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연구가 문화적으로 형성된 개인의 인지적 편향이 맛 경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별한 연구결과뿐 아니라 주변을 둘러봐도 우리의 맛에 대한 선호가 사회문화적인 요소에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는 금방 알 수 있다. SNS나 대중매체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음식들의 놀라운 인기를 보자. 인플루언서나 ‘셀럽’이 ‘엄지 척’을 준 음식점 앞에는 어느새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유명한 경제학자 게리 베커의 이론에 의하면, 이 긴 줄 자체가 사람들이 그 식당의 음식을 먹고 싶어 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음식을 맛보기 전에 우리는 이미 긴 줄을 통해 그 음식 맛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그 줄의 일부가 되길 원한다. 인기 있는 작가의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에 나온 음식들은 어떤가.
맛은 사회적?시대적 윤리에도 영향을 받는다. 예전에는 이국적인 음식을 즐기는 사람이 세련된 입맛을 가진 미식가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제철이 아닌 먹거리보다 지역의 농장에서 직접 기른 채소와 닭 등을 찾는 사람들이 입맛이 더 세련되고 좋은 것으로 인정받는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패션처럼 맛에도 트렌드가 생기고 이 트렌드가 맛의 기준점이 된다. 그래서 한 역사학자는 맛을 담당하는 장기는 혀가 아니라 뇌라고 말한다. 문화적으로 만들어지는 뇌를 통해 맛을 평가하는 기준이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프롤로그―음식으로 풀어본 ‘맛’의 모든 것」중에서
연구팀은 동일한 재료로 만든 음료수에 다른 이름을 붙여 실험 참가자들에게 마시게 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일반인보다 맛에 민감한 전문 테이스터, 음식 소매상, 식이 전문가, 요식업 종사자였다. ‘겨울 향신료Winter Spice’라고 이름을 붙인 음료수를 맛본 후 그들은 뮬드와인mulled wine(뱅 쇼vin chaud), 정향, 블랙커런트, 계피 같은 플레이버가 풍부한 것 같으며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는 플레이버가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동일한 음료에 ‘상큼한 여름 열매들Refreshing Summer Berries’이라는 이름을 붙인 후 시음하게 하자 과일 향, 상큼함, 가벼움, 갈증을 해소해주는 요소들이 풍부하다고 평가했다. 똑같은 음료에 대해 내놓은 상반되는 평가가 놀랍지 않은가? 참가자들의 맛 경험은 음료의 이름을 보는 순간 그 이름이 그들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는 요소들에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샐러드의 맛, 이름에서 드레싱까지 _정소영」중에서
우리가 짠맛을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것은 소금의 주성분인 나트륨 이온이다. 모든 염은 이온 통로를 통하면서 맛을 줄 수 있지만, 나트륨이 짠맛을 주는 데 가장 강하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침 속의 주 전해질 성분은 나트륨과 칼륨이다. 정상적으로 혈액의 혈장 속에는 나트륨이 약 140mmol/L로 있는데, 침 속 나트륨 농도는 보통 2~21mmol/L로 혈장보다 낮다. 우리가 입안의 음식에서 짠맛을 느끼는 것은 침에 녹은 음식물이 제공하는 나트륨 농도가 침 속 나트륨 농도보다 높을 때다.
자신의 피가 입안에서 살짝 짜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혈장과 같은 0.9% 농도의 생리식염수도 약간 짠맛이 난다. 그런데 우리 입안을 적시는 침 속 나트륨 농도는 때에 따라 변한다. 침샘에서 침을 생산할 때 혈액에서 빠져나간 나트륨을 재흡수하기 때문에, 침 속 나트륨 농도가 혈액을 구성하는 액체 성분인 혈장보다 낮다. 침 생산 속도가 빨라지면, 나트륨 재흡수가 줄어들어 침으로 나오는 나트륨이 칼륨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아진다. 그래서 같은 농도의 소금기가 제공하는 짠맛도 식사를 시작했을 때는 살짝 짜게 느껴지다가 식사가 진행되면서 침 속의 나트륨 농도가 높아지면 덜 짜게 느껴진다.
---「샐러드, 짠맛과 단맛과 신맛의 미묘한 균형_성명훈」중에서
가장 맛있어야 할 엄마 젖에 단맛이 나고 에너지로 즉각 사용할 수 있는 포도당이나 설탕이 아니라 그리 달지 않은 젖당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젖당을 통해 아기에게 에너지원을 전달하려면 우선 엄마는 젖샘에 젖당을 합성하는 기능을 가져야 하고, 갓난아기는 엄마 젖 속의 젖당을 분해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아기의 소장에는 이 젖당을 분해하는 ‘락테이스’라고 하는 효소가 있다. 또한 젖당은 모유가 함부로 감염되지 않도록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세상에는 포도당을 사용해 번식하는 세균과 효모가 매우 많지만, 젖당을 통해 번식하는 세균은 몇 종류 되지 않는다. 엄마의 젖샘은 감염 가능성이 적은 젖당을 생산해 아기에게 전달해줌으로써 감염으로부터 모유와 아기를 지키는 방어술을 가진 것이다.
