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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하는 지성, 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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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하는 지성, 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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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9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540g | 148*210*30mm
ISBN13 9791159255717
ISBN10 1159255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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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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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시가 호머에서 출발하듯이 현대회화는 고야에서 시작된다.”고 이 탈리아 미술사가인 벤투리(Lionello Venturi, 1885~1961)는 말한다. 프랑스의 말로(Andre Malraux, 1901~1976)도 고야가 현대회화의 막을 올렸다고 비유했다. 고야처럼 스페인 출신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이니 믿어도 좋다. 나는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가 ‘신은 죽었다.’고 했듯, 고야에 의해 ‘미는 죽었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미’ 는 과거의 낡은 그것, 즉 18세기를 풍미했던 고전적인 아름다움이다. 따라서 옛 눈으로 보면 고야는 결코 아름답지 않다. (…) 물론 고야는 그런 괴물이 좋아서 그린 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괴물을 증오하고 그것을 쫓아내고자 그렸다. 아울러 그것에 고뇌하는 인간들을 그린 최초의 화가이다. 민중은 그의 그림에서 비로소 최초로 주인공이 된다. 그러나 그는 민중을 사랑하긴 해도 무조건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고야가 좋다.
---「저자의 말」중에서

스페인은 성모 마리아의 나라이다. 검은 성모마리아상이 발견된 몬세라트 수도원은 스페인 3대 순례지 중 하나로, 전 세계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카탈루냐 사람들은 이 성모를 수호성인으로 모신다. 『스페인의 초상Portrait of Spain』(1963)이라는 책에 19세기에 유행한 마리아와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13세기의 걸출한 스페인 왕 페르난도 3세(Fernando III, 1199~1252)가 죽어 성모를 만났다. 성모는 그에게 사랑하는 스페인을 위해 무엇을 해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먼저, 왕은 포도주와 밀을 희망했다. 마리아는 흔쾌히 포도주와 밀을 주었고 왕은 이번엔 푸른 하늘, 강한 말, 용감한 남자, 아름다운 여자를 소원했다. 다시 마리아가 그것들을 주자 왕은 더욱 많은 것을 원했고, 성모는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마지막으로 왕은 좋은 정치를 달라고 기원했다. 이에 성모는 낭패한 듯 고개를 저으며 “그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좋은 정치란, 성모조차도 이룰 수 없으며 모든 천사가 내려와도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만큼 당시 스페인 정치는 엉망이었다.
---「스페인 정치」중에서

고야는 피카소와 달리 이른바 ‘조숙한 천재’가 아니었다. 벨라스케스는 피카소처럼 조숙한 천재였으나, 고야는 나이 마흔이 훨씬 넘어 자기의 세계를 표출했다. 또한 고야는 마사초(Masaccio, 1401~1428)나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처럼 요절한 천재도 아니었다. 그는 당시 예술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오래 살아 82세에 죽었다. 그리고 작품 3분의 2 이상이 생애 후반에 집중되었고, 근대회화의 선구를 이루는 걸작들은 만년(晩年)에 그려졌다. 피카소는 더욱 오래 살아 91세에 죽었는데, 15세에 왕립 아카데미에 입학해 생전에 부와 명예를 얻은 피카소와 달리 고야의 생애는 좌절의 연속이었다.

(…)고야와 피카소. 이 두 사람은 같은 스페인 출신 화가라는 점 외에는 시대도 다르고 성격이나 화풍도 다르기에 굳이 공통점이라고 할 만한 게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그 두 사람이 함께 보였다. 때론 같게, 또 다르게도 보였다. 적어도 두 사람은 모두 위대하고 기이한 거인들이다. 말하자면 고야는 ‘사후의 거인’이고, 피카소는 ‘생전의 거인’이다.
---「고야와 피카소의 삶」중에서

카를로스 3세는 나폴리에서 스페인에 도착하여 마주한 스페인의 더러움과 위험함에 치를 떨었다. 이미 앞에서 눈치챘겠지만, 모든 창에서 대소변을 버리는 바람에 거리는 그야말로 시궁창을 방불케 했으며 길을 걷다 튀어나온 돌에 걸려 넘어져 다리가 피투성이가 되는 것이 일상다반사였다. 밤이 되면 길은 완전히 암흑에 잠겼다. 또한, 거리뿐만 아니라 시내의 공터란 공터는 모두 공동화장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개혁은 계속되었고 현재 프라도 미술관이 있는 지역부터 정비되었다. 프라도란 ‘목초지’를 의미했는데, 목초지를 산책로로 만들고 길거리에 식물원, 천문대, 미술관 등을 차례로 건립했다. 이어 새로운 도로와 광장, 다리도 건설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포도주에 세금을 붙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왕이 국민에게 음주를 적극 권유하는 초유의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마시면 마실수록 수도는 아름다워진다.”는 말과 함께.
---「카를로스 3세의 개혁」중에서

