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쯤부터 청와대와 안기부의 고위 인사들로부터 시사저널 신중식 발행인에게 전화가 빗발쳤다. 맨 먼저 전화를 걸어온 김광일 대통령비서실장은 신중식 발행인과는 서울대 재학 시절에 4.19 시위를 함께 한 ‘4월회’ 멤버여서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잠시 뒤에는 최근 외교안보수석으로 영전한 반기문(潘基文)이 서울대 외교학과 선배인 신중식을 찾았다. APEC을 앞두고 이런 기사가 나가면 큰일이라고 통사정을 했다. 이어 신중식과 경기고를 함께 다녔던 윤여준(尹汝雋) 청와대 대변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 p.37
오세응 부의장은 7분 동안 의사봉을 48번 두드렸고, 신한국당 의원들은 여섯 차례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서울에 해가 뜨려면 한 시간 반이나 남은 이른 시각에 벌어진 ‘날치기’였다. 야당은 야당 의원들에게 본회의 소집 통보를 하지 않은 점과 국회 본회의는 오후 2시에 개의하고 시간을 변경할 때는 원내 교섭단체들과 협의해야 한다는 절차법(국회법)을 위반한 점을 문제 삼아 무효화 투쟁을 전개했다. --- p.67
박채서 소령이 보기에 정보사, 특히 공작단은 아직 1960~70년대에 갇혀 사는 군상들의 집합소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간부의 상당수는 과거 북파공작 부대인 ‘설악단 B팀’(HID 무력보복팀) 출신으로, 군 복무기간의 대부분을 사회에 동떨어져 육체적 훈련으로 단련되었지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 p.97
심지어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외교 기밀문서에는 2008년 5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한나라당)이 자신의 동생인 이 대통령에 대해 “뼛속까지 친미이고 친일이니 그의 시각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대목까지 들어있다. 외교 전문 내용을 100%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위키리크스 문건은 적어도 한국에는 외교관부터 대통령까지 ‘뼛속까지 친미’인 관료들이 많고, 미국의 정보원들이 곳곳에서 미국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 p.101
박 팀장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방공호 설계도면을 복사해 가서 김태우 협조관을 통해 미국 측에 여건을 통보했다. 윌슨 지부장은 뜻밖의 성과에 놀라는 눈치였다. 한 달 뒤에 미국 본토에서 리비아 담당 책임자가 날아와 카다피 타격을 위한 단기 공작이 시작되었다. --- p.104
이미 지휘관의 길을 포기한 박채서는 ‘정보사 공작관’에서 ‘안기부 공작원’으로 변신하는 데 동의했다. 그로서는 안정 궤도에 오른 공작여건을 가진 안기부 비밀 공작요원이 되어 큰 배로 갈아탄 격이었다. 안기부로서는 정보사가 진수시켜 안전하게 항해 중인 공작선 한 척을 선장과 함께 ‘턴키 베이스’로 사들인 격이었다. 결국 공작선의 ‘마스트헤드’가 정보사에서 안기부로 바뀐 셈이었다. --- p.115
북한 측 ‘포대갈이’ 사업 관련자들은 장 씨가 연금되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호떡 집에 불난 듯 야단법석이었다. 박채서는 어둠 속에서 혼자서 미소를 지으며 불구경을 했다. 그러다가 최후통첩 10일을 하루 앞둔 마지막 날에 서재호를 앞세워 남은 물품 대금을 정리해 주었다. 박채서는 이로써 장씨 일가에 큰 빚을 안기며 북한 수뇌부에 다가갈 수 있는 징검다리를 하나 걸쳐 놓았다. --- p.130
50대 남자는 자신을 ‘리인’이라고 소개하고, ‘조선노동당 조사부 베이징 책임자’라고 거침없이 신분을 밝혔다. 그는 대화를 통해 박채서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박채서가 현재까지 접촉해온 북측 인사는 물론, 추진하는 사업 내용까지 알고 있었다. 리인이라는 자는 단도직입으로 박채서에게 제안했다.
“우리랑 같이합시다. 우리랑 손잡으면 박 선생한테 선불로 100만 달러를 조건 없이 지원하겠습니다.”
파격적인 미끼였다. 1994년에 100만 달러는 큰돈이었다. 리인은 박채서에게 “선생 같은 조건을 갖춘 사람이 김영수나 리철 같은 사람들과 일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 p.134
골프 핸디가 프로급인 박채서는 골프장에서 우연한 기회에 그를 알게 되어 그의 골프 선생이 되었다. 물론 그가 산허우이 회주라는 사실은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 알게 되었다. 한번 보복 대상으로 찍으면 끝까지 추적하는 삼합회 조직의 생리가 놀라웠다. --- p.154
금창리 핵시설 의혹은 북한의 역공작에 말려든 것이었다. 나중에 흑금성 공작원 박채서가 북한에 침투해 파악한 바로는, 북한은 국정원-정보사의 조선족 활용 공작을 꿰뚫고 있었다. 북한은 한-미 대북공작에 혼선을 주기 위해 조선족을 포섭해 관련 자료와 핵물질이 든 토양까지 제공해 역용한 것이었다. 국정원-정보사는 그런 줄도 모르고 대어를 낚은 것처럼 반기고 관계자들을 포상했던 것이다. --- p.157
북측에서 박채서에게 신뢰할 만한 골동품 감정사를 대동하고 방북해 달라는 요청을 전해 왔다. 박채서가 상부에 보고하니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 방북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박채서는 처음부터 북한 측 의뢰품을 감정해온 한광무 선생과 함께 방북길에 올랐다. 그들이 맨 먼저 안내한 곳은 묘향산 국제친선관람관 근처의 산속 동굴이었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국보급 골동품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북측은 남한 전문가의 감정을 통해 이 골동품 전체의 실제 거래 가격을 알고 싶어했던 것이다. --- p.163
김영룡 부부장은 식사 중에 지나가는 말처럼 불쑥 땅 이야기를 던졌다.
