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의 주제는 왕과 양반들의 올바르지 못한 권력에 대항하는 백성들의 지혜야. 그런데 자라가 주인공인 이야기의 주제는 병든 용왕을 향한 별주부의 충성이지.
어? 그러면 토끼와 자라, 둘 다 주인공인 이야기의 주제는 무엇이지? 내용을 잘 생각해 보자. 토끼가 뛰노는 육지는 봄이 한창이며 생동감이 넘쳤지. 그런데 용왕이 살고 있는 용궁은 화려하지만 우울했어. 즉, 백성들의 삶은 생기가 있는데 왕과 양반이 모인 궁궐은 우울하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토끼는 반드시 용궁에서 살아 나와. 그러니까 이것 역시 왕과 양반들의 권력에 대항하는 백성들의 지혜가 주제인 거지.
누가 주인공이든 ‘토끼전’을 낳은 이야기들은 결국 백성들의 편인 거야.
--- p.28 토끼전의 고향 중에서
‘아하, 박첨지가 흥부로구나!’
이런 생각을 했을 거야. 당연하지. 우리가 잘 아는 놀부는 심술보가 하나 더 붙어 있어서 남이 싫어하는 일이라면 다 하는 사람이잖아. 호박에 말뚝 박고, 똥 싸는 놈 까뭉개고, 하나밖에 없는 동생 맨몸으로 쫓아내고……. 이런 짓만 하는 놀부가 착한 박첨지일리 있겠니?
그런데 아니야. 박첨지는 놀부야. 민란은 백성들이 못 살겠다고 괭이 들고 호미 들고 일어난 난리이잖아. 그래서나쁜 지주들에게는 제대로 앙갚음하지만 착한 지주에게는 그러지 않아. 평소 덕을 베푼 박첨지라면 백성들이 그렇게까지 했을까? 집안 식구들을 다 죽이고 집을 폐허로 만들어 버리는 그 잔인한 일을.
만약 박첨지가 착한 지주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말렸을 거야. 그런데 아무도 말리는 사람도 없었어. 이로 볼 때 박첨지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원한도 엄청 깊었음을 알 수 있어. 마을 사람들이 시체도 거두지 않고, 돈을 받고도 제사를 지내 주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일 거야.
--- p.49 흥부전의 고향 중에서
저 마을에 콩쥐가 살았다고 생각하니, 좀 이상해. 저 멀리서 콩쥐가 호미를 들고 나타날 것만 같아. 가지런히 땋은 머리를 등 뒤에서 까불며 가는 콩쥐. 그 뒤로 부스스한 차림에 하품을 쩍 하며 어슬렁어슬렁 따라가는 팥쥐. 마치 한 편의 옛날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아.
이 참에 우리도 옛날 이야기 하나 해 볼까? 콩쥐와 팥쥐의 여러 이야기 중에서 좀 색다른 이야기로.
특이하게도 콩쥐와 팥쥐의 역할이 바뀐 이야기가 있어. 이 이야기에서 콩쥐는 콩조지로, 팥쥐는 팥조지로 나와. 그런데 착한 콩쥐가 아니라 못된 콩조지, 못된 팥쥐가 아니라 착한 팥조지로 역할이 바뀌었어.
처음에는 어색한 느낌이 들 거야. 그런데 역할이 바뀐 이야기도 쏠쏠한 재미가 있어.
아마도 저승에서 팥쥐가 그랬던 모양이야.
“만날 나만 악역 하라는 법 있어?”
그랬으니 역할이 바뀐 이야기도 생겨나지 않았을까?
--- p.80 콩쥐팥쥐전의 고향 중에서
이제 홍길동의 생가터로 가 보자. 땅속에 뼈처럼 박힌 주춧돌이며 구멍이며 여러 흔적을 볼 수 있어.
참 신기하지? 생가터에 박힌 주춧돌이 5백년 세월을 훌쩍 넘어 우리에게 전해졌으니. 뿐만 아니라 그 주춧돌에서 자란 홍길동의 꿈도 우리에게 전해졌으니. 신분 차별이 없는 세상, 부자와 가난한 자 없이 다 같이 잘 사는 세상, 관리들이 백성들을 괴롭히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꿈. 그 꿈은 생가터에 박힌 주춧돌처럼 ‘홍길동전’에 촘촘히 박혀 있지.
홍길동은 백성들이 못하는 일을 대신 해 주었어. 백성들에게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관리들, 그 관리들을 혼내주었거든. 그러니 백성들은 얼마나 통쾌했을까?
--- p.110 홍길동전의 고향 중에서
춘향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춘향전’의 우스운 대목이 떠오르네.
암행어사가 된 이도령이 거지 차림으로 남원으로 올 때 있었던 일이야. 이도령이 어느 주막집에 들렀는데, 그 집 노인이 말하기를 춘향이 죽은 지 20일이 지났다는 거야. 이도령은 눈
물을 머금고 춘향의 무덤이라고 알려준 곳을 찾아갔어. 그 아름답던 얼굴이 한낱 백골이 되어 누웠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이도령은 무덤 앞에 엎어져 잔디를 쥐어뜯으며 통곡했어.
“애고, 애고, 춘향아! 애고, 애고, 내 사랑아!”
“누구여? 우리 어머니를 춘향이라 부르며 우는 놈이!”
어떤 남자가 호통치며 지팡이로 내리치네. 깜짝 놀란 이도령은 꼬랑지가 빠지게 달아났지.
--- p.144 춘향전의 고향 중에서
우물터를 지나 산성 위에 서면 굽이치는 남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여. 남한강은 온달산성을 휘감듯 흐르고 있고. 온달장군도 이 산성 위에서 휘둘러보았겠지. 북으로는 드넓은 고구려 땅을, 동남으로는 신라 땅을.
만약 신라군이 쳐들어온다면 남한강을 따라 온달산성으로 오게 돼 있어. 왜냐하면 동으로는 높디높은 죽령이 가로막고 있거든.
그래서 고구려는 온달산성이 필요했던 거야. 막히지 않은 땅으로 쳐들어올 신라군을 감시할 성. 그러니까 온달산성은 망을 보는 고구려의 병사인 셈이지. 신라군이 쳐들어오나 안 오나 늘 망을 봤을 테니까.
온달산성에서 온달장군을 만나 보니 어때? 바보 같지 않은 위엄을 느꼈을 거야. 꼭대기에서 사방을 휘둘러보는 그 늠름한 기상도.
--- p.167 바보 온달의 고향 중에서
‘심청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어. 심청이 뱃사람에게 팔려 인당수에 빠져 죽는 부분과 바다 속 용궁에서 연꽃을 타고 나와 황후가 되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부분으로. 앞부분은 무척 슬프지만 현실적인 이야기이고, 뒷부분은 행복하지만 환상적인 이야기지.
이렇게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연결시켜 주는 곳은 바로 인당수란다. 인당수는 심청이 죽는 곳이면서 심청이 다시 살아나는 곳이야. 그리고 불행이 최고조에 다다른 곳이면서 행복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지. 만약 심청이 목숨을 버리는 마지막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다시 살아나지도 행복해지지도 않았을 곳이기도 하고.
--- p.203 심청전의 고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