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 그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 외근 경찰관에게 다가갔다. 경차의 동승자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아, 그 사람은 저쪽에 있습니다.”
외근 경찰관은 신호등 옆의 공중전화 부스를 가리켰다. 유리로 된 공중전화 부스 안에는 갈색 더플코트를 입은 고등학생 정도의 소녀가 서 있었다. 부스의 문을 연 채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같이 구급차를 타라고 했는데, 다치지 않았다고 하면서 말을 듣지 않더군요.”
“그래요?”
진나이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를 향해 가볍게 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존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얼굴은 분명히 그를 향하고 있으면서도…….
뒤쪽에서 외근 경찰관이 소리쳤다.
“소용없습니다. 저 여자애, 앞을 못 보거든요. 여기에 공중전화 부스가 있다는 것도 제가 가르쳐줬습니다.” --- p.17
사고가 발생한 지 사흘 후, 아야코가 경찰서에서 대기하고 있던 세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전 상황을 묻기 위해서다. 오늘 퇴근길에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하고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진전 상황……이라…….
나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사람이 죽었는데 원인도 찾지 못하면서 무슨 교통과 경찰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런 불만을 후쿠자와에게 터뜨릴 수는 없었다. 실제로 그후에도 잇달아 사고가 발생했고, 교사가 시험지를 채점하듯 형식적으로 서류를 꾸며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 p.83
‘……완전 굼벵이 사촌이시군.’
다음 커브 길에 이르기 전에 남자는 차의 간격을 조금 벌린 후, 헤드라이트의 하이 빔으로 앞쪽 운전석을 비추었다. 앞차에 탄 사람은 운전자뿐인 듯하다.
남자는 다시 하이 빔으로 위협하며 차의 간격을 좁혔다. 앞차는 이미 충분히 속도를 내고 있지만, 그의 목적은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운전이 미숙한 초보운전자를 놀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자꾸 재촉하는 게 싫었던지, 초보운전자도 과감하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앞차의 속도가 다시 올라갔다. 여기서 뒤처질 수 없다는 식으로 남자도 오른발에 힘을 넣었다.
그때였다.
다소 급한 커브 길에서 앞차가 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꺾었다. 그러자 젖은 노면 위에서 타이어가 미끄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위험해!’ --- p.103
“사고의 원인이 부모의 실수라는 건 분명하지만, 그들에게는 계속 불운이 따랐습니다. 나중에 의사가 그러더군요. 30분, 적어도 15분만 빨리 데려왔으면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때 그 불운만 없었으면 아이를 빨리 데려갈 수 있었을 겁니다.”
나오미가 멈칫거리며 입술을 움직였다.
“무슨 불운이었지요?”
그러자 그는 등을 쭉 펴더니,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고 나서 심호흡을 했다.
“평소에 쉽게 지나갔던 길을 그날은 지나갈 수 없었던 겁니다.”
쿵쾅! 심장이 한 번 세차게 방망이질한 것을 유지는 느꼈다.
“병원으로 가는 지름길에 약간 좁은 도로가 있지요. 하지만 차 한 대쯤은 충분히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거기에 불법주차해놓은 차가 있었지요. 내 친구의 차는 외제차로, 더구나 제법 큰 차였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었지요. 그는 당연히 경음기를 눌렀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더군요.” --- p.168
“생각보다 상처가 심합니다. 대체 눈에 뭐가 부딪힌 거죠?”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커피 캔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겁니다. 고속도로에서 이게 날아왔습니다.”
“이런……!”
의사는 미간에 주름을 잡고 고개를 두세 번 옆으로 흔들었다.
“가끔 있지요, 자동차 창문으로 물건을 던지는 한심한 사람들이. 하지만 고속도로에서는 그런 사람을 본 적이 별로 없는데요.”
“선생님, 마치코의 눈은 어떤가요?”
의사는 일단 시선을 피한 후 다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신이치는 알아차렸다.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상처가 너무 깊어서 시력이 돌아올 것 같지 않습니다.” --- p.190
“그 사람은 어디 있지요? 남의 귀한 아들을 치어놓고 모르는 척하다니!”
그쪽도 정신이 없는 것 같아서 돌려보냈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입 안으로 구시렁구시렁 말하더니 이윽고 입을 다물었다.
“그나저나 많이 다쳤나요?”
오다의 질문에 어머니가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좋지 않은 모양이에요. 병원에 온 후에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머리를 다쳐서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참입니다. 염병할! 만약 내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조바심이 극에 달한 듯 아버지는 연방 다리를 떨었다. 이 분노는 물론 가해자를 향한 것이리라.
“아드님은 헬멧을 쓰지 않았습니다. 만약 헬멧을 썼다면 이렇게 많이 다치진 않았겠지요.”
사고 자체는 그렇다고 쳐도 부상에는 자업자득인 면도 있다는 것을 오다는 넌지시 암시했다. 그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찼다. --- p.235
히가시노 게이고는 타고난 ‘스토리텔러’다.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작품을, 그것도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때로는 눈물이 쏙 빠지게, 때로는 가슴이 먹먹해지게, 때로는 손에 땀을 쥐게, 때로는 웃음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그의 장편도 좋아하지만 단편은 그보다 몇 배, 아니 몇 십 배 좋아한다. 『독소소설』『괴소소설』『흑소소설』 3부작에서 쓴웃음과 쿡쿡 웃음, 깔깔 웃음 등 온갖 웃음을 뽑아내더니, 이번 『교통경찰의 밤』에서는 연방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든다. 나는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손에 전해졌으면 한다. 그러면 한국의 엉망진창인 교통문화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 '옮긴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