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합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시합은 무슨. 만약 잘난 놈들 측에 끼어 있게 된다면 그때는 시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측에 끼게 된다면, 잘난 놈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편에 서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시합이 되겠는가? 아니. 그런 시합은 있을 수 없다.
--- p.19
예를 들면 하스 교장은 일요일마다 학교를 찾아오는 학부모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돌아다니곤 했다. 지독할 정도로 사근거리면서 간혹 만만하게 보이는 학부모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 교장이라는 인간이 내 룸메이트의 부모에게 어떻게 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말은 학생의 엄마가 뚱뚱하거나, 촌스러워 보인다거나, 아버지가 어깨가 넓고 낡은 양복을 걸치고 있거나, 남루한 검은색이나 흰 구두를 신고 있으면, 하스 교장은 그저 간단한 악수만 하고 지나가거나, 억지 미소만 지은 채 지나가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학부모들과는 30분이나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건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는 일들이었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 p.29
하지만 그 책들은 그렇게까지 내게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정말로 나를 황홀하게 만드는 책은,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작가와 친한 친구가 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 자기가 받은 느낌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 p.36
동생인 앨리는 왼손잡이용 미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애는 왼손잡이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묘사적이었냐 하면, 그 애는 손가락 위도 좋고, 주머니도 좋고, 어디에나 시를 써놓았다. 초록색 잉크로 말이다. 그 애 말로는 수비에 들어갔는데 타석에 선수가 나오지 않았을 때 같은 때 읽으면 좋다는 것이다. 지금 그 애는 이 세상에 없다.
--- p.68
떠날 준비를 하고, 가방을 들고서 계단 쪽에 선 채 잠시 동안 긴 복도를 가만히 응시했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는 모르겠다. 난 빨간 사냥 모자를 언제나처럼 챙을 뒤로해서 쓰고, “잘들 퍼자라. 이 바보들아!”라고 큰소리를 질렀다. 그 층에 있는 놈들은 거의 다 잠을 깼을 것이다. 그러고는 계단을 쏜살같이 뛰어 내려갔다.
--- p.91
그렇긴 했지만, 여전히 후회되었다. 망할 놈의 돈 같으니라고. 돈이란 언제나 끝에 가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어버린다.
--- p.190
“언제 한번 남학교에 가봐. 시험 삼아서 말이야. 온통 엉터리 같은 녀석들뿐일 테니. 그 자식들이 공부하는 이유는 오직 나중에 캐딜락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야.”
--- p.219
“알았다니까. 이제 그만 가서 자. 대체 어디에서 누구하고 있는 거야?”
“같이 있는 사람 없어. 나하고 나 자신, 그리고 또 나뿐이지.”
--- p.251
“그건 그렇다치고,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 p.286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 p.310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 p.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