대부분의 포유동물은 이유가 끝나고 어미로부터 독립해 스스로 먹이를 찾게 되면, 락테이스의 분비량이 점차 줄어들다가 아예 없어진다. 젖당분해효소가 없어진 성인이 발효되지 않은 생우유를 마시면, 우유 속의 젖당이 소장에서 소화되지 않고 결장으로 넘어간다. 그러면 대장의 장내세균이 젖당을 분해하면서 가스를 발생시키고 설사, 경련 등이 일어난다. 젖당이 들어 있는 생우유를 먹어도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성인이 되었어도 락테이스를 생산하는 유전자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탄수화물의 단맛 _성명훈」중에서
사람들이 매운맛을 좋아하는 이유로 먼저 롤러코스터 효과가 있다. 어떤 경험이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부정적이었던 경험이 긍정적으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곧 싫증을 내기 때문에 더 자극적인 경험을 찾게 된다. 더 스릴 있는 롤러코스터를 타려고 하거나 더 매운 음식을 먹으려 한다. 매운맛에는 이렇게 중독성이 있다. 그리고 뇌는 매운맛을 통증이나 열감과 같은 자극 신호로 여겨 이를 가라앉히기 위해 엔도르핀과 도파민이라는 물질을 내보낸다. 우리 뇌 속에서 자연적으로 마약이 분비되는 셈이다. 고추에 있는 캡사이신이 점막에 있는 열을 감지하는 통증수용체를 자극하면, 우리 몸은 마치 뜨거운 것에 노출된 것과 같이 반응한다.
우리 몸은 고통과 위험을 감지하게 되고 이를 상쇄하기 위해 뇌에서는 엔도르핀을 분비하는데, 실제로 화상을 일으키는 열에 노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통은 완화되고 은근한 쾌감이 남게 된다. 이것은 마라톤 선수들이 장거리를 뛸 때 느끼는 희열, 곧 ‘러너스 하이’ 상태와 비슷하다. 이때는 스트레스도 줄고, 통증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로 장거리 경주를 한 마라토너들의 뇌 영상 촬영을 통해서 전전두엽과 변연계라고 하는 뇌 영역에서 엔도르핀을 만들어내는 것을 관찰했다. 요컨대 매운 음식을 먹으면 마라톤 선수가 엔도르핀에 의해서 느끼는 것과 비슷한 쾌감을 느끼게 되고, 더 많은 엔도르핀을 얻기 위해 계속 매운 음식을 찾게 된다는 뜻이다.
---「제육볶음의 매운맛은 미각일까 _성명훈」중에서
브리야사바랭의 《미식 예찬》은 와인의 맛에 관한 언어의 확장에는 큰 기여를 하지 못했지만 음식을 먹는 행위가 주관적 체험을 넘어 사회적 체험이라는 것을 밝힌다. 《미식 예찬》을 통해 강조되는 것은 단순한 먹는 즐거움은 ‘테이블에서의 즐거움’, 즉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하는 즐거움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먹는 즐거움은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가장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킨다. 식욕은 영양분 섭취라는 필요를 알리는 신호이고 그 필요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고통이 따른다.
반면 그 필요가 충족되면 “매우 강렬하고 즉각적인 만족감이 생성되면서 개인의 생존이 보장되고, 이는 종의 영속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하는 즐거움은 자연적인 것에서 벗어나 문화적인 것에 접속하는 행위다. 식사를 함께하는 즐거움은 단순히 먹는 즐거움이 아니라, 그 행위의 세련미와 그로 인한 만족감으로부터 발생한다. 브리야사바랭은 이 두 가지 즐거움을 명확하게 구별한다. 즉 테이블에서의 즐거움은 우리의 생존 욕구, 그리고 그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얻어지는 만족감과는 오히려 거리를 두는 것이다. 이 즐거움은 “실제로 욕구가 충족되는 순간보다 선행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하여 기대를 품게 만드는 식으로 표현된다”고 설명한다. 배를 채우지 않은 상태에서도 생기는 만족감이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이닝의 즐거움은 함께하는 즐거움으로, 미학적 체험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과 그 즐거움을 공유하도록, 서로 교류하고 특히 대접받은 요리의 좋은 점에 대해 토론하도록 부추긴다”고 말한다. 이는 맛이 어떤 형식으로든 언어로 유통되는 것을 전제한다. ‘혼밥’이 흔해진 요즘 시대에 먹방과 음식에 관한 SNS 피드가 넘쳐나는 현상이 바로 맛 경험의 ‘사회적’ 즐거움에 대한 갈망을 방증한다.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대신 미디어를 통해 맛 경험을 (시각)언어로 변환시키며 식사의 즐거움을 공유하는 것이다.
---「언어에 담긴 와인의 맛 _정소영」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