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살고 싶었다. 그것이 왜 그리 힘들었을까? 오랫동안 고민해서 얻은 답, ‘나만의 세계, 자기 세상이 없다.’ 그때 알았다.
산다는 건 자기 세계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걸. 어렸을 때는 자기 세계가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나이가 들수록 중요해진다. 마음껏 즐기며 쉬고 꿈꿀 수 있는 곳, 그런 세계가 필요하다. 자유로운 삶을 위한 최선의 길은 자기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자기 세계를 갖는다는 건 자기다운 삶의 방식을 만든다는 것이고, 자기 영역을 구축한다는 뜻이다. 자기 세계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침입할 수 없는 영역을 가졌고, 자기만의 가치관으로 살기 때문에 삶의 만족도가 높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존중받는다.
---「서문」중에서
‘이것이 나다운 거다.’ 이렇게 정해버리면 괴로워진다. 그 길만 나답고 다른 건 나답지 않아 보인다. 그 길도 나답다면 아무 길로 가도 괜찮다. 나답게라는 말의 강박에서 벗어날 때 진짜 나다움이 허물을 벗고 속살을 드러낸다.
나는 신인가수 : “오늘 공연장에 열 명이나 있어.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건 행운이야. 아, 좋다 좋아.”
나는 인기가수 : “공연장에 사람이 열 명밖에 없잖아. 이런 데서 노래를 하라니 화가 나네. 정말 싫다 싫어.”
상황은 같은데 감정이 다르다. 내가 누군지, 그것에 갇혔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해, 그건 나다움이 아니다. 나다움이 만든 또 하나의 감옥이다. 나다움을 오해하면 지금을 즐길 수 없다.
---「1장 카프카처럼 살아볼 것」중에서
혼자를 못 견딜 때 사람에게 집착한다. 절교라도 하는 날에는 애정이 분노가 된다. 말끝에 칼날이 돋고, 들리는 모든 말이 송곳 같다. 그렇게 사람과 멀어지고 우울이 깊어간다. 이 모두가 혼자 지내는 법을 잊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혼자 지내는 연습을 해본다. 어렵지 않다. 일단, 그냥 혼자 있어 본다. 스스로 선택한 외로움은 고독이라 부른다. 고독은 혼자 있을 줄 아는 것, 자기와 시간을 보내는 것. 음악을 틀어도 좋고, 책을 펼쳐도 좋고, 요리를 해도 좋다. 자발적으로 선택했는지가 중요하다. 어쩔 수 없는 혼자 있음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혼자 있겠다는 결심이면 된다.
---「2장 이해되지 않는 사람으로 남을 것」중에서
그럴 때 체 게바라를 소환한다. 우리와 다른, 용기 있고 멋진 체 게바라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체 게바라를 소환한다.조금 더 쉽게 하자면 ‘체 게바라’라는 이름을 지우고 그 자리에 자기 이름을 넣어 보는 거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두려웠다, 모터사이클이 나를 얼마나 안전하게 데리고 가줄지.” 표현은 다르지만 고민은 같다. 이 길이 아닌 것 같을 때는 어떡하지? 이어지는 그의 고백에서 유추해 보면 그는 두려움이 사라진 상태까지 기다린 것이 아니다. 조건을 걸고 그게 충족되면 떠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게 아니라 두려움을 안은 채 그의 길을 걸었다.
두려움이란, 단지 벌벌 떠는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내일을 생각할 때 갖게 되는 감정을 총칭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미경험, 미답의 상태에서 내일의 여정을 눈앞에 둔 사람이 갖는 감정이 곧 ‘두려움’이다.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은 단 한 가지다. 미래를 과거로 만드는 것, 즉 경험뿐이다. “마음속에 생긴 두려움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현실과 부딪힘으로써 그 두려움을 날려버리는 것뿐이다.”
---「3장 높은 자아에 초점을 맞출 것」중에서
세상엔 성공했기 때문에 자기답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고, 자기답게 살기 때문에 세상이 말하는 성공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젠 알 것 같다. 진정한 성공이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삶이 아닌, 나답게 사는 것
임을. 나다움이 성공임을.
---「3장 높은 자아에 초점을 맞출 것」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