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그 친구가 슬레인에게 도단을 습격하지고 제안했다. 그 말을 할 때 형형하게 빛나던 친구의 눈동자가 아직까지도 슬레인의 마음속에 깊이 박혀 있다. 하지만 슬레인은 친구의 요구를 거절했다. 아직 병아리 마법사들에게는 힘에 부치는 일이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혈기왕성한 친구를 말리려 했으나 끝내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로부터 사흘 밤 뒤에 친구는 등에 단검이 꽂힌 채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부터 슬레인은 양심의 가책에 시달려왔다. 끝까지 말리든지 아니면 자신도 따라나섰어야 했다는 생각이 항상 그를 괴롭혔다. 그리고 지금 그와 똑같은 눈동자를 보게 된 것이다. 슬레인은 이것도 어쩌면 운명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 드러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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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시대.
광명을 주관하는 빛의 신 패리스와 어둠을 주관하는 암흑의 신 패라리스가 직접 통치를 하던 시대가 있었다. 두 신은 각기 수천 마리의 용들을 이끌고서 천상과 지상을 나누어 다스렸다.
패리스와, 그의 대리신이요 창조를 주재하는 대지의 여신 마파는 지상의 인간들에게 온기ㅘ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암흑의 신 패라리스와, 그의 대리신이며 파괴를 주재하는 마신 가디스는 지하의 그늘로부터 어둠을 피워올려 생명으 마지막을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그리하여 인간은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면서 신들이 이루어낸 평화의 시대를 마음껏 누리고 살았다.
몇 겁의 세월 동안 이러한 평온과 질서가 유지되었으니, 후세의 역사가들은 이 시대를 가리켜 '신들의 시대' 또는 '균형과 화평의 시대'라고 불렀다.
그러나 어느 시인의 말처럼 포만감이 지나치면 도리어 굶주림마저 그리워진다고 했던가. 평화를 포식하던 인간들 중에는 사악과 탐욕을 갈구하는 자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빛의 신을 거역하고 무리를 지어 국가를 만들더니, 곧 인근 국가에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야말로 암흑의 신이 노리던 바였다. 죽음의 숫자가 탄생의 숫자를 넘어설수록, 파괴가 창조를 압도할수록, 희망이 절망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면 칠수록 그 힘이 절정에 올랐을 때 세상은 파국의 서막을 열게 되었다.
마신들은 빛과 창조의 신에게 정면으로 대항하여 반역의 깃발을 들었다. 인간들의 하찮은 전쟁이 신들간의 전쟁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영원하리라 여겨졌던 신들의 세계에도 마침내 종말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 프롤로그 중에서
슬레인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디노는 한참 달리다가 사람들과 너무 거리가 떨어지자 잠시 서서 기다렸다. 싸우는 소리가 아까보다도 또렷하게 들려왔다. 저 멀리에서는 몇 사람의 그림자가 어지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저기군!'
디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그림자들을 응시했다. 바로 그 순간, 빨간 빛이 섬광을 일으켰다. 그리고 요란한 굉음이 디노가 서 있는 땅까지도 흔들리게 했다.
'아악!'
청력이 좋은 디노는 그 소리에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두 귀를 막았다. 뒤따라온 판이 귀를 막고 웅크리고 있는 디노의 어깨를 꽉 감싸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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