뿐인가, 늘씬한 아가씨를 보았을 때 뭇 남성들은 "참 삼삼한데......"라면서 내심 탄성을 발하기도 한다. 때로 군침을 삼키는 남성도 있을 법한데, 어떻든 삼삼하다는 어사는 미각뿐 아니라 청각에서 시각에 이르기까지 의미 영역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삼삼한 아가씨'처럼 미각과 연관시킨 표현법은 얼마든지 있다. 인간의 성격을 음식 맛에 빗댄 표현법인데, 예컨대 싱거운 사람, 짠돌이, 달콤한 여자, 질긴 사람 등등 다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외국인들이 이런 우리말을 듣는다면 우리를 식인종쯤으로 오해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밥맛이다, 꿀맛이다, 죽을 맛이다를 비롯하여 달콤한 속삭임, 쓰디쓴 과거, 매운 날씨, 떫은 표정, 짠 점수, 신소리 등의 차원 높은 표현법을 이해한다면 그런 오해는 쉽게 풀릴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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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부는 동풍을 일러 '샛바람'이라 한다. 샛바람의 '새'는 방위로는 동쪽을 나타내고 시간으로는 맨 처음, 곧 새로운 시작을 나타낸다. 날이 새다, 설을 쇠다의 동사 '새'를 비롯하여 새벽, 새롭다의 관형사 '새-'와도 어원을 같이 한다. 샛바람을 한자어로 춘풍이라 함은 계절의 시작이 봄이기 때문이다. 샛바람이 일기 시작하는 초봄에는 실바람, 소소리바람, 꽃샘바람까지도 곁다리로 따라붙는다. 이른 봄 살 속으로 파고 들기에 살바람이요, 그래서 소름이 솟기에 소소리바람이며, 꽃이 피는데 대한 동장의 시샘이 고약하기에 꽃샘바람이라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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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쟁이가 입술을 털며 투투거리는 '투레질'도 일종의 배냇짓에 속한다. 투레질뿐 아니라 입으로 풀무처럼 바람을 불어대는 '풀무질'이나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죄암질(쥐엄질)', 시도 때도 없이 오줌을 싸대는 '쉬야질', 잠들기 전이나 깬 후에 부리는 '잠투세' 등도 역시 배냇짓의 일종이다.
성장하면서 아이는 여러가지 호칭을 불린다. '얼뚱아기'란 말도 그런 것인데, 둥둥 얼러 주고 싶은 재롱스런 아기를 두고 이름이다.
아무리 밉둥을 피워도 세상의 모든 아기는 부모들에게 '이쁘둥이'일 수밖에 없다. 만세를 부르듯 두 팔을 벌리고 새근새근 나비잠을 자는 모습이며, 팔다리를 휘저으며 '당싯거릴' 때도 이쁘기 한량없다. 뿐인가, 문짓문짓 배를 바닥에 문지르고 기어가며 '배밀이'하는 모습도, '아우타는 짓'이라 하여 먹을 것만 찾는 '밥빼기'를 할 때도, 공연히 트집을 잡아 '아망그릴' 때도 그 모든 행위가 부모들에게는 오로지 귀엽고 사랑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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