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사상은 밑바닥 인간의 사상이다.밑바닥 인간에게도 사상이 있단 말인가? 그렇다 있다. 중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인간에게도 사상은 있다.... 그 어떤 고명한 철학자의 다변보다도 더욱 생생하고 감동적인 진실을 담은 사상일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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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느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 1970년 8월 9일
--- p.229
오늘도 보람없이 하루를 보내는 구나. 하루를 보내면서 아쉬움이 없다니. 내 정신이 이렇게 타락할 줄은 나 자신도 이때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 공장에서 완전한 재단사가 되기 위해서 내 스스로 절제할 수 없는 감정의 포로가 되기 전에, 한창 피어나는 사랑을 꺾어버린 것이다. 내 마음에 뿌리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줄기 없는 뿌리가 얼마나 더 존재하겠는가.‥‥‥부디 동심을 버리고 현실에 충실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