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라는 감수성 풍부한 시기를 기사라즈에 있는 기숙사에서 이태나 지낸 히로시는 죄수가 출소한 듯이 새 동네에서 자유의 공기를 실컷 들이마셨다.
큰길을 벗어나자 선거 포스터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지나다니는 사람이 적은 곳에 붙여 놓으면 누가 볼까 싶은 생각을 하면서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진지한 표정을 지은 아저씨가 승리 포즈를 취하고 있고, 옆에는 ‘지금 당장 일어서라’라는 슬로건이 적혀 있다. 히로시는 그 문구가 왠지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 같은 기분이 들어, 이 아저씨가 당선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 다닐 학교에는 불량학생이 있다. 게다가 몇 명 되지도 않는다. 그 불량학생이 다른 학생들을 대신해 학교를 유명하게 만드는, 이거야 말로 불량학생 만화의 정석이자 이상적인 상황이다. 그렇게 동경하던 불량학생 생활의 개막이다. ‘지금 당장 일어서라’다.
--- 본문 중에서
“야, 지금은 다들 입시 때문에 아주 예민한 시기야. 그런데 너처럼 머리 빨간 녀석이 전학해 와 봐라. 악영향 미치지.”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죠.”
“알 바 아니라니. 그런 빨간 머리면 다쓰야도 가만 안 둘 거야.”
그 이름을 듣고 잠깐 등골이 오싹했다. 아이돌 같은 얼굴의 금발머리. 그 녀석은 스쿠터로 사람을 들이받으며 웃어댔다. 그 놈과는 어떻게 해서는 한패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골치 아프다. 같은 편에 붙지 못하면 불량학생으로 지내려는 모처럼의 계획이 틀어진다.
그렇다고 똘마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대등한 입장이 되어야만 한다. 자칫하면 스쿠터에 들이받힐지 모른다. 얕잡아 보이면 계속 괴롭힘을 당할지도 모른다.
학교에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인간관계가 있다. 회사에서 직장 상사와의 인간관계가 스트레스라고는 하지만 폭력이나 이지메는 없다. 하물며 일을 잘 못했다고 해서 부장에게 팔이 묶여 스쿠터에 치이는 일은 절대로 없으리라.
검은 머리카락을 하고 등교해 ‘이 녀석은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범생이였다.’는 인상을 심어주면 바로 얕잡아볼 것이다. 히로시는 어떻게 해서든 빨간 머리카락을 사수하고 싶었다. 얕은 생각이지만 결코 양보할 수 없다.
--- 본문 중에서
다쓰야의 ‘가자’라는 신호에 따라 스쿠터를 파출소 앞에 댔다.
삣, 삣, 삣, 삐―.
파출소 앞에서 스쿠터 경적을 울려댔다. 그러자 그 경찰관이 나왔다. “뭐야, 너희들.” 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히로시와 모리키, 루팡이 일제히 똥풍선을 던졌다. ‘퍽’하고 첫 번째는 빗나가 파출소 앞에서 터졌다. ‘퍽’하며 가슴 쪽에 명중.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
“으악, 이게 뭐야.”
바로 똥냄새가 퍼져나갔다.
“윽.” 경찰관이 똥냄새에 숨을 멈췄다.
웃음을 터뜨리며 속도를 높인 두 대의 스쿠터는 잠깐 파출소에서 떠났다.
“이 녀석들 까불고 있어.” 경찰관이 자전거를 타고 힘껏 페달을 밟았다.
--- 본문 중에서
처음 와 보는 취조실은 텔레비전에서 보던 ‘우리들은 익살꾼’(1980년대에 인기 있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취조 코미디에서 보던 것과 마찬가지로 회색 탁자에 파이프 의자, 회색 사물함 위에는 동그라미 안에 ‘暴’(폭)이라고 적힌 골판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여기서 형사가 ‘엄마가 밤에 야식을 만들어 줘서’(1952년도에 만들어진 구보다 사토시窪田? 작사작곡
‘어머니의 노래’ 가운데 한 대목)하며 노래를 하면 완전히 구식 코미디다.
텔레비전과 다른 점은 코미디에서 보는 세트보다 훨씬 좁고 형사가 야쿠자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형사들이 모두 다 야쿠자처럼 생기지는 않았을 테지만 소년과의 에토(江藤) 형사는 아무리 봐도 오동통한 야쿠자였다. 햇볕에 그을려서 그런지 아니면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간이 좋지 않은지 모르겠지만 검은 피부였다. 깍두기 머리에 눈썹 위에서 관자놀이까지 5센티미터 정도 되는 흉터가 있었다.
--- 본문 중에서
히로시는 리셋하는 게 좋았다.
어렸을 때부터 이사나 전학이 많아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고 자극이 없어질 무렵이면 운 좋게 그곳을 떠났기 때문에 그런 버릇이 들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동네로 옮겨가고 싶어지는, 자극이 많은 새로운 생활을 원하는 버릇이 붙은 것이다. 그게 이 동네에서 떠나고 싶다는 또 하나의 이유였다.
지바에 있는 사립중학교에서 ‘불량학생이 되겠다’며 전학을 해 온 지 10개월만의 일이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