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들은 어찌 보면 내 삶의 편린 속에서 나를 찾아가고자 하는 반복된 되새김질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말실수를 하면 그것을 머릿속으로 되새겨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듯, 인생의 어느 영역이 실패였다고 판단되면 나는 늘 되새김질을 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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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펑펑 울었다고 했다. 다 자기 탓인 것 같았다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에게도 전화를 걸어 알려주었단다. 승호 귀에 문제가 있대, 라고.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이날의 어머니를 찾아가 울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눈앞의 건장한 구릿빛 근육질 청년이 보이지 않느냐고. 주변 사람들과 두루두루 원만하게 지내며 운동도 열심히 하고 카페 운영도 잘하고 글도 쓰며 열심히 잘 살고 있으니, 앞일은 걱정하지 말고 맘 편하게 키우라고. 보청기 또한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오해받을 만큼 티도 안 날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 pp.20~21
이 ‘귀 나이’를 다른 말로 청각적 능력, 줄여서 청능이라고 한다. 귀로 소리를 잘 듣는 것과는 별개로, 청능이 안 좋으면 들은 소리를 제대로 소화해내기 힘들다. 그래도 나는 ‘청능이 부족하다’라는 표현보다는 ‘귀 나이가 덜 먹었다’라고 하는 쪽이 어감이 더 좋아서 귀 나이로 이야기하곤 한다. 청능은 어떤 단순한 능력을 지칭하는 것 같지만, 귀 나이라고 하면 앞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긍정적인 가능성이 담겨 있는 것만 같다.
--- p.29
나는 이제 잘 안 들려서 소통하기 힘든 것보다 서로 집중해서 소통해야 하기 때문에 생기는 대화의 깊이를 소중히 여길 줄 알게 됐다. 즐겨 듣던 클래식 음악이 잘 안 들려서 힘들어하기보다 조용한 세상에서 책에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긴다.
--- p.33
이런 행동이 마치 초식동물의 되새김질과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소가 여물을 먹고 더 잘 소화시키기 위해 되새김질을 하듯, 나도 소리를 먹고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 되새김질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꼭 청각장애인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장애는 없지만 어떤 상황을 타개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당장 벌어진 상황에 너무 매달려 있기보다 한 걸음 벗어나서 심사숙고하는 모습은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서도 자주 볼 수 있었다.
--- p.49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자력 폭발 사건이 발생했다. 뉴스에서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방사능에 관련된 기사들, 현장의 처참함을 비춰주는 영상들, 그리고 일주일 늦춰진 입학식. 무사시노 대학교의 한국인 유학생 커뮤니티에서는 한국으로 돌아오니 마니, 입학을 일 년 늦춰야 하니 마니 하는 글이 많이 올라왔다.
나는 그 당시에는 만 열아홉 살의 근거 없는 호기랄까, 방사능이니 지진이니 하는 것들이 그다지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누출된 방사능은 좀 꺼림칙하다 쳐도, 고강도의 지진을 제대로 경험해본 적은 없었기에 땅이 흔들리는 느낌이란 대체 어떤 걸까 궁금하기까지 했다. 철이 없었던 게 다행이랄까. 방사능의 장기적인 위험성이나 잦은 지진 같은 재해 발생의 가능성보다는, 여전히 새로운 생활에 대한 설레는 마음이 더 커서 그해에 바로 입학하기로 마음먹었다.
--- p.123
지하철을 탈 때마다 매번 ‘삐약삐약’ 하는 소리를 내면서 개찰구를 지나가면, 그 순간마다 약간의 치욕감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부끄러운 느낌이 함께 들었다. 탈 때도 삐약삐약, 내릴 때도 삐약삐약, 할인받은 동행자도 삐약삐약. 이 정도면 지하철 병아리 파티다. 지금 생각해도 조금 부끄러워진다.
--- p.155
삶을 제대로 돌아보는 것은 인생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이어져 있다. 삶의 가치는 고학력에 돈을 많이 벌고 괜찮은 차를 모는 것과는 다르다. 내가 있는 장소, 내 주변의 사람, 내가 하는 일에 달려 있다. 현재에 충실하다 보면, 일본에서의 히키코모리 시절처럼 되돌아봤자 의미가 없는 후회는 자연스레 걸러진다.
--- p.202
인생을 살며 직면하는 다양한 도전 과제에서도,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사실을 이렇게 배웠다. 제자리에 그대로 있기보다는 한 걸음씩이라도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막연하게만 보이던 과업도 어느 순간 마지막 걸음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운동을 하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목표한 것을 이루고 나서 느낀 성취감은 정말 끝내준다.
--- p.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