“박 선생, 부여에 사논 땅은 잘 되고 있소?”
그 순간 박채서는 ‘등골이 오싹해진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들이 자신을 포섭하려고 찍을 때부터 철저히 뒷조사를 한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들의 테스트 관문을 통과하는 의례가 있을 것을 어느 정도 각오하고 예상도 했다. 하지만, 부여 땅만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 p.201
잠시 후에 김영룡 부부장과 함께 김정일이 들어왔다. 그는 으레 악수 정도는 할 줄 알고 일어서서 대기했으나, 김정일은 그에게 그냥 앉으라고 권하고는 상석에 가서 앉았다. 김정일은 약간의 쇳소리가 섞인 허스키한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내가 알기로, 박 선생은 의지가 굳고 대가 센 것으로 알고 있소. 부모에 대한 효심도 강하다고 하던데, 공화국에서는 그런 사람을 신뢰하오.” --- p. 208
저들은 박채서가 북에 접근한 진의를 파악하려고 마찬가지로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학력과 교우 관계, 친인척 관계, 그리고 직업과 근무 행태까지 살아온 흔적을 방북 전에 샅샅이 조사하고 추적했다. 그러고도 그가 방북했을 때는 전혀 예기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수단과 방법으로 지속적으로 그를 시험했다. 적진에서의 활동은 늘 그의 빈틈과 허점을 찾으려는 보위부의 ‘창’과 공작원 신분을 들키지 않으려는 그의 ‘방패’가 부딪치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 p. 232
젊은 수사관은 김당이 자리에 앉자, 마치 자신이 최대한 자제심을 발휘해 조사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는 듯,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당신 때문에 간첩선 놓친 것을 알기는 합니까?”
김당은 짐짓 모른 체했다. --- p. 276
‘베이징에 상주한 100여 명의 북한 공작원’은 다소 과장되었지만, 장석중이 파악한 북한의 정세 판단과 대선 개입 의도는 대체로 정확했다. 한성기는 다시 한번 ‘총격 요청 카드’를 역설했다.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답보상태에 있으니,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4.11총선 때처럼 판문점에서 무력시위가 있어야 합니다. 홍보가 중요하므로 사전에 북측과 약속된 지점에 미리 카메라를 설치해, 북측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내려오는 장면을 실감 나게 찍어 뉴스 속보로 방영하면 국민에게 충격이 그대로 전달되어 효과가 극대화될 것입니다.” --- p. 334
“이 과장한테서 들었겠지만, 회장님의 뜻을 직접 전하기 위해 보자고 했소. 윤형이 나라를 위해 기자회견을 해준다면, 무역업체 인수 및 경영을 보장해주겠다고 하십니다.”
‘회장님’은 권영해 부장을 지칭하는 은어였다. 윤홍준이 거듭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의욕을 보이자, 김은상은 이대성 실장한테서 받은 1만 달러를 경비조로 건넸다. 윤홍준은 다음날인 12월 10일 오전 주 상무에게 전화해 베이징으로 출국한다고 알렸다. --- p. 368
밤샘 조사는 이튿날 오전 4시에 일단 끝났다. 권영해는 조서에 대한 확인과 몇 군데 수정작업을 거쳐, 마지막으로 서명 날인만 남겨둔 상태에서 4시 40분쯤 화장실에 갔다. 그리고 5분 뒤에 요란한 파열음과 함께 피 냄새가 화장실 밖으로 퍼져 나왔다. 권 부장이 커터 칼날로 배를 긋는 자해를 했던 것이다. 요란한 파열음은 그가 자해를 한 뒤에 변기를 깨서 난 소리였다. 자해에 사용한 커터 칼은 그의 성경책 속에 있던 거였다. 자해 소동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권영해에 대한 구속은 4월 2일로 지연되었다. --- p. 429
검찰은 북풍 사건 수사 발표에서 사실상 흑금성 공작원 박채서의 주장을 대부분 수용했다. 그가 처음에 국민회의 쪽에 ‘북풍’을 막기 위한 양심적 제보자로서 접근했는데, 나중에 정동영-천용택 의원과의 접촉 사실이 안기부에 포착되자 국민회의와 접촉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국민회의와 북측 간에 연계가 있는 양 안기부에 허위로 보고했다는 것이었다. --- p. 464
김당 기자가 정 의원에게 그의 서운한 감정을 전달하자, 정 의원은 그 심경을 이해한다고 했다. 정 의원은 또 문건이 공개된 뒤에 김 대통령에게 ‘흑금성이라는 공작원이 바로 대선 전에 북풍대책팀에 도움을 준 제보자라고 보고되었던 그 사람’이라고 보고했다는 사실도 전했다. 김 대통령도 흑금성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김당은 그가 안기부에서 봉급을 받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특수공작원임을 주지시켰다. --- p. 469
“3억 원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대치니, 나머지는 당신이 도와준 정권에서 받으시라.”
아무리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다 한들, 기존의 안기부 요원들의 처지에서는 본래의 공작 진행 틀에서 벗어나 정치권에 휘말려 들어간 박채서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박채서 본인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그 악연이 끝없는 줄로 이어져 2010년 6월 1일 새벽 6시까지 이르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 p. 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