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앞에서 절망한 남자가 다리에서
몸을 던졌다. 여자도 따라 몸을 던졌다. 어떤 근거도
없었지만 둘은 같은 곳에서 만날 거라고 믿었다.
그것이 100번째였다. 그리고 드디어 101번째야 둘은
다이빙 선수 커플로 태어났다. 오랜 사랑의 결실이었다.
---「몸을 던진다는 것」중에서

심해아귀는 너무 어두운 데 살아서 평생 짝을 못 만나는
경우가 있대요. 근데 한번 만나면 평생 같이 간대요.
너무 어두워서, 잃어버릴까 봐. 그래도 밝은 수면으로는
올라오지 않는대요. 너무 어두워서...가 아니라 너무
못생겨서. 남들이 놀랄까봐. 둘은 괜찮은데.
---「심해아귀」중에서

아무리 뻔한 사랑도 이번에는 다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뻔한 사랑은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사랑에 관한 단상들」중에서

한 여친에게 한번 사용한 문장은, 다른 여친에게 절대
쓰지 않는 남자가 있었다. 여자를 만날수록 남자는
점점 과묵해져 갔고, 그를 좋아하는 여자들은 갈수록
늘어갔다.
---「여자들 혹은 남자들」중에서

한때 모든 것을 당신이라 부른 적이 있다.
이제는 사물이 기억하는 만큼만 당신을 기억한다.
사라지는 것들로 당신이 보이는 계절, 가을이다.
---「가을」중에서

조금만 나약해 보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충고를
퍼부어대는 사람들 때문에 아무에게나 나약함을
들키지 말아야 한다고 그녀는 내게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어떤 나약함을 들킨 것일까?
---「충고유발자」중에서

빨강 토마토는 빨강만 반사함으로써 빨강 토마토가 된다.
무엇을 거부하느냐가 토마토의 색깔이다.
....
빨강 토마토는 빨강을 거부함으로써 빨강 토마토가 된다.
당신은, 당신이 거부하는 것이다.

<b>거의 모든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b><br/><br/>이 책의 저자는 서울대 언어학과를 나와 지금 글쓰기에 전념 중인 전업 작가다. 몇년간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들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묶었다. 이 책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거의 모든 사랑’이다. 1장 ‘사랑 혹은 이별’에서는 연인끼리의 사랑을, 2장 ‘농담 혹은 진담’에서는 세상 모든 것과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시의 형식을 차용한 에세이를 통하여 저자는 때로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사랑의 아이러니를 이야기하고, 때로는 촉촉한 감성이 묻어나는 필치로 사랑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br/><br/><b>사랑을 천천히 돌아보는 시적 에세이</b><br/><br/>사랑에 빠져있는 동안에는 누구도 사랑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별이라는 통과의례를 빠져나오고 나면 누구나 사랑을 추억하거나 그 사랑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이 책은 지금 사랑에 빠져있거나, 지금 사랑을 빠져나왔거나, 혹은 사랑을 막연히 꿈꾸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저자의 말에서 저자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한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내가 사라지게 되고, 그런 과정을 겪고 사랑이 떠나고 나면 우리는 예전의 나를 찾지만 예전의 나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그래서 결국, ‘사랑을 찾는다는 것은 나를 찾는 과정일지’ 모른다고...<br/><br/><b>때로는 농담처럼, 때로는 연애편지처럼</b><br/><br/>‘그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아는게 없어서 /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 이제 다 아니까.’ 31페이지에 나오는 ‘그 사람’이라는 글이다. 사랑은 어쩌면, 이렇게 아이러니하다. 대부분의 이별이 가슴 아픔과 동시에 홀가분함을 안겨주는 것처럼. 이 책은 사랑과 이별의 아이러니와 닮았다.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누는 웃음기 가득한 농담 같다가,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절하게 써내려간 연애편지 같다. 저자는 그 과정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사랑이 남겨놓은 말들의 풍경을 탐색한다. 사랑의 롤러코스터를 즐기는 기분,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