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이라는 표상을 빠른 속도로 한반도에 전염시킨 강력한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슈미트는 민족주의의 내부 동력장치를 이렇게 설명한다. “결국 이 무렵은 ‘국민’이라 불리는 적극적인 시민의식이 민족을 위한 만병통치약으로 제시되는 시대였다. 모든 백성은 민족 개조를 향한 연대에 참여하는 주체인 한에서는 평등한 지위가 된 것이다.” 백성 개개인의 상징적 평등(실질적 평등이 아닌)의 획득이야말로 민족주의 자체가 지닌 폭발적 잠재력의 중핵이었다. 즉 ‘민족’으로 호명되는 순간 모든 사람들의 다채로운 계급적?성적?문화적 차이가 일시에 해소되는 듯한 집단적 착시. 이것이야말로 민족주의의 위력이었다.
이러한 ‘민족’의 자기 이해를 규정하는 핵심적인 외부 조건은 바로 한국의 지리적 위치였다. 슈미트는 한국의 지리적 위치를 이렇게 묘사한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개의 제국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한쪽은 저물어가는 제국이었고, 다른 한 쪽은 이제 막 떠오르는 제국이었다.” 이 지리적 위치가 그 어느 때보다도 예민하고 치명적으로, 공동체의 핫이슈로 감지되었던 시대였다. 민족의 자기인식을 가장 촉진시켰던 것도 이 지리적 위치였고, 민족의 자기 인식을 가장 방해했던 것도 이 지리적 위치였다. 이 지리적 위치 때문에 민족의 자기인식을 시작했지만, 비로소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지리적 상대성을 인식했지만, 이 때문에 모든 외교적 자유를 끊임없이 위협받았고, 끊임없이 자기인식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전에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던 모든 관습이 이제는 점점 ‘중국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민족적’인 것이 아닌 이질적인 것으로 배척되었다. 중화주의의 해체는 곧 민족의 자기 인식의 신호탄이었다.
--- pp.8~9
나는 이 책이 ‘민족’을 전면적으로 재사유하는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하길 바란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아주 쉬워 보이면서도 막상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민족성이란 것이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개인보다 민족을 앞세우는 논리가 과연 정당한 것인가. 민족주의는 정말 민족의 행복에 기여했는가. 혹은 민족이란 것이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인가. 민족이 정말 ‘상상의 공동체’라면 우리는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현실의 공동체’를 사유할 것인가. 이 책은 미국에서는 극소수의 지식인들에게 읽혔을 것이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매우 ‘친숙한 주제’를 다루는 듯 하지만,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너무 많기에 무척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질 지도 모른다. 이 책은 처음부터 한국의 독자를 향해 씌어지진 않았지만, 한국의 독자에게 가장 절실한, 그러나 한국의 독자들에게 가장 진입장벽이 높은 책이다. 한국인에게 중요하지만, 한국인이 결코 대면하고 싶은 진실들로 가득 찬 이 책이 활기찬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한다. 슈미트는 외국인의 시선으로 타국의 민족주의를 분석함으로써 새로운 관점을 창조했다. 한국의 독자들은 ‘자국을 향해 외국인 되기’ 함으로써 슈미트의 관점을 넘어선 또 하나의 역사적 비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일방적인 피해자로 자민족을 인식하는 희생자 민족주의, 그리고 민족을 지나치게 이론적인 관점에서 극복하고자 하는 탈민족주의, 나아가 앤더슨이나 박노자식의 민족주의 비판을 넘어서는 관점을 창안할 수 있는 다양한 논쟁의 축제가 이루어지기를. 한국 민족담론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민족’에 관련된 이슈가 나올 때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집단적 흥분상태를 보인다는 것이 아닐까. 독도 이야기에도 위안부 이야기에도 『요코 이야기』에도 일본 정치가의 망언에도, 무차별적 흥분과 분노가 아니라 폭넓은 이해와 논리적 쟁점을 가지고 대화할 수 있기를. 수치와 분노로 가득 찬 ‘원한의 민족주의’를 벗어날 수 있을 때, 역사의 오류 자체를 담담히 인정할 수 있을 때, 집단적 피해의식이나 죄의식마저 역사가 가르쳐 준 ‘소중한 오류’로 끌어안을 수 있을 때. 100년 전 저마다 애끓는 동상이몽으로 ‘민족’을 사유했던 옛 사람들의 꿈은 새로운 역사적 상상력의 도화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pp.27~28
슈미트는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시기, 즉 개항에서 합병에 이르는 기간(1894~1910)이 한국근대사의 전반적 얼개가 완성된 중요한 시기임을 간파하고 있다. 슈미트는 이 시기를 바라보는 세 가지 버전의 역사적 내러티브를 제안한다. 첫째, 가장 두드러지는 내러티브로서 왕실 중심 서사. 이것은 고종을 둘러싼 드라마를 민족사 그 자체로 서술하는 관점이다. 고종과 민비와 대원군의 갈등의 드라마를 곧 민족서사의 핵심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두 번째 내러티브는 궁극적으로 국가 주도의 개혁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갑오개혁을 비롯한 다양한 개혁 법령과 제도의 재정비를 중심으로 민족사를 서술하는 관점이다. 1894년에서 1896년 사이, 660여 개의 개혁문서가 공포되었고 전대미문의 각종 명령이 융단폭격처럼 쏟아지면서, 지방 관료들과 백성들은 엄청난 혼란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단발령이다. 이 두 번째 내러티브는 사회 운영의 전반적 시스템 자체를 변화시키는 제도적 개혁을 가리킨다. 세 번째 내러티브는 정부주도가 아닌 민간주도로 진행된 민족주의 운동의 성장을 들 수 있다. 동학농민군, 의병, 애국계몽운동 등 인민의 자발적인 욕망으로 구성된 각종 운동들이야말로 가장 역동적인 민족국가 만들기의 과정으로 자리 잡았다. 슈미트가 주목하는 민족사의 내러티브 또한 바로 이 세 번째 버전이다.
민족사 서술의 중심적인 욕망은 민족사 자체를 최대한 합법적이고 장구하며 거대한 스펙터클로 창조해내는 것이었다. 그것은 ‘민족’이라는 주체를 확립하고 민족이 활동해 온 시공간을 최대한 넓히는 기획을 요구했다. 광대한 공간과 장구한 시간을 추구하는 역사의식의 확산 속에서 가장 주목받은 공간은 바로 간도와 만주였다. 민족의 역사를 구현하는 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기억의 창조’였으며, 공간과 시간의 창조이기도 했던 것이다. 민족이 존재했을 법한, 민족이 존재했으면 하는 시간과 공간을 확장하는 것이야말로 민족사 서술의 원동력이었다.
--- pp.98~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