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사 출판국에서 미술 편집 업무를 했고, 미국으로 가 오티스 파슨스 미술 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 과정을 배웠다. 그 후 오랫동안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국 어린이도서상(일러스트레이션 부문)을 받았으며, 작품으로는 『둘이서 둘이서』, 『엉금 엉금 꼬마책』,『할머니는 꽃들하고 말해요』,『돌잔치』 등이 있다.
오래전에 기관사를 아버지로 둔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좀체 아버지를 보기가 어려웠다. 아버지가 서울과 멀리 떨어진 지방을 오가는 증기기관차의 기관사였기 때문이다. 소년이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아버지는 고향 가까이 있는, 짧은 거리를 왕복하는 지방 철도의 기관사로 전근되어 가족이 이사를 한다. 소년은 밤샘 근무가 잦았던 아버지를 비로소 규칙적으로 날마다 만나게 된다. 소년에게는 처음 시작된 낯선 아버지와의 새로운 관계였다. 열 살 이쪽저쪽의 어린애였던 소년은 아버지에게 어리광을 부린 기억이 별로 없다. 아버지 역시 열아홉 너무 이른 나이에 소년을 아들로 만났기에 눈에 띄게 애틋한 정을 표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근엄하신 분은 아니었다. 언제나 훈훈한 미소가 감돌았지만, 곰살맞고 자상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1년 남짓 시간이 흐른 뒤에 그 사건이 일어난다. 그것은 큰 사건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가 없다. 소년에게는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었으니까. 그것은 소년이 아버지의 기관차를 타고 철도 위를 달린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날 기관사인 아버지가 소년을 기관차에 태우고 손수 운전하여 그 지방 철도의 종착역까지 함께 달려갔다 온 일이었다. ‘이건 꿈같은 일이야! 내가 아빠의 기관차를 타고 아빠와 함께 달렸다니!’ 소년에게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감격이었다. 그리고 더욱 잊을 수 없는 일은 그날 과수원 사이의 동화 같은 종착역에서의 맛있는, 그러나 석탄가루가 섞인 점심밥을 먹으며 아버지와 나눈 이야기였다. 그것은 아버지와 소년이 처음 나눈 이야기이자 다시는 못 나눈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날의 일이 소년과 아버지 사이에 일어난 사건이라고밖에는 달리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사건. 그것은 어느 봄날 일요일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처음으로 아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눈 아버지. 그 어린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고민과 바람을 듣고는 미안한 마음에 말을 잃는다. 하지만 어느 새 훌쩍 커 버린 듯한 아들의 의젓함이 대견스럽다.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몸에 나쁜 석탄가루를 때는 증기기관이 아닌, 꽃의 향기로 움직이는 향기기관을 발명해서 그 기관차를 아버지가 운전하게 해드리겠다고 다짐한다. 그 자리에서 난생 처음으로 베고 누운 아버지의 무릎에서 편안한 얼굴로 점점 깊은 잠속으로 빠져든 소년, 그리고 꿈속에서 이상한 기관차를 타고 꽃나라로 떠나간 아버지. 소년의 아버지는 더 이상 나이를 먹을 수 없는 ‘영원한 스물아홉 청년 기관사’가 되어 소년의 곁을 떠나갔다.
열한 살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소년. 게다가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이 부자로 가까이 지내기는 불과 2년 남짓, 함께 한 세월이 너무 짧았기에 아버지의 그 빈자리가 더욱 그립고 아쉬웠던 소년의 마음이 가슴 뭉클 전해오는 동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