[도자기 파는 사람]의 중심에 있는 여성은 [양산]의 주인공보다 더욱 사치스럽다. 그녀는 도자기 상인 남자와 노닥거리는 듯한 모습으로, [양산]의 여자가 남자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는 것에 비해 조금 더 자유분방해 보인다. 이 여성 뒤에는 그녀와 비슷한 모습을 한 젊은 여성이 뒤에 있고, 그 곁에는 노파가 있다. 고야의 그림에 자주 함께 등장하는 젊은 여성과 노파는 창녀와 포주를 암시한다는 시각도 있으며, 이 그림을 두고 도자기와 성을 물물교환 하는 장면이라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한편, 또 다른 여성이 뒤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마차에 탄 귀부인을 보라. 그녀는 마차를 부리는 젊은 병사나, 마차를 올려다보는 붉고 푸른 옷을 입은 귀족 청년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듯하다. 그녀는 그들에게 짐짓 냉정한 태도로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별안간 마차가 멈춘 탓인지, 마차에 탄 그녀가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바라본다.

이 그림은 전경과 후경의 대중, 그리고 그 중간에서 귀족의 일상을 함께 표현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그림 속 여성은 모두 우리를 향하고 있지만 남성은 모두 등을 돌리고 있거나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우리를 바라보는 여성들은 그저 살며시 미소를 지을 뿐 특별히 누군가를 유혹하고 있지 않음에도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초기 칼톤」중에서

궁정화가가 된 고야는 스스로 최고의 화가라고 자부하지 않고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을 받아 더 이상 칼톤을 그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왕은 고야에게 ‘시골풍의 재미있는’ 칼톤을 그리라고 명을 내린다. 고야는 이에 항의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지만 그에게 무슨 힘이 있었겠는가. 결국 어쩔 수 없이 6년 만에 다시 칼톤을 그리게 되었다. (…)여기서, 다른 그림에 비해 [짚인형 놀이]는 왜인지 모르게 자연스럽지 못한 느낌을 준다. [짚인형 놀이]는 거리나 광장에서 열린 여성 사육제의 오락이었다. 짚인형은 당시 유행한 프랑스풍 복장을 하고 있다. 17세기 이래 ‘다루기 쉬운 인간’을 뜻한 인형은 당시 강하게 대두된 여성의 자립으로 점차 지위가 약해진 남성을 상징한다. 사육제란 본래부터 사회계급을 전도시켜 조소하는 것이었다. 이 그림은 남성의 지위 약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라는 것 자체의 무상함과 인습의 어리석음까지 풍자한다. 또한 상승과 하강을 본질로 하는 이 놀이는 사회변동을 상징하며, 짚인형 놀이에서 쉽게 변화하는 움직임은 지위와 전통의 불안정을 말한다. 이 그림이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인 1791~1792년 사이에 그려졌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스페인 국내정치만 국한해서 비판한 것이 아니다.
---「후기 칼톤」중에서

고야는 아틀리에에 매일 들렀는데, 한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10시간 정도 작업을 계속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촛불로 빛을 밝혀 마지막 손질을 했다. 캔버스를 가득 채운 햇살은 밤새 작업한 뒤에 맞이한 새벽 햇살로, 대개 고야가 마지막 붓질을 끝내고 휴식을 맞으려는 순간의 풍광을 담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그의 얼굴이다. 그의 표정은 자유롭고 분방하지만 천박하거나 교활하지 않다. 창작의 고뇌에서 해방되어 휴식을 취하려는 것뿐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고야는 당시 기준으로 초로(初老)라고 할 수 있는 50대였고 우리가 뒤에서 볼 60대의 고뇌를 준비하는 성숙된 시기였다는 점, 또한 그가 누구보다도 내면의 표현에 충실한 렘브란트를 특별히 존경하여 자화상에 자기통찰과 심리묘사를 담고자 했기 때문이다. 화가가 전신상을 그렸다는 점 또한 당시로서는 매우 예외적인데, 이 역시 렘브란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그림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작품이며, 고야는 대혁명에 공감한 계몽주의 지식인으로서 자기 표명의 의지를 자화상에 담고자 했다. 그는 이미 해방의 분위기에 들떠 있다. 스페인은 아직 밤이었지만 프랑스가 그랬듯 곧 해가 뜨고 새벽이 다가오리라. 화면 가득한 여명은 화가의 개인적 해방을 상징함과 동시에 사회적 해방을 의미한다.
---「1790년대의 자화상」중에서

