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순신의 참 모습을 이야기한다
【제1장】 사람, 이 책은 누가 만들었을까
나는 규장각奎章閣 각신閣臣 윤행임이라 하네. 나를 잘 모를 테지? 상관없네. 오늘 이 자리는 나를 알리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만드는 데 참여했던 『이충무공전서』라는 우리 고전에 대해서, 그리고 그 책의 주인공 이순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마련한 것이니. 하지만 그에 앞서 나를 좀 알아주면 좋겠네. 나를 알림으로써 이 책과 함께 이 책을 만든 또 다른 두 주인공, 정조와 유득공도 자네에게 소개할 수 있어서라네.
---「큰 과일은 먹지 않고 남겨 둔다」중에서
오늘날까지 우리가 이순신을 기릴 수 있는 길을 닦아 준 『이충무공전서』는 정조의 명으로 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네. 책을 좋아했던 왕, 정조는 누구였을까?
---「과인은 사도 세자의 아들이다」중에서
『이충무공전서』를 소개할 때 빼놓지 않아야 할 인물이 또 한 사람 있네. 이 책의 인쇄를 감독하는 책임을 맡았던 검서관 유득공이라네. 그를 소개하기 전에 ‘이름’에 대해 같이 먼저 새기고 시작하겠네.
---「천하를 오랑캐라 무시하고 자기야말로 예의에 맞고 중화를 따른다 하니」중에서
【제2장】 글, 이 책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우리 조상들은 어떤 글을 썼을까 궁금하지 않나? 요즘 쓰는 글과는 어떤 것이 같고, 어떤 것이 다를 것 같나? 어떤가? 한글로 번역된 것이라도 조상이 남긴 옛글을 읽고 그 뜻을 헤아리기 위해 좀 알아야 하지 않겠나? 오늘 자네와 함께 찬찬히 살펴볼 『이충무공전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앞으로 또 다른 우리 옛 책을 읽기 위해서라도 어렵겠지만 같이 공부해 보세. 지금과 달라 생소하지만 옛글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그윽함이 있다네.
---「이순신의 글, 분란을 일으킨 쪽은 저희가 아닙니다」중에서
『이충무공전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을까? 앞서 보았듯이 『이충무공전서』도 기본적으로는 문집이네. 문집이라 함은 그 사람의 글을 다 모은 것이지. …… 평생 동안 글을 읽은 만큼 평생토록 글을 썼는데, 그 글을 모아 책을 엮은 것이 문집이네. 그들은 뒷날 자신의 문집을 편찬할 것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네. 편지를 쓸 때도 훗날 문집에 넣을 것에 대비해 꼭 따로 한 통을 베껴 놓았지.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중에서
정조는 나라에 공이 있는 사람들에게 각별한 정성을 기울였네. 특히 임진왜란 때 조선의 바다를 홀로 지키다시피 한 이순신과 병자호란 때 의주 백마산성에서 굳게 버틴 임경업을 가장 높이 평가했네. 그래서 두 사람을 기리는 책을 만들라고 명령하였지. 이순신에 대해서는 특별히 책 이름을 ‘집’이라 하지 않고 ‘전서’라고 이름 붙이게 했다네. 임금이 신하의 시문을 모아 책으로 엮어 내는 일도 흔치 않거니와 그 이름을 전서라 한 사례는 더더욱 없었네. 이순신을 흠모하는 정조의 마음이 얼마나 깊었는지 이 책 한 권으로도 능히 헤아릴 수 있네.
---「충절을 높이고 공로에 보답하는 일」중에서
【제3장】 기록, 이 책을 어떻게 읽을까
『이충무공전서』 속 윤음과 교유를 통해서 옛 임금이 내린 글의 형식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전하고자 하는 뜻은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같이 한번 보세.
---「윤음과 교서, 널리 전하는 말씀」중에서
『이충무공전서』 권1은 여느 문집과 마찬가지로 시로 시작하네. 이순신은 시인이었네. 옛사람들은 시인이 아니라도 글을 배운 사람은 누구나 시를 썼네. 그때는 농부이면서 장인匠人이었고, 세시歲時에 맞추어 악기를 들면 음악가였지. 양반들은 공부하는 학자이면서 관료였고, 글을 쓰는 문인이면서 거문고를 타는 음악가였고, 난을 치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고, 맥을 짚고 약을 처방하는 의사였다네.
---「시, 내일이면 이별이라네」중에서
무인에게 칼은 죽임의 무기이지. 그러나 동시에 칼은 죽음을 막는 살림의 무기이기도 하지. 무인에게 칼이란 생명이며 존 재 자체일 수도 있어. 늘 곁에 칼을 두고 살 수밖에 없는 전 장의 무인 이순신이기에 그의 시에도 칼이 등장할 수밖에 없 었던 게야. 그러나 산하를 피로 물들이겠다는 검명 속의 섬뜩 한 각오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네. 이순신의 시구 속 칼에는 깊은 시름에 잠 못 드는 무인의 심사가 묻어 있네.
