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니야. 뭔가 잘못됐어. 왜 오늘은 여느 때처럼 학교에 가지 않고 여기에 오게 된 것일까?’
나는 ‘여느 때’라는 말에 집착하며 마음속으로 수차례 되뇌었다. 그리고 비슷한 단어들을 기도문 외듯 줄줄이 떠올렸다. 여느 때, 평소, 평범한, 무난한, 상식적인, 전형적인, 상식적인, 무난한, 전형적인, 평소, 여느 때, 평범한…….
‘그래, 우리 부모님은 여느 부모님들처럼 평범한 분들이 아니었어…….’
돌연 마음속에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나는 애써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 버렸다. 그리고 다시 현관문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다행히 아빠가 울음을 그치고 이성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아빠는 빨간 가운을 입은 부인의 어깨를 붙잡지도 않고 서로 조금 떨어져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다시 창문을 내렸다.
처음에는 둘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말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속삭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대화 중에 내 이름이 두어 번 새어 나왔다.
“베서니가…… 베서니는…….”
그 뒤의 내용은 소리가 너무 작아서 무슨 이야기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부인이 아빠에게 무언가를 물어봤는데 아빠는 고개를 세차게 흔드시며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요. 베서니는 엘리자베스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나에게도 들릴 만큼 크고 단호한 목소리였다.
‘엘리자베스?'
나는 생각했다. 엘리자베스라는 이름 때문인지 아빠의 말투 때문인지 무언가가 내 마음을 아리게 했다. 엘리자베스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아주 중요한 사람인 것만은 분명했다. ---pp.12~13
“벌써 다 자란 아가씨한테 묘목을 사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모두가 나무를 심고 있을 때 아빠가 말했다.
“뭐라고요? 그럼 제가 3미터도 넘게 자란다는 말씀이세요?”
나는 농담을 던졌다.
“누가 아니?”
아빠가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말한다.
이제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나무 밑동에 말뚝을 박아 놓는다. 말뚝에 달린 나무판자에는 ‘베서니 일레인 콜, 11월 2일에 태어나다.’라고 쓰여 있다. 내가 태어난 해는 쓰지 않았다. 나는 13년이 지나서 또 한 번 11월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내가 세상에 태어난 날이고 또 한 번은 내가 누군지 진실과 마주하게 된 날이다.
“나무가 정말 아름답군요. 베서니와 똑같아요.”
엄마가 행복한 한숨을 짓는다.
사실 내 나무는 지금 비죽비죽 솟아난 어린 가지에 막 새순이 돋으려고 하는 상태다. 이런 나무를 보고 아름답다고 할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 하지만 가을이 오면 엘리자베스의 빨간 단풍만큼이나 눈에 띄게 자라리라는 것을 안다. 자기만의 방법으로. 나는 은행나무를 선택했다. 비범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단 하나밖에 없는 나무. 뜻밖의 일들을 이겨낸 강한 나무.
바로 지금의 나처럼.
---pp.359~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