고야는 1797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동판화집 『로스 카프리초스』를 통해 최초로 정치적 의사를 표명한다. 19세기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그것이 ‘진실한 기괴함을 보여주었다.’고 시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고야가 『로스 카프리초스』를 그린 것이 당시 영국에 유행한 캐리커처를 보고 난 뒤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는 명백한 정치적 희화이다. 고야는 이단심문을 피하고자 ‘기괴함’을 앞세워 정치에 대한 풍자를 숨겼다.

『로스 카프리초스』는 흔히 ‘변덕’ 또는 ‘제멋대로’라고 번역된다. 그러나 그 의미를 살리려면 ‘자유’라고 해야 한다. 내가 이 책에서 『로스 카프리초스』를 그대로 표기하는 것은 그 뜻을 자유 또는 자유로움으로 이해하고 싶어서다. (…)이제 고야는 남을 위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를 포기한 순간부터 자기류 괴물이 나타났다.”라고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가 말했듯, 고야는 그림을 통해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나타난다]고 외쳤다. 이 그림에서 잠들어 있는 사람은 고야 자신이다. 해설에서 고야는 ‘상상이 이성과 결합되면 모든 예술의 어머니, 모든 경이로움의 원천이 된다.’고 썼다.
---「로스 카프리초스의 사상」중에서

고도이의 별명은 ‘곱창’이었다. 고도이의 출신지가 돼지 곱창으로 유명한 곳인 데다가 곱창이 남성 성기를 연상시켰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 아닐까 한다. 당시 대중은 왕자와 공주를 ‘곱창과 창녀의 새끼들’이라고 농락하며 비웃었다. 한편 고도이는 왕비로 만족하지 못했다. 아내를 두고도 다른 애인들을 여럿 만났다. 고야가 고도이의 애인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을 정도다. 왕비는 질투에 눈이 멀어 이단심문소를 종용하여 불경한 그림을 그린 고야를 체포하게 했으나 그렇게 되면 국민들이 왕비와 고도이의 우정을 ‘오해’하게 된다는 이유로 왕이 반대함으로써 수포로 돌아갔다. 덕분에 ‘성스러운 삼각관계’는 그 뒤로 20년간이나 더 계속되었다.

그림을 보자. 왕과 왕비 사이에 왕자가 서 있고 그 뒤는 비어 있다. 화면의 다른 부분은 사람들이 중첩되어 있으나 왕과 왕비 사이는 공허하다. 그래서 홋타 요시에를 비롯한 호사가들은 고야가 그곳을 고도이 자리로 생각하고 비워뒀으리라고 추측한다. 그림의 왼쪽 구석, 뒤쪽에서 아무 표정 없이 서 있는 고야는 당시 54세였다. 그 전 해에 수석궁정화가로 임명되어 기뻐해야 할 시기이나 그는 그로부터 8년 전인 1792년에 이미 중병으로 쓰러져 가까스로 시력은 건졌지만 청력을 잃고 만다.
---「카를로스 4세의 가족」중에서

[옷을 벗은 마하]는 살아 있는 몸을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체화에는 음모를 그리지 않았다. [옷을 벗은 마하]에서 와서야 비로소 음모가 등장했다. 더구나 그 모습은 당당함을 넘어 자랑하는 듯싶기도 하다. 얼굴에는 화장기가 있으나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강인하게 보이는 팔은 머리를 휘감아 온몸을 드러내고 있다. 흘깃 쳐다보는 눈은 우리를 유혹하는 듯 요염하다. 반면 배경의 필치는 어둡고 억제되었다. 빛은 어둠을 밝히며 부드러운 피부를 부각시킨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얼굴에서 목으로 흐르는 선이 부자연스럽다는 점도 간파할 수 있다. 또한 풍만한 신체가 기대고 있는 긴 의자의 쿠션이나 시트가 조금도 눌리지 않은 점 역시 어색하다.

