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때의 정거장은 몹시 한산하였습니다. 푸른 모자를 쓴 역부 두 사람이 대합실에 앉아서 낮잠을 잘 뿐이고, 심심하기가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나 점심때가 지나고 오후 2시가 지나니까,정거장에는 차차 사람이 모여들고 부산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남녀 학생,갓 쓴 늙은이,양복쟁이 신사,촌색시,신여성, 그런 사람들 중에는 보기에도 징그러운 생각이 드는 청국놈들이 누더기 같은 이부자리를 짊어지고 차료를 사는 것도 보이기 시작했다.
창호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놈들이 아닌가 하여 가슴이 성큼성큼하였습니다. 정거장 안은 더욱더 복잡해져서,여간해서는 아는 사람도 찾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수상한 놈들의 수효도 차차 늘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창호의 가슴은 겁을 먹어 방망이질치듯 두근거렸습니다. 그놈들이 지금이라도 당장 오는 듯 오는 듯 싶은데,이런 때 경찰서에서라도 나와 주어야지 우리끼리만 있다가 맞닥뜨리면 어떻게 하나 하여 얼굴이 누렇게 되고 정신이 아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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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바닷가 산언덕의 어두운 밤!
순희인 듯싶은 소녀의 울음소리를 듣고 뛰어들어가려는 최 선생님과 외삼촌과 학생, 이 세 사람에게 먼저 달려든 놈은 낌새를 채고 몰래 뒤로 돌아온 흉악한 청국 놈들이었습니다.
마귀 같은 놈들이 쇠뭉치 같은 팔로 뒤에서 꼭 껴안고 달려들었으니, 세 사람도 꼼짝없이 붙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쌍한 소녀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은 그들도 전신의 피가 끓어오르는 판이었습니다.
죽으면 죽었지 어찌 질 수가 있겠습니까?
"에잇!"
소리치면서 뒤로 덤빈 놈의 팔을 낚아 앞으로 넘겨 치고 불끈 솟으며
"덤벼라!"
하고 소리치는 사람은 운동으로 몸을 단련한 최 선생님이었습니다.
나는 새같이 몸을 빼쳤다가 번개같이 다시 달려들어서, 축구공 차던 발길로 불두덩을 차면서, 주먹으로 코와 눈을 얼러 때리는 사람은 운동 선수인 학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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