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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끗 B급 하루 일기
중고도서

삐끗 B급 하루 일기

: 하루 일기를 쓰는 이 시간,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시간

최정원 글 / 유별남 사진 | 베프북스 | 2021년 03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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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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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466g | 136*205*19mm
ISBN13 9791190546102
ISBN10 1190546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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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깨를 짓누르던 침묵의 단어! 문득 생각났던 너의 얼굴과 잔인한 향기가 담긴 메시지 한 통. 그래서 결국 말하지 못했고, 말할 수 없었던 마음들 모두, 어쩌면 처음부터 내가 나의 심장을 겨냥한 화살이었던 건 아닌지! 이젠 시간이 흘러도, 혹 무거운 침묵 속에 갇힌다고 해도 오늘 같은 뜻밖의 하루가 내게 다가온다면, 키 작은 깜장 머리 천사를 만난다면, 어리석은 믿음으로 기다렸던 날들도 빗물에 지워질 한 장의 비 오는 날의 수채화로 남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면 연습이 필요해. 망설이지도 말고 지치지도 말아야 해. 꼭!”

아무튼, 품절된 하루가 또 지나간다.
“변덕쟁이 연인처럼.”
--- 「비 오는 날, 작은 천사가 내게로 온다면」 중에서


베란다 의자에 앉아 창밖을 본다. 나뭇잎이 붉게 물들어 있다. 하루에 수십 번 같은 장소의 나무와 산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는데 사람의 무심함이 이런 걸까? 나무에 매달려 움직이지 않고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코알라처럼 난 무얼 하며 일주일 동안 집에 콕 박혀 있었을까?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동네 산책을 나갔다. 한 시인의 시구절처럼 초록이 지쳐 단풍이 붉게 물들어 있었고, 세 계절을 살아낸 은행이 곱게 익어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20년 전 우리 가족이 살았던 단독주택 앞에 이르렀다. 대추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처럼 사람의 키에 맞춰 등이 휜 나뭇가지에 대추알이 수줍은 듯 붉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한참을 대추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대추를 따던 그날이 떠올랐다.

(중략)

집으로 돌아오면서 문득! 평생 제자리에서 계절의 변화에 맞춰 싹을 틔우고, 붉은 열매를 맺고, 그 무게에 맞춰 열매를 떨구는 대추나무처럼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는 얼마쯤일까?

아무튼, 품절된 하루가 또 지나간다.
“붉게 탄 속마음처럼!”

--- 「대추나무 아래에서 문든 드는 생각」 중에서


결국 난 남들의 밤은 감당할 힘이 있었지만 숨은 동기가 없는 내 마음이 편히 쉴 밤은 감당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그럼 지금의 난 어떤 밤에,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 ‘벗, 별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달빛 한잔 마시고 싶은 밤’, ‘역사서를 읽으며 트로트와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밤’, ‘아무것도 바랄 게 없는 밤’일까? 그냥 ‘아기초록 잎에 앉은 풀벌레 소리와 방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엄니의 이슬비보다 가는 코 고는 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는 밤’, ‘아무 생각 없는 밤’이라고 해 둘까? 결국 이번 연령대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다 지나가고, 돌아올 수 없는 밤들이 한결같이 아름다운 것들로 치장되는 건 아닐는지.

아무튼, 품절된 하루가 또 지나간다.
“그냥 자장면 한 그릇에 자꾸 물 먹히는 밤.”
--- 「그때 나는 왜 이상의 시를 읽고 구름똥을 쌌을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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