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과 처음 한 집에서 지내게 된 때가 생각났다. 낯선 이들과의 동거. 거기다가 원치 않았던 관계. 떠오르는 옛 기억을 하나하나 곱씹어보며 지언은 맥주를 마셨다. 볕이 좋은 주말 오후였다. 지언은 언제나 그랬듯 한가로운 주말의 특권인 늦잠을 즐겼다. 등교를 하지 않는 날, 아직 덜 여문 고등학생에게는 천국이었다. 이제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시각이 되어서야 묵직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침대 위에서 상체를 일으킨 지언은 벗어두었던 트레이닝 바지를 꿰어 입으며 자연스럽게 방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의 상체는 보기 좋은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부엌으로 간 지언이 냉장고 문을 열자 서늘한 냉기가 온몸에 닿아왔다. 그는 물병을 들고 거실을 가로질러 아담한 테라스에 섰다. 단정한 정원 한쪽에 위치한 빨랫줄에는 노란색 브래지어가 걸려 있었다. 안구로 닿아오는 그 이질적인 광경에 그제야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이곳은 더 이상 부친과 자신만이 지내던 예전의 집이 아니라는 것을. 물을 마시던 지언은 미간을 모으며 몸을 돌렸다. “응? 오빠 일어났…….” 거실로 나온 은지가 지언을 발견하고 알은체를 했다. 하지만 곧 그의 단단한 상체로 시선을 옮기더니 이내 흠칫하며 다른 쪽으로 얼굴을 돌려 버렸다. 그리고는 두 뺨을 붉혔다. 지언은 어울리지 않게 쑥스러워하는 그녀의 곁으로 저벅저벅 다가섰다. 점점 가까워지는 지언으로 인해 한 걸음 뒤로 물러선 은지가 괜스레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옷 좀 입고 다녀!” 은지는 무감정한 얼굴로 다가오는 지언을 힐끗 올려보았다. “그럼 너도 벗고 다녀.” 나직한 지언의 음성이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굴곡 없는 태평한 어조였다. 완고한 선을 그리고 있는 지언의 얼굴이 가까이에 있었다. 양 볼이 더욱 뜨거워졌다. 은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지언이 그녀를 지나쳐 걸었다. “저질.” 등 뒤에서 볼멘소리가 들려왔지만 지언은 돌아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