(…)고가의 비단 옷과 금박 구두는 당시 상류계급 귀부인들이 애용했던 물품인 만큼 마하는 일반 서민이 아니라 고도이의 애인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홋타 요시에는 그림 속 마하의 얼굴이 고야의 만년을 함께한 레오카디아와 닮았다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개진했는데 마하가 레오카디아가 맞다면 레오카디아의 나이와 그림의 제작연대가 맞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생긴다. [옷을 입은 마하]가 그려진 연대로 추정되는 해 중 가장 이른 것이 1796년인데, 이때에 레오카디아는 고작 8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마하」중에서

고야가 청력을 잃은 것은 크나큰 비극이었다. 이것이 개인적인 비극이었다면, 고야가 62세였던 1808년에는 국가적이고 국제적인 비극이 찾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고야는 시대와 민족의 현실에 공포의 눈을 뜬다. 스스로 공범자라는 각성 하에 표현은 더욱 암담해졌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나온 고통은 심연에까지 영향을 미쳐 고야의 비극 제2막을 열게 된다.

(…)고야는 1809년에 마드리드에 돌아와 나폴레옹 미술관을 위해 그림을 선정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리고 궁정화가로 [마드리드시의 우의] 같은 작품을 그리고 호세 1세로부터 스페인 왕실의 훈장도 받았다. [마 드리드시의 우의] 오른쪽에 있는 대형 메달에는 처음엔 호세 1세의 초상이 그려졌으나, 그 후 여덟 번이나 바뀌어 지금은 ‘5월 2일’이라는 글자만 남아 있다. 그림 하나가 이렇게 엇갈리는 운명에 시달렸다는 것은 19세기 스페인의 정치변동이 얼마나 이데올로기적인 것이었는가를 대변 한다. 또한 당시 상황에서 고야가 취해야 했던 모순된 정치적 입장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었는지 잘 설명해준다.
---「스페인과 프랑스」중에서

이 그림들은 민중을 예찬하는 것도 아니고 민중을 모멸하는 것도 아니다. 민중의 영웅적 용기를 예찬하는 애국적인 그림은 드물지만, 고야는 제7번 [얼마나 용감한가!]를 통해 사라고사의 여성 영웅 어거스틴을 예찬했다. 이 그림은 이상하리만치 단순해 보이지만 이러한 단순성이야말로 마침내 고야가 획득한 회화적 완성을 보여준다. 『전쟁의 참화』에는 이처럼 지극히 단순화된 작은 인물상이 광대한 공간 속에 그려진다. 고야는 공격자와 피해자의 익명성을 중심으로 극단적인 상황에 닥친 인간이 삶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과 극도의 피로감에 집중한다. 덕분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독특한 설득력을 얻게 된 것이다. (…)『전쟁의 참화』 제1번 그림 [이제 곧 닥쳐올 사태에 대한 슬픈 예감]은 앞에서도 보았듯이 한 남자가 무릎을 꿇고 팔을 벌리고서 허공을 응시하는 그림이다. 『로스 카프리초스』처럼 고야 자신을 그렸다고도 볼 수 있으리라. 그러나 앞의 화집에 그려진 화가의 자화상과는 달리 이제는 그 자신이 연작 판화의 주인공인 민중의 한 사람이다.
---「전쟁을 보는 눈」중에서

고야는 그동안 그 어떤 예술가도 인간적인 얼굴로 바라보지 않았던 하층을 구성하는 사람들, 즉 농부나 일용노동자에게 인간의 얼굴을 부여했다. 고야는 이들의 투쟁을 칼로처럼 수동적인 고통이나 유린으로 바라보지 않고, 스스로를 방어하고 공격하며 전쟁에 나서서 싸우기도 하는 것으로 보며 이들 또한 한 사람의 개인이자 인간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개별화는 『로스 카프리초스』에서처럼 경멸하는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린 것과는 전혀 달랐다. 민중을 인간적인 존재로 바라본 고야의 시점은 문학에서는 결코 실현될 수 없었던 도덕성의 계몽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고야는 적이 없는 싸움에서 목표도 없이 단지 생존을 목표로 행해진 민중들의 희망 없는 삶을 객관화하지 않고 그렸다. 이를 통해 고야는 그림 속의 사람들, 민중들과 연대하고자 하였다. 마치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나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그림 속에서 힘을 합치는 모습을 통해 민중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보여주었다.
---「칼로와의 비교」중에서

