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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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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3월 21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514g | 125*210*30mm
ISBN13 9791130681214
ISBN10 113068121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나는 7월 초순에 풀려났다. 주소지였던 서부경찰서의 서장실에서 신병인도가 이루어졌다. …… 5월 15일에 갈아입고 나갔던 흰색 옷이 검붉은 잿빛으로 변했다. 나뭇가지처럼 바싹 마른 채, 무릎이 다 찢어진 피 묻은 바지를 입은 나를 보자마자 고모가 울음을 터뜨렸다. 경찰서장이 보든 말든 가방 속에서 두부를 꺼내더니 허겁지겁 나에게 먹였다. 그해 봄의 사건은 당시 스무 살 내 인생의 행로를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피비린내 나는 고통의 기억은 점점 엷어져 갔다. 하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그 새벽 내가 들었던 새소리를 잊지 못했다. 착검한 소총 뒤에서 들리던 그 소리는 도대체 누구의 목소리였을까.
--- p.29~30

우리 사는 세상의 불평등하게 일그러진 모습을 조금이라도 정직하게 바라보려는 이에게 “모두가 따스한 연말연시를”이라는 기원은 낯간지러운 수사가 될 것이다. 연말연시를 맞이하는 나의 마음은 조금은 다른 기원을 드리려 한다. 우리를 위해 더 고생하는 손들이 있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그들의 곤고한 노동을 명증히 인식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종내 이 땅이 힘든 노동의 가치를 으뜸으로 인정하고 노동하는 이의 존재를 존경하는 ‘사람의 세상’ 되게 하소서.
--- p.58

세월이 덧없이 흘렀으니 이제 나도, 천갈피 만갈피 당시 그의 고뇌를 인간으로서 이해할 만한 나이가 되었다. 위에 강정문이 (창간의 중추적 역할을 했고) 직접 헤드라인을 쓴 《한겨레신문》 창간호 광고가 있다. 새로 태어난 신생 진보언론의 긴 호흡과 싸움을 예고하는 명 카피였다. “민주화는 한판의 승부가 아닙니다.” 이 장엄한 문장을 남긴 그는, 하지만 병마와의 한판 싸움에 져서 결국 이생을 떠났다. 일요일 오후 선풍기가 천천히 돌아가는 창밖에는 8월의 태양이 가득하다. 멀리 구름 너머로 그가 씨익 웃음 지으며 “잘 지내나?” 한마디 툭 하고 돌아서는 모습이 겹쳐진다.
--- p.82

그러나 분명한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이처럼 가상현실로 사람들의 억눌린 욕구를 해소해주는 사회는 불온한 사회라는 것이다. 건강한 공동체가 아니라는 뜻이다. 더운 여름날 탄산음료가 잠시 갈증을 없앨 수는 있어도 금방 다시 목이 말라오는 것처럼.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조금은 다른 곳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빈센조〉나 〈모범택시〉 같은 판타지가 아니라 진짜 현실 속에서 초일급 악당들이 모조리 (설렁설렁 말고) 뼛속까지 죗값 치르는 세상 말이다. 만인에게 공평한 법과 제도가 생생하게 작동하는 곳. 이를 통해 정치?경제?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 그리고 그것을 배태한 구조적 거악이 무 베듯 잘려 나가는 사회. 사람들은 하루빨리 그런 통쾌한 세상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 p.131~132

통일이 무엇일까. 처한 입장에 따라 여러 계산이 있을 것이다. 북핵 위기로 대변되는 복잡다단한 국제정치적 환경이 다양한 낙관론과 비관론을 동시에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 나에게 통일은 복잡하지도 추상적이지도 않다. 인위적으로 찢겨지고 갈라진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그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더욱 구체적으로 나에게 통일은 가능성 제로의 짝사랑에 괴로워하는 북한 청년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 날이다. 애써 무표정 짓던 북한 관원이 맞잡은 손에 나만큼의 힘을 주어 반응하는 날이 바로 그날이다. 강릉 공연장을 가득 메운 평범한 남쪽 사람들. 애틋한 마음으로 북쪽 가수들에게 마주 손을 흔드는 그이들의 마음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 p.160

그렇게 4월 16일이 지나갔다. 오늘은 오후 3시부터 강의다. 연구실 의자에 앉아 창밖을 가만히 바라본다. 눈부신 햇살이 천지를 가득 채우고 봄바람이 하늘 벌판을 뛰어간다. 아이들아 정말 미안하다. 남아 있는 우리가 이렇게 무력해서. 꽃 한 송이 외에는 너희들 앞에 바칠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 p.204

초자연에 대한 미신이라고 비웃어도 좋다. 아이들 가르치는 선생이 비과학적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나는 왜 저런 구름이 나타났는가에 대하여 확고한 생각을 품는다. 3년 동안 피 흘린 수백만 사람들의 신음이 하늘로 올라간 것이다. 그 절규가 마침내 침묵하는 누군가의 마음을 뒤흔든 것이다. 그래서 30년 전 시청 앞 광장에서 그랬듯이, 지금 리본 구름으로 땅 위의 고통받는 인간들에게 이런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 p.218

마르크스가 예언했던 형태를 한참 뛰어넘어 극한의 진화를 거듭하는 세계적 투기금융자본의 위세. 그 독이빨에 수억 명의 몸과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가는 광풍을 본다면 마르크스는 과연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묘지 구석구석 묻혀 있는 이 사람들의 영혼은 또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여름 한낮의 런던 북부 하이게이트 묘지. 나무 그늘 사이로 누군가의 노래인 듯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나는 살았고 싸웠고 죽어간 이들을 애도하는 성호를 그었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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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온다』는 앎과 삶을 연결시키고자 고민하며 살아온 김동규 교수의 자취를 담아낸 책이다. 인간에 대한 연민과 연대가 어떻게 시작되는 것인가를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교수, 『질문 빈곤 사회』 저자)
저자의 시선은 삶이 지닌 고통에 향하고 있다. 그러한 고통이 개인적이건 사회적이건 저자의 공감능력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이야기가 되어 펼쳐진다. 한 편 한 편마다의 글은 낱낱의 구슬이 되어 독자에게 제시된다.
- 우희종 (서울대학교 교수,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 상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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