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끼리는 비판하면 안 된다’는 진영논리, ‘우리 편을 비판하면 적’이라는 패거리주의로 ‘기사단’의 활동은 든든한 뒷배를 얻었습니다. 이 ‘합리적 시민’은 대체로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소수자시민의 모멸감은 이 국면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됐습니다. ---「들어가는 말」중에서
톰과 제리는 섹스를 하지 않아요. ‘재벌’하고 ‘알바’는 섹스를 안 해요. 그런데 남성과 여성은 적대적 모순관계인데, 섹스를 합니다. 이게 바로 이성애제도죠. 그 때문에 섹스가 정치적인 문제가 되는 겁니다. ‘적과의 동침’ 때문에, 남녀가 가족을 만들고 가족은 사소한 문제, 비정치적인 문제로 인식되는 겁니다. ---「1강」중에서
자본주의 혹은 현실정치에서의 여당과 야당의 관계, 대개 이런 걸 정치라고 하잖아요.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심각한 정치적 문제로 보는 사람은 드물어요. 거듭 말하지만, 자본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기본전제는 가부장제예요. 젠더시스템이에요. ---「1강」중에서
저는 여성혐오의 가장 큰 목적이 ‘침묵하지 않는 여성들의 입을 닥치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처럼 성차별을 해도, 성추행을 해도 그냥 가만히 있어주면 좋겠다는 게 남자의 실제 속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추행도 자유롭게 하고, 여자들이 지나가면 품평회도 하는 세상을 남자들이 즐겨왔는데, 이제 여자들이 거기에 반발을 하니까 화가 나는 거죠. 이것이 여성혐오의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2강」중에서
남성인물에게 문제를 발생시켰을 때는 거기 부딪히고, 해결을 시도하고, 문제를 극복하거나 좌절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이자 작품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성인물에게 주어진 상황은 그저 전시되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죠.
---「3강에서」중에서
저는 사실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머리로는 예나 지금이나 뭐가 문제인지 알고 있었어요. 제가 경험한 건 ‘관대한 환경에서 인간이 얼마나 느슨해질 수 있는지’였습니다. 다른 창작자들도 제가 느끼는 압력을 느낍니다. 여러분들은 구제불능으로 보이는 창작자들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저를 바꿨듯이.
---「3강」중에서
5월 대선은 일단 성적소수자 인권에 손사래 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결과를 남겼습니다. 2012년 대선후보일 때만 해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던 분이 이제는 그 법이 필요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나중에 정치’가 탄생했습니다.
---「4강」중에서
정치가 종교화되면 정치인은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대의 구원자’로 신봉됩니다. 종교가 정치화되면 종교인은 약자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배후를 자처합니다. 정치와 종교가 서로 호환되기 쉽다는 것은 그 사회가 위험에 빠져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 관심이 있는 정치인과 종교인들이 합작으로 만들어내는 혐오정치가 횡행합니다. 이때 동성애에 집중해서, 동성애가 정말 옳은지 그른지에 집중하면 ‘저쪽’ 프레임에 말려드는 겁니다. (…) 민주시민으로서 민주주의의 실현을 고민할 때, 뚜렷하게 싸움의 대상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그 싸움의 대상이 한국 근대사에서 뿌리 깊어진 정교유착이라고 생각합니다.
---「4강」중에서
1980년대 남자 운동권들과 1990년대 문화운동판에 있던 남자들이 만나, 40대 서울 남성들은 자신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목소리 뒤에 지금까지 쌓아올린 한국사회의 다른 목소리가 급속도로 지워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2008년에 시작된 광장의 새로운 여성단체의 가능성은 역사화되지 않았고, 2015년부터 2년간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여성혐오 이슈는 정치의 공론장에서 철저하게 외면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룸살롱 남성연대가 스크럼을 짜고 한국사회의 새로운 기득권이 되어 다른 사람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 사회에는 사회변화를 위한 새로운 기획과 다른 목소리들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민주주의이지, 형님, 아우, 형수님의 안온한 그들만의 리그는 아니었을 텐데 말입니다.
---「5강」중에서
한국사회는 정치적 지형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의 상상력에서도 거대한 두 개의 남성-동성사회가 싸우고 있다는 겁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적폐’니 ‘빨갱이’니 하면서 삿대질을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이 둘 모두 거대한 ‘성性적폐’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죠.
---「6강」중에서
강간이라는 실제행위도 중요하지만, 실제행위가 가능해지고 필요하다고 상상되는 그 ‘상상력’이 여성에 대한 배제 및 차별, 폭력과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여성배제 위에 만들어지는 남성공동체란 또 한편으로는 이성애중심적이고, 비장애인중심적이며, 원주민중심적이죠. 페미니스트 대통령의 내각이라고 한다면, 이런 상상력의 문제 역시 이해하고 있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가 되었을 때, 정치적으로 합당한 대응을 했어야죠. 왜냐면 남자들이 여자들을 “돌려서 먹을 수 있다”고 얘기하고, 그것이 남성다움을 형성한다는 그 상상력이 지금과 같은 배제적인 정치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스트들에게 탁현민의 문제가 그렇게 중요했던 것은 이 때문입니다. 탁현민이 싫어서가 아니라, 혹은 문재인 정권에 흠집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성을 교환가치로 삼아버리는 남성중심적인 정치를 깨기 위해서 이는 꼭 해결해야 할 매우 상징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였던 거죠.
---「6강」중에서
위험의 징후가 몇 가지 있습니다. 지난 2017년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가 텔레비전 토론에서 동성애 찬반을 묻는 장면은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성소수자문제가 정치도구화된 순간이었습니다. 해외에서는 이주자나 소수종교 등 소수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정치적 입지를 확대하는 정치세력들이 많죠. 한국에서도 이제 성소수자문제를 정치 쟁점화하여,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소수자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득표에 활용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정치는 결국 다수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게임이고, 소수자를 악마화하는 것은 정치인에게는 아주 달콤한 유혹이죠. 한국정치도 지역감정을 그런 식으로 활용해왔지만, 이제 소수자를 도구화하는 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다음 대선 때는 “외국인노동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슬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외국인범죄에 대한 단속 강화를 찬성하십니까?”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정치인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7강」중에서
문재인이라는 캐릭터가 신자유주의라는 구조를 메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인격과 스킨십으로는 한계가 있지요. 문제는 시민입니다. 구조를 직시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해야지, 팬덤으로 위로받으려고 하면 공도동망共倒同亡입니다. 다 망합니다.
---「8강」중에서
이들에게 ‘유일한 약점’은 젠더입니다. 젠더는 시공간을 초월해 어느 사회에서나 모든 남성의 정치적 문제지만, 이들에게는 도덕적 우월감이 있어요. 문제는 그것입니다. 도덕적 우월감과 자부심 때문에 ‘다른 정치’, ‘다른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아요. 이것이 운동권, 좌파, 진보세력의 적폐가 될 것입니다. 진보나 보수나 여성문제, 성소수자문제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새로운 구호가 등장했죠. “나중에!” 여성문제는 나중에. 선후를 자기들이 정한 겁니다. 예전에는 ‘부차적 문제’, ‘사소한 문제’였는데 요즘엔 ‘나중에’죠. 젠더 스캔들은 계속 터질 것입니다. 이미 저출산이라는 구조적 저항이 완강한 데다 지금 젊은 세대, 여성들은 참지 않아요.
---「8강」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