---「검명,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중에서
현충사에 가면 『임진장초』라는 아주 큼직한 책을 볼 수 있을 걸세. 책 이름을 그대로 풀어 말하면 ‘임진왜란 때 올린 장계의 초본草本’이란 뜻이네.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조정에 올린 보고서인 장계들의 초본을 엮은 문서철이란 말이지. ‘장계’란 지방에서 근무하는 벼슬아치가 임금에게 올리는 보고 문서를 말하네. ……… 장계에서는 [난중일기]와 또 다른 이순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네. 일기 속 이순신은 조용한 성품이네. 글도 간결하네. 짧게 끊는 문장에서는 감정을 절제하는 것이 느껴지지. 감정이 표출되는 것을 단속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고, 말을 절제한다는 인상을 받게 되네. 장계는 사뭇 다르네. 꼼꼼하기 그지없는, 어찌 보면 장황하기까지 한 장문長文의 전투 보고서는 건조한 문체인데도 불구하고 감정이 짙게 배어 있네.
---「삼가 적을 무찌른 일로 아룁니다」중에서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들’이 누굴까? 전쟁터에서 쏟아지는 화살과 돌을 뚫고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하거나 부상한 이들. 전쟁이 발생하면 아군에도 사상자가 생기지 않을 수는 없는 법. 치열한 접전일수록, 큰 싸움일수록 아군의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네. 누가 주로 죽거나 다쳤을까? 때로 지휘하는 장수가 앞장서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직접 적과 병장기를 맞대는 병졸들이 아닐까? 장계를 살펴보면 이순신이 어깨에 총상을 입은 적도 있고, 이순신이 진실로 믿고 의지한 사람 중 하나인 정운이 전사한 경우도 있지만 죽은 사람 대부분이 노를 젓는 격군, 활을 쏘는 사부, 하급 지휘관인 군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네. 이들의 이름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힘써 싸운 자를 으뜸으로 논공하겠다」중에서
[난중일기]를 읽을 때, 이순신 이야기를 읽을 때 놓치기 쉬운 부분이 하나 있네. 우리는 이순신에게서 깊은 좌절과 빛나는 승리, 격정과 고뇌에 몸부림치는 극적인 영웅의 모습만을 찾는 것은 아닐까? 인생은, 세상은, 역사는 열정으로만 채워지진 않는다네. 냉정하거나 무덤덤한 일상이 더 많은 것이 삶이고 세상이고 역사일세. 평범한 일상이 없다면 비범한 순간도 없는 법일세. 한번 읽어 보게. 누구나의 하루하루처럼 [난중일기]에도 그런 날이 훨씬 많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될 걸세. 아마 그래서 이 일기가 더욱 재미없고 쉽게 읽히지 않을지도 모르겠네. 그러나 그런 일상을 이순신은 놓치지 않고 갈무리해 뒀네.
---「다시 무씨를 심도록 했다」중에서
【제4장】 길, 이 책을 어떻게 기억할까
이 글귀는 이 교서의 의미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고, 이순신이 왜 일등 공신일 수밖에 없는지를 간명하게 드러내는 것일세. 어려운 전고를 갖다 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공적이네.
“드디어 만 척의 왜선을 섬멸하여 그들이 좀먹어 들어오는 것을 막아 다시 삼한三韓의 백성을 살려 냈으니, 그 위대한 공에 누구를 비교할 수 있으랴?”
---「그 위대함을 누구와 비교할 수 있으랴」중에서
결국 선조는 “왜적을 토벌한 공로는 이순신, 원균, 권율이 1등이 되어야 마땅하다. 이 밖에는 다 삭제하라.”라고 지시해 그간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네. 이리하여 임진왜란 때 목숨을 걸고 적과 맞서 싸운 무장들 중에서는 명나라에 파병을 요청한 외교 인사까지를 포함한 18명만이 선무공신으로 선정되었네. 임금을 쫓아간 호성공신扈聖功臣은 모두 86명이었네.
---「공에 보답하는 도리를 잃었다고 할 만하다」중에서
도전과 실패, 재도전의 10년이 이순신을 구국의 간성干城으로 담금질한 것은 아닐까? 저 낮은 자리에서 시작해 승진과 낙마, 승리와 패배를 겪은 15년이 있었기에 참 지휘관 이순신이 태어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단박에 성공하는 것, 빠른 성과, 누군들 바라지 않겠나? 고난과 실패가 좋을 게 무엇이겠나? 그러나 실패와 고난, 그 자체는 좋지 않은 것이지만 거기서 배우는 삶의 자세는 다른 무엇보다 소중하네.
---「늘 붓을 던질 뜻을 가졌다」중에서
우리는 왜 이순신을 좋아하는가? 가장 크고 당연한 이유는 임진왜란이라는 국가 존망이 달린 위기의 순간에 나라를 구했다는 점일 걸세. 이순신은 이 한 가지만 두고도 오래오래 기억되고 칭송받고 존경받아 마땅한 위인이네.
그것이 다일까? 우리에게 이순신은 전쟁 영웅에 그치는 인물일까? 아니네. 요즘엔 이순신의 공적뿐 아니라 그의 일생을 배우려는 사람이 많은 걸로 알고 있네. 살아온 길, 살아 낸 방식, 다시 말해 사람을 대하는 자세, 일을 대하는 자세, 세상을 대하는 자세를 배우는 사람들이 있네. 이순신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리 말하더군. 이순신은 소통과 섬김의 지도자였다고.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다해 일과 사람을 대했다고. ……
이순신은 무엇이 ‘되려고’ 하지 않았네. 다만 무엇을 ‘하려’ 했을 뿐이네. 수군절도사도 삼도 수군통제사도 되려 하지 않았네.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되려 하지 않았네. 그저 군인의 임무를 다했네. 목민관의 책무를 성실히 했을 뿐이네. 내게 이익이 된다 해도 바른 것이 아니라면 마다했어.
---「다시 논하여 그의 마음을 동요시키지 말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