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 생산 체제로 전환된 시장은 끊임없는 생산을 부추겼고, 얼마 안 가 수요가 공급을 감당해내지 못하는 상태로 진입하고 만다. 여기에 고도화되지 못했던 통화정책 등 다양한 원인들이 복합 작용을 일으키며 실물경제는 거대한 침체기에 빠져들었다. ……기업들은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상품을 포장하기 시작했으며, 제조사를 구분할 수 있게 로고를 만들고, 제품을 더욱 아름답게 디자인하면서 상품과 기업의 이미지에 경쟁력을 더해갔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부터는 최초의 상품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적인 브랜드는 이런 식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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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싼 소비재 중 하나였던 자동차는 할부 구매에 대한 수요가 상당했음에도, 업계를 장악하고 있던 포드의 반대로 현금 또는 딜러들에게 개별적으로 돈을 빌리는 방식으로만 구매가 가능했다. ……이에 존 라스콥은 1919년부터 금융전문기업 GMAC를 GM의 자회사로 설립하면서, 판매한 자동차를 담보로 잡는 방식으로 포드가 놓친 시장을 파고들기로 한다. ……결국 GM의 할부 정책과 다변화된 브랜드 전략은 자동차 산업에 있어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소비 욕망을 창출해냈으며, 이후 포드는 역사상 단 한 번도 GM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는 생산성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던 당시의 산업계에 나타난 다변화된 대중적 소비 시장접근이었고, 브랜드 전략에 대한 중요성을 증명해낸 하나의 사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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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생필품 제조사인 P&G는 고품질 세탁비누 옥시돌(Oxydol) 출시 2년 만에 대공황을 겪게 되는데, 신제품 홍보를 위한 기존의 대규모 마케팅이 더 이상 동작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제품을 알릴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한다. ……1933년부터 미국 NBC를 통해 송출된 [Ma Perkins]는 여성과 주부층을 겨냥한 휴먼 드라마로 주인공들이 극중 옥시돌을 언급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노출했으며, 방송 앞뒤로 광고를 붙여 주요 청취자들이 옥시돌 브랜드에 익숙해지게끔 했다. ……대공황 말미인 1937년에는 2억 달러 매출과 2700만 달러의 이익을 거두면서, 미국 최대의 생필품 제조업체임을 증명했다. 대공황이 P&G에게는 커다란 브랜드 모듈레이션의 장으로 작용했던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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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마무리되어 가던 1953년 도요타의 기술 임원을 맡고 있던 오노 타이치는 전쟁 특수가 사라질 때를 대비해 대대적인 생산 시스템 개선에 돌입한다. ……여기서 도출된 것이 도요타의 칸반(看板) 시스템이었다. 이런 도요타의 칸반은 절대적인 속도로 다음 공정을 밀어붙여야 하는 미국식 푸쉬 시스템 방식보다 훨씬 시장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었고, 오히려 더 높은 효율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실제 1955년부터 1957년 사이 도요타의 생산성은 3배 이상 늘어났으며, 1964년까지는 60%의 추가 생산성 향상을 기록할 정도로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이렇게 산업 생산력을 회복한 일본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제조 철학이 담긴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미국 브랜드들의 빈자리를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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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구글에서는 최근 방문자 수가 가장 많은 농구 관련 웹사이트나 어젯밤 펼쳐진 농구 경기 결과 등 검색 시점에서 가장 유용한 정보를 제공했다. 이를 랭킹 시스템의 일종인 페이지 랭크라고 불렀으며, 이런 기술력의 차이는 후발주자인 구글이 포화된 검색시장을 빠르게 치고 들어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1999년 하루 50만 건을 나타내던 구글의 검색량은 2000년 중반 하루 1500만 건까지 증가했고, 2000년 6월 야후에 검색엔진을 납품하면서부터는 하루 1억 건을 넘어섰다. ……닷컴 버블의 붕괴로 여전히 시장은 닷컴 기업들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지만, 구글과 같은 뛰어난 기업들로 인해 디지털 브랜드의 시대는 더욱 공고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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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2003년 디지털 저작권 관리 장치(DRM)를 도입하여 불법복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를 오픈했고, 출시 일주일 만에 100만 곡의 판매고를 올리는 등 엄청난 성공을 이끌어낸다. 5년 후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가 판매한 디지털 음원의 매출은 미국 최대 음반 유통망인 월마트를 추월할 정도였으며, 당시 미국 음반 시장에서 디지털 음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39.4%까지 높아진다. 이렇게 디지털 브랜드 패러다임은 수십 년을 이어오던 아날로그 미디어의 시대를 빠른 속도로 잠식해 들어갔고, 이전 시대의 브랜드 패러다임을 완전히 탈피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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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과 트위터가 SNS의 성공 가능성을 입증해내자, 곧이어 수많은 후발업체들이 등장했다. 특히 인스타그램과 스냅챗이 큰 주목을 받았는데, ……미국 시장의 3G 통신 보급률을 바탕으로 SNS를 사진,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의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이때부터 SNS는 게임을 제외하면 전 세계 모바일 트래픽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전 세계 온라인 인구의 약 59%를 SNS 플랫폼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는 곧바로 SNS 플랫폼의 방대한 사용자 데이터 확보로 이어졌고, 더욱 정밀한 개인화 서비스와 보다 효율적인 마케팅 채널을 탄생시켜, 그동안 개념적으로만 인지해오던 플랫폼과 사용자 간의 긴밀한 연결성을 초연결적인 브랜드 패러다임으로 가시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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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는 2015년 10월 오토파일럿(Autopilot)이라는 주행보조 기능을 상용화함으로써 업계 최초의 부분적인 자율주행을 선보였고, 구글 웨이모와 GM 크루즈, 우버 ATG 등과 직접적으로 경쟁했다. ……테슬라는 오토파일럿 기능을 앞세워 2016년까지 미국 전기차 시장의 45%를 장악했고, 7억 8000만 마일에 달하는 실주행 데이터와 매 10시간마다 쌓이는 1백만 마일의 데이터를 추가로 확보해내면서, 자율주행 알고리즘을 더욱 정밀하게 다듬을 수 있었다. 데이터가 스스로 판단하는 자율주행 기술은 내연기관 기술의 발전에만 의존해왔던 자동차 산업을 IT 기술의 영역으로 올려놓았으며, 초연결 브랜드 시대를 피부로 체감하도록 했다. 2017년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포드와 GM을 추월했고, 2020년에는 폭스바겐과 도요타를 넘어서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자동차 브랜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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