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공영방송에 대한 ‘보편적 시청권’ 문제를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대한민국 국민의 시청권은 왜 이렇게까지 위협받게 된 것일까? 재송신 분쟁은 자본의 논리만이 작용한 결과다. “내 콘텐츠의 사용 대가를 내라”는 지상파 방송사의 주장이 법원으로부터 정당성을 확보한 후 이 논리가 고스란히 반영됐다. 케이블 방송 사업자들은 “재송신을 통해 시청권(커버리지)을 해결해주었으니 상계가 마땅하다”고 맞섰다. 양자의 갈등에서 방송법에서 정의한 방송의 공적 역할이나 공공성에 대한 판단은 조금도 고려되지 않았다. ---pp.25-26
당시 방통위가 국회에 제출한 최종 의견은 ‘KBS 수신료 인상에 찬성’한다는 입장이었다. 다만, KBS가 제출한 인상분에 대한 사용처를 구분하는 재원 분석을 다시 하고 지배구조 개선 논의를 전제하는 등 몇 가지 단서 조항을 붙였다. 방통위의 이런 입장은 5명의 상임위원 중 야당 추천의 이경자 위원과 양문석 위원이 동의하지 않은, 즉 다수결 원칙에 따라 여당 추천 3인만이 동의한 내용이다. ---pp.51-52
상임위원들의 이 같은 부정적 평가는 채 1년이 안 돼 바뀌었다. 정부는 규제완화 차원에서 DCS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당시 KT스카이라이프에 대한 상임위원들의 문제의식이 ‘허가 역무의 존립을 위협한다’는 데 있었던 점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판단 이면에는 ‘괘씸죄’도 짙게 포함돼 있었다. 상임위원들은 KT스카이라이프가 규제기관과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해 ‘물의’를 일으켰다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 이런 상황이다 보니 DCS의 타당성 여부보다 절차상의 하자나 ‘범 KT그룹’ 측 태도에 대한 상임위원들의 심정적 반대심리가 더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pp.73-74
2008년 1기 방송통신위원회 발족부터 우리나라 방송정책의 화두는 ‘글로벌 미디어 기업’과 ‘방송독과점 해소’였다. 그리고 그 구체화는 ‘신문방송 겸업’을 허용하고, 대자본이 방송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 방송법 개정이었다. 이 같은 법 개정은 신문이 새로운 방송사업자, 즉 종편PP 등장으로 이어졌다. … 신문업계에는 ‘안 해도 망하고 해도 망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될 정도로 생존에 대한 위기의식과 방송시장 진출에 대한 강박관념이 컸다. 이명박 정부는 … 독과점 형태인 지상파 방송3사의 구도를 깨트려 방송시장 경쟁을 통해 미디어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거대 신문사들의 요구를 수용해주자는 정책적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pp.112-115
시민단체에서는 “연합뉴스는 외환위기 때 YTN를 팔았는데 지금 와서 다시 보도채널을 한다는 것은 후안무치”라고 논평하기도 했다. 연합뉴스가 다시 보도PP 자격을 얻은 후 방통위 안팎에서도 “심사단에서 공공성 평가에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는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pp.132-133
종편PP를 반대하거나 부정적 평가를 하는 견해는 주로 이념적 논쟁에서 많이 다뤄진다. 사실 이는 주관적 평가다. 오히려 종편PP는 글로벌미디어그룹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기준으로 냉정하게 평가하는 게 맞다. … 이명박 정부가 야당 및 시민단체의 반발에도 신문사의 방송시장 진출을 허용한 미디어법을 제정하고 종편PP를 무더기로 선정한 근거는 ‘글로벌미디어그룹 육성’이었다. … 하지만 사업 개시 1년이 지난 시점에 이들을 평가한 결과는 참혹하다. … 미디어사업의 성공은 초기 자금력이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탄탄한 자금력도 없을 뿐 아니라 투자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약속한 투자조차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p.135-136
‘종편정책’이 다시 출발점에 서게 됐다. 정부는 2014년 2월 중 종편PP에 대해 재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 재승인 기준까지 마련한 상황이니 기준에 맞는지는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2기 방통위가 새 방송사업자에 승인장을 교부하던 당시, 매년 이들의 사업 이행실적을 점검한다는 단서를 붙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종편PP들은 사업권을 승인받기 위해 제시한 계획을 그동안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방통위 관계자들조차 “승인받은 사업계획서는 캐비닛에 처박고, 현실적인 사업계획서를 다시 짰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pp.148-149
정부가 나서서 망 투자를 점검하고 독려하는 것은 장치산업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통신정책이 당시 정부에 큰 부담이었던 낮은 경제성장률, 높은 물가상승률, 고용문제 등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측면이 강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인위적인 네트워크 투자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면밀히 따져보자. 기업은 적절한 시기에 투자를 회수하고자 한다. 망이 고도화되는 만큼 이에 따른 새로운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용자가 새로운 서비스로 옮겨가도록 하는 마케팅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단말기 역시 고도화된 서비스에 맞춰 새 단말기로 진화된다. 서비스 고도화가 빠를수록 시장을 주도하는 주류 단말기 역시 빨리 교체될 수밖에 없다. ---p.171
오히려 방통위 1기 야당 추천 상임위원들은 이 법 조항에 근거해 독립적 의사결정을 하고자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야당 추천 위원들이 겪어야 했던 수모는 만만치 않았다. 야당 추천 상임위원들이 그들을 추천한 야당이나 시민단체로부터 “야당의 입장을 적극 대변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 이병기 위원은 당시에도 “야당에 진 빚이 없다. 추천받았다고 해서 내가 야당에 무언가를 갚아야 하거나, 그 이유로 동의할 수 없는 야당의 입장을 대변할 필요는 없다”는 개인 견해를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 책은 이제까지 방송통신정책이 기울인 노력을 냉정하게 살펴봄으로써 새로운 목표를 향해 출발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각 사안마다 필자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책을 입안한 공직자들, 방송통신산업계 종사자와 미디어학계 관계자들은 현장 기자의 문제제기를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길 권한다. 공통의 목표를 갖고 함께 노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과거의 경험에서 얻는 많은 깨달음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 노준형 (전 정보통신부 장관)
신혜선 기자가 펴낸 《방통강국을 다시 상상한다》는 방송통신산업정책에 관한 출입기자의 현장기록이다. 최근 인구에 유행어로 회자되고 있는 한국 영화 대사 “살아 있네”라는 말처럼 이 책은 이명박 정부 5년간의 방송통신정책에 대한 살아 있는 증언이다. 이 책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을 비롯한 정책담당자들, 방송 통신 분야의 미디어사업자들의 이해관계와 역동적 다이나믹스를 소상하게 또 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다. - 정윤식 (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방송과 통신은 우리의 일상이지만 이를 보는 시각과 견해는 서 있는 자리에 따라 판이하게 다르다. 정책이 정치에 끌려다니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태어난 방송통신위원회는 때때로 갈등의 진원지가 되기도 했다. 신혜선 기자는 가차없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방통위를 살펴보고 이 책에 선명한 핵심을 담아 내일을 보여주었다. - 송도균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네트워크가 전부인 시대는 갔다. 플랫폼과 콘텐츠가 우위를 점하는 시대다. 하지만 지난 5년간 대한민국 ICT정책을 책임진 방송통신위원회는 그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짚었다고 보기엔 많은 한계를 노출했다. 미래는 과거에 대한 복기와 반성에서 출발한다. 대한민국이 ICT 분야에서 한 발 앞서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알고 싶다면, 발로 뛰며 온갖 사람을 만난 결과를 자신의 전문성으로 잘 엮어낸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