 소름이 돋아났다. 손에 든 주걱을 세우고 한 바퀴 제자리에서 돌았다. 일직선으로 세운 주걱은 동그랗게 세상의 한 귀퉁이를 잘랐다. 팔은 뻣뻣한 직선이었으나 정작 그려내는 선은 곡선이었다. 강직하게 휘둘러졌으나 부드럽게 펼쳐졌다. 허공을 베면서 선을 긋던 주걱은 이윽고 달빛을 베어 내었다. 춤치고는 너무도 예리하였다. 세상 모든 것을 싸악싸악 그어 버리는 주걱 끝은 눈이 시리도록 날카로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원하였다. 어떤 것에도 잡히지 않은 채 자유로이 노니는 몸짓에 따라 바람이 불었다. 시원하고도 희미한, 물기가 서린 바람. 어느새 그 냄새에 몸이 젖어 들어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그런 바람. 부엌데기는 마침내 춤을 멈췄다. 명확한 시작도 끝도 없는 춤은 잦아들다가 뚝 끊겼다. 그에 누군가가 숨을 들이켰다. 부엌데기는 정자에서 춤추는 것을 들켰다는 것에 화들짝 놀라 뒤돌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한 사내가 있었다. 사내, 윤재민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부엌데기를 보고 있었다. “난향(蘭香)…….” 그의 코끝에는 숨길 수 없는 진한 향이 맴돌았다. 그리고 그 향의 주인은 주걱을 들고 춤추던 부엌데기였다.
그 날, 연위기방에 살던 부엌데기는 사라졌다. 그리고 그 대신에 채홍준사를 후견으로 둔 애기기생 한 명이 나타났다. 그 이름은 가란(佳蘭). 훗날 세상에 향을 퍼뜨리며 기화(伎花)라 불릴, 아직 피어나지 못한 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