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언제나 그러하듯 기상신호가 울렸다. 본부막사 앞에 매달아 놓은 레일을 쇠망치로 두들기는 것이다.
손가락 두 개 정도의 두께로 두껍게 성애가 얼어붙은 유리창을 통해서, 희미한 음향이 아련하게 들려오다가 그것도 이내 조용해졌다. 날씨가 추우니까 간수도 망치를 오래 휘두르기가 싫었던가 보다.
기상신호는 멎었으나 창 밖은 한밤중과 다름없다. 슈호프가 밤중에 소변을 보러 일어났을 때처럼 여전히 캄캄한 암흑, 암흑이다. 유리창에는 세 개의 누르스름한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두 개는 수용소 바같에 달아 놓은 것이고, 하나는 철조망 울타리 안에 달아 놓은 것이다. 어쩐 일인지 막사 출입문을 열러 오는 사람도 없고, 당번 죄수들이 막대기로 똥통을 들어 내는 소리도 아직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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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가 이처럼 극도로 악화되자, 병사들은 죽어 있는 말의 말발굽을 칼로 깎아 그 각질부를 물에 불려 먹었다. 물론 탄약은 한발도 없었다. 숲속에서 그들은 독일군에게 붙잡혀 포로가 되었다. 슈호프도 그들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는 숲속에서 이틀 동안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을 뿐이었다. 네 명의 동료와 함께 이틀 후에 곧 도망친 것이다. 며칠 동안 숲과 늪을 헤매다가 기적적으로 아군 부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함께 탈주한 다섯 명이 다 살아 남은 것은 아니었다. 두 명의 자동 총수는 그 자리에서 사살되었고, 한 명은 부상을 입고 도중에서 죽어 버렸다. 결국 무사히 살아 남은 것은 두 명뿐이었다. 그러나 그들 두 사람이 조금만 더 분별력이 있었더라면,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고 보고하여 아무 일 없이 넘어갔을 텐데 그들은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정직하게 이야기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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