1814년, 고야는 두 장의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을 그리게 된 과정은 기존의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당시 화가들이 그림 내용과 대상을 주문받아 그린 것과 달리, 고야는 스스로 이 그림을 그리겠다고 결심하고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직접 결정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수많은 전쟁화가 그려졌고 대부분이 나폴레옹을 주인공으로 한 영웅 예찬화였다. 그러나 고야는 이러한 공식적인 전쟁화와는 달리, 그야말로 민중을 주인공으로 하여 전쟁 그 자체의 현실을 그렸다. 이는 문학으로 치면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Stendhal, 1783~1842)이나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 1828~1910)에 비유된다.

또한 당시 피라미드 구도에 선과 윤곽이 분명했던 역사화와도 달랐다. 고야의 두 그림은 피라미드 구도가 아닐 뿐더러 선과 윤곽도 분명하지 않다. [1808년 5월 2일:맘루크의 공격]의 경우 비교적 전통적인 요소가 좀 더 강하지만, [1808년 5월 3일, 프린시페피오 언덕의 학살]에서는 그러한 전통은 완전히 사라지고 왼쪽에 있는 피살자만이 강렬하게 그려져 있다. 이렇듯 기존의 전쟁화, 역사화와 달랐던 이 두 그림은 오랫동안 무시당했을 뿐만 아니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프라도 미술관에 걸리지 못했다.
---「새로운 역사화」중에서

『전쟁의 참화』에는 없었던 ‘적’과 ‘투사’ 그리고 ‘구경꾼’이라는 존재가 『투우』에는 분명하게 등장한다. 그리고 이제 투쟁은 집단적인 것에서 개인적인 것이 되고, 전쟁의 주객이었던 군중은 배경으로 밀려난다. 또한『투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투우사의 묘사를 통해 고야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모습을 그리면서도 화가라는 개인을 분명히 보여주었기에 이 그림은 낭만주의로 통한다. 동시에 고야는 자신의 삶을 언제 죽을지 모르는 투우사의 운명에 투영시킨다. 젊은 시절부터 경험해야 했던 경쟁적인 사회생활과 특히 시민전쟁을 통해 벌어진 궁정의 투쟁 속에서 체험한 화가로서의 불안정감을 투우사의 운명에 빗대어 표현했다. 고야는 사회적 속박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예술가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으나 현실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는 투우사의 패배로 그려진다(제12, 21, 26번).

특히 마지막 작품(제33번)은 1801년에 죽은 투우사를 그림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여 드러냈다. 그림 속 투우사는 소가 자신에 의해 희생되는 것을 원치 않았으나 도리어 그 소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이는 고야가 예술가인 자신과 민중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예술가는 투우사들처럼 민중 출신이고 민중을 위해 진력하지만 결국은 민중에 의해 배반당하고 죽음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전쟁의 참화』 마지막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투우』에서도 희망이 없는 해결, 즉 죽음을 통한 종결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고야는 해방의 길을 밝히고 싶어 하는 미래의 비전 사이에서 방황한다. 고야는 죽기 직전 보르도에서 4매의 투우 석판화 연작을 제작했다. 그 작품에는 투우사도, 투우도, 관중도 없고 긴장이나 구별도 없이 모두가 하나가 되어 축제를 벌이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판화집 『투우』의 사상」중에서

흔히 고야는 ‘근대 미술의 혁명아’, 피카소는 ‘현대 미술의 혁명아’라고 불린다. ‘혁명아’라는 말에는 선구자나 개척자라는 의미도 있다. 위 두 그림은 선구적인 그림이라는 점에서 공통된다. 근현대 미술이 모두 스페인에서 출발했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뿐만 아니다. 인류의 미술사는 사실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에 그려진 들소 그림에서 시작된다. 근현대에 이처럼 힘찬 동물을 그린 화가는 고야와 피카소뿐이다. 왜 하필이면 알타미라이고 스페인인가?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현실 문제를 외면한 채 살아간다. 심지어 문제의 주범들과 놀아나 세상이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나는 그런 반성 없는 사람들이 싫다. 그래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다. 이 책에서 다룬 고야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고야는 저항하는 지성의 상징이자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했던 사람이었고, 인간을 파괴하는 두 개의 악, 즉 ‘권력과 성’에 격하게 대항한 고뇌하는 양심이었다.
---「한국에서의 고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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