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방안이 깃털 천지가 되었다. 그녀는 털 뽑은 닭을 씻고 피 묻은 손으로 내장을 꺼내어 내가 앉아 있던 유리 탁자 위의 접시에 올려놓았다. 나는 순간 벌떡 일어났다. 탁자 위에 지오반니 벨리니시의 소묘 복사본이 들어 있는 귀중한 책을 올려놓고 있었는데 책에 피가 튈까 봐 염려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리디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피는 얼룩지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 특유의 약간 심술궂어 보이는 표정으로 의미심장하고 에로틱한 말을 했다. “피는 꿀보다 더 달죠! 나는 피고 다른 여자들을 모두 꿀이에요!
그런데 나의 아들들은 지금 피를 싫어하고 꿀을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답니다.!”“사랑하는 브레통, 이 봄 나는 자꾸만 포르트가에서 즐겨 먹던 점심 식사가 생각나오. 처음 수확한 부드러운 콩이 있는 계절, 연하고 달콤한 콩을 월계수 잎과 카카오로 양념한, 정말 훌륭한 점심 식사가……. 1년 중 가장 민감함 계절, 포르트리가의 이 영양 많은 먹거리는 봄의 맑고 투명한 공기와 작고 부드러운 태양, 그리고 갈라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차가운 엉덩이와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있지.
--- p.162
달리는 음식을 통한 영감을 예술로 승화시켰지만 그런 영감은 마드리드나 파리, 런던이나 뉴욕의 고상한 레스토랑을 전전하며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달리는 천상 카탈루냐인이었다. 그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북동쪽 끝에 위치한 암푸르단 토박이로 그곳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항간의 견해에 의하면 암푸르단은 극도로 보수적인 지방이며, 트라몬타나(피레네 지방에서 불어와 몇 주일 동안 계속되는 강한 바람) 때문에 편집증에 걸릴 확률이 높은 곳이라고 한다. 달리는 그가 창안한 '편집광적 비판법'으로 자신의 그림 속에 편집증을 표현하는 동시에 제어할 줄 알았다. 피게레스, 카다케스, 포르트리가는 달리에게 마력을 소유한 신비의 장소로 다가왔고, 달리는 그의 작품에 그 마력을 불어넣었다.
--- p.9
달리..
'어느 날 저녁 피곤해서인지 이례적으로 가벼운 편두통이 찾아왔다. 그 때 우리는 저녁 식사를 막 마친 후였고 친구들과 함께 영화관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편두통을 이유로 마지막 순간에 영화관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갈라만 친구들에게 딸려 보냈다. 나는 테이블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일찍 잠자리에 들 생각이었다. 우리들은 방금 저녁 식사의 마지막 코스로 맛좋은 카망베르 치즈 (흰 곰팡이를 사용해서 만드는 프랑이스 카망베르산 고급 치즈)를 먹었다. 모두 사라지고 적막이 흐르자 방금 전 먹었던 치즈가 거의 액체처럼 흘러내릴 듯한 흐물흐물한 모습이 되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다.
나는 일어나 아틀리에로 가서 불을 켜고, 작업중이던 그림에 습관처럼 시선을 던졌다. 화폭에는 포르트리가의 잔잔한 풍경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분위기 있게 그려낸 이 포르트리가의 풍경이 어떤 관념을 위한, 어떤 충격적인 그림을 위한 배경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때는 거기에 구체적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넣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나는 다시 아틀리에의 불을 끄려고 했다. 그때였다. 나는 보았다. 내가 무엇을 그려야 할 것인지를. 내 눈앞에 2개의 시계가 떠올랐다. 아주 흐물흐물한...그리고 그 중 하나는 올리브 나무 가지에 슬프게 걸려 있었다.
---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