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티베트의 유목민들
천 길 낭떠러지를 바라보며 구불구불 하늘로만 오르다가 모처럼 드넓은 초원을 만났다. 여기저기 유목민들의 천막과 가축들이 보인다. 오랜만에 사람 구경을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갑자기 몰려든 유목민으로 오히려 내가 구경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들의 땅에서 이방인인 내가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미소를 띠고 얌전히 그들의 관람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카메라를 들었더니 손사래를 치며 강하게 거부한다. 손짓발짓을 섞어 어렵게 대화를 하던 중 한 아이가 낡아빠진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이면서 뭐라고 하는데,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우리를 찍으면 이렇게 나온 사진을 주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이들에게 사진을 갖다주겠는가. 그러나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그들의 모습을 찍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조만간 돌아오는 길에 사진을 가져다주겠다고 약속해버렸다. 사진을 찍고 몇 가지 선물을 건네주고는 그들과 작별했다. 돌아서면서 마음이 영 찜찜했다. 약속을 지킬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아직도 그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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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 아이들
내 땅 네 땅이 없다. 당연히 집 걱정도 없다. 천막 하나 가지고 철 따라 초원을 찾아 떠돈다. 보이는 하늘, 보이는 땅은 전부 내 세상이다. 아이들은 초원의 천막에서 태어난다. 천막 안이 우주의 전부였다가 곧 아이가 밟은 땅, 아이가 보는 하늘이 우주가 된다. 남루를 걸쳤다고 혀를 차지 마라. 그들의 우주가 훨씬 더 넓고 깊다. 지겨운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비웃지 마라. 천지만물이 그들의 선생이고 친구이다. 찌든 문명과 비교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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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 사막에서
인도의 북서쪽에 있는 ‘타르 사막’을 아시나요? 그곳에서 펼쳐지는 ‘낙타 사파리’의 낭만을 들어보셨나요? 낙타 등에 올라타고 동화 같은 황금빛 성채를 뒤로 하며 자신의 그림자를 벗 삼아 사막을 건너보세요. 영혼 깊숙한 곳에서 울려오는 자연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콧수염에 터번을 두른 사내들과 둘러앉아 이제 막 구워낸 ‘짜파티’를 먹으면서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가는 태양을 바라보세요. 사막 위에 꽃피운 사랑 이야기도 들을 수 있습니다. 밤이 깊어지면 팔을 베개 삼아 모래밭에 등을 대고 밤하늘을 쳐다보세요.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무수한 별들이 당신을 잠 못 이루게 합니다. 스쳐가는 별똥들은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게 합니다. 너무 외로워지면 간밤 꿈속의 오아시스에 들러보세요. 때 묻지 않은 손길이 당신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전설을 조심하세요. 당신을 유혹해 영영 떠나지 못하게 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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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주라호의 아이들
나마스테!
북인도의 내륙 카주라호로 오세요. 자연의 숨소리가 들리는 곳이랍니다. 오시거든 사원의 이색적인 조각들에만 정신 팔지 마시고 시간을 내어 저희들과도 놀아주세요. 비록 맨발이지만 언제나 넉넉한 시간이 있고 컴퓨터도 없고 PC방도 모르지만 재미있는 놀이는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요. 찾아오실 때 달콤한 사탕 몇 알과 연필이나 볼펜 한 자루 선물해주시면 동생들과 함께 나눠 먹으며 당신을 만난 일기를 쓸 거예요. 그리고 당신의 손바닥에도 축복을 내려드리고... 여러분, 카주라호로 오세요. 그리고 저희들을 찾아주세요. 당신에게 친구가 되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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