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요술상자와 같습니다. 그 상자에 들어간 것은 뭐든지 토끼가 되는 요술상자처럼, 결혼한 여자들은 다 똑같아집니다. 많은 친구들이 그 혐오스럽던, 자기만큼은 절대로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바람피운 남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남편의 외도만으로 이혼한 사람 한 명도 없습니다. 그 남루하기 이를 데 없는 남편이 바람피운다는 걸 알았는데 이혼 못하고 사는 바로 그 여자가 된 것이지요. 죄다 그 자리입니다. 결혼은 그 어떤 신여성도 억척스런 마누라로 만들어버리는 요술상자였습니다. (……) 이혼은 절대 안 돼? 못해? 애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아? 이게 우리 사전에 과연 존재할 수 있다고 상상이나 한 단어였을까요? 도대체 우리는 왜 이런 경악할 진실을 이제야 알았을까요. 도대체 우리는 왜 이 자리에 있을까요. 우리 인생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뭘 믿고 그렇게 오만하고 무지했을까요.
- 바람,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 --- p.17
바람피우는 것, 여자들은 마약처럼 생각하는데 남자들은 담배만큼 가볍게 생각합니다. 마약과 담배의 차이만큼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매춘과 바람에 대해 건널 수 없는 깊은 인식의 차이가 있는 거지요. 언제나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고 호기심도 자극하고 걸려도 그다지 심하게 벌을 받지 않을 거고, 한마디로 안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 남자들은 왜 바람을 피울까, --- p.35
바람의 문제를 일부일처제의 부당함의 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은 문제를 미궁 속으로 넣어버리는 것입니다. 사회적 약속에 대한 불이행을 추궁하는 자리에서 생물학적 원인을 내놓으면 어쩌란 말입니까. 결국 그 남편은 인간의 욕망을 담아내지 못하는 일부일처제의 희생양일 뿐입니다. 그 남편도 피해자가 되지요. 그 아내도 피해잡니다. 물론 상대 여자도 피해자지요.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잔뜩 있군요. 하느님 앞에 죄인 아닌 사람 하나 없는 꼴이 되는 것이지요. 그 제도 자체가 그렇게도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하는 것이라면, 바람피우지 않는 아내들은 욕망 따위는 없는 인간이거나 인간의 욕망 따위는 초월해버린 대단한 사람들인 거지요. 바람피운 남편에게 화내는 여자, 아이큐가 좀 딸리는 사람이거나 문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일부일처제 자체가 문제인데 그 남편에게 화내면 안 되지요. 이 이야기는 생물학적 고민의 자리가 아니고 사회학적 약속, 계약에 관한 것이지요. 스님이나 신부가 여자와 성관계 맺고 싶으면 파계하면 됩니다. 마찬가지지요.
- 일부일처제에 관하여, --- p.41
결혼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과 바람을 피우는 것은 범주가 다른 문제입니다. 동업을 해서 잘될 거라고 생각하고 벌인 사업이, 생각보다 잘 안될 수도 있습니다. 사업이 잘되도록 더욱더 노력을 하는 것이 정상적인 행동이지요. 노력해도 안 되면 사업 접고 헤어지면 됩니다. (……) 마누라가 맘에 안 들면 노력해보고, 그래도 힘들면 부부상담을 받아보고, 도저히 안 되면 이혼하면 됩니다. 남편의 바람은 내 의지 밖에서, 나와 무관하게 벌어진 일입니다. 그걸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쟁이 벌어지는 것, 유가가 폭등하는 것, 주식이 폭락하는 것……. 나의 의지 밖이지요. 전쟁이 벌어지면 피난을 가고, 유가가 폭등하면 최대한 아끼고……. 그 외에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꼭 내 탓이라고 하고 싶다면 이렇게 신의 없고, 우유부단하고, 정조박약에 지조불건전인 남자를 못 알아보고 남편으로 선택한 나의 안목을 탓하시길 바랍니다.
- 남편의 바람은 내 탓일까, --- p.117
부부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두 사람이 이제부터 늙 어 죽 을 때 까지 함께 공동체로 산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이거 없이 결혼생활 불가능합니다. 가끔은 딩크족으로 자기 월급 자기가 관리하고 생활비 반씩 분담하는 분들도 있지만, 아무리 칼같이 나눠도 완벽하게 공평하지는 못합니다. 아직까지도 여자들이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사고가 바닥에 깔려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둘이서 아무리 멋있게 살려고 해도 시댁이 가만두지 않으니까요. 시댁에 며느리 도리는 해야지요. 대부분의 부부는 공동경제를 유지하고 아이를 낳고 삽니다. 둘이 힘을 합쳐 누구 것이라고 이름붙이지 않고, 이름붙일 필요 별로 못 느끼고 공동재산으로 많은 것을 일굽니다. 이름붙이고 싶을 때 많지만 상대가 너무 야박스럽다고 할까봐, 이게 부부냐고 할까봐 못하는 경우도 많지요. 동산이나 부동산같이 경제적인 것도 있지만 미래가치로 환산되는 상대방에 대한 투자도 있고, 돈으로 환산 안되는 아이도 있지요.
- 왜 나는 이혼하지 못하는가 1, --- p.132
그런데 질문을 바꿔서, 정말로 아이가 없다면, 이혼했을까요? 아이를 이렇게 키워야겠다는 생각, 그런 거 다 버리면 이혼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아이 때문에 산다는 말은 사실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니,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지요. 이 정도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싶고, 사람들에게 멀쩡한 가정으로 보이고 싶고, 이혼녀라는 사회의 마이너가 되고 싶지 않고, 경제적으로 불안한 구조에 놓이고 싶지