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사블랑카]의, 짙은 안개 낀 밤, 가스등 아래 남녀가 이별하는 한 장면을 떠올리며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모로코를 상상해보는 정도가 여행을 떠나기 전 내가 알고 있던 모로코의 전부였다.
알제리 역시, 알제에서 700킬로미터나 떨어진 가르다이아까지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느 잡지의 표지에 실렸던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그리고 튀니지는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가장 개방적이며 히잡을 쓰고 다니는 여성을 거의 볼 수가 없을 정도라는 사실이 역시 내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알고 있었던 전부였다.
이렇게 마그레브 3국에 대하여 거의 문외한이었던 내가 이 나라들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은 오래전 우연히 지중해에 면한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생긴 하나의 의문 때문이었다. 여행자의 눈에 비치는 지중해는 온화하고 평화스러운 바다일지도 모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바다는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동안 쉼 없이 이어온 침략과 전쟁의 무대이기도 했다.
따라서 역사를 공유하는 바탕에는 서로 다른 문화의 이식, 또는 충돌의 과정을 겪어왔던 것이 사실이며, 나아가서 그것으로 인한 문화적 갈등, 또는 동화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유럽의 이슬람 건축, 무슬림의 마을, 사원과 성당 등의 이슬람 문화가 어떤 갈등, 또는 동화의 과정 속에서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혹은 변용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래서 마그레브 3국의 이슬람 문화권으로 여행을 떠났다.
--- 「여행을 시작하며」중에서
긴 여정이 끝난 지금도 머물고 지나쳤던 풍경이 머릿속을 스친다. 참담한 자연에 적응하려는 끈질긴 인간의 의지와 삶, 그 단면을 보았다. 또한, 이곳이 아프리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번화한 도시의 한복판에 높은 담을 쌓고 천 년을 살아가는 메디나의 사람들, 그리고 카스바의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이 살고 있는 전통 민가는, 사막과 산악지대 그리고 도시 등 그 장소는 달라도, 그 한가운데에 서면 푸른 하늘이 보이고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한가운데의 중정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각 실들이 배치되어 전체적으로 ㅁ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 같은 전통 주거의 구성 기법은, 대부분 중정이 주거생활의 중심으로 기능하는 반면, 외부에 대해서는 지극히 폐쇄적으로 작용한다. 이와 같은 주거형은 비단 마그레브 지역뿐만 아니라 이슬람 문화권의 공통적인 유형으로 보인다.
흡사 우리들의 안마당과도 유사한 중정은, 신분이나 빈부의 차가 여실히 나타나는데, 화려한 문양의 세라믹으로 아랍식의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흙과 돌만의 소박한 경우까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마그레브 지역, 전통주거의 상징이었다.
한편, 식민지 시대를 거치는 동안 서구문화의 유입으로 유럽의 어느 도시를 모방한 듯 현대적 시가지가 건설되었다. 나아가서 독립을 계기로 시작된 근대화=유럽화를 향한 정치 사회적 흐름은 빠르게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스며들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도시의 메디나(전통주거군)에서 일어나는 무분별한 증·개축으로 이미 원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아파트라고 하는 새로운 주거양식이 점차 도시의 경관을 바꾸어가고, 부유한 계층의 유럽식 단독주택들이 일제히 지중해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비록 지방과 농촌은 겉으로는 옛날과 다름없이 보일지도 모르지만, 주택설비의 발전, 가전제품의 보급, 인터넷 등 바깥으로부터 불어오는 변화의 물결을 언제까지 외면하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 같았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뜨거운 태양과 사막의 열기를 피해 지하로 파고든 사람들의 마을이 떠오른다. 사원의 미나레트에서 아잔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그들에게 언제쯤 주거 근대화의 바람이 불어올지 기다려진다.
--- 「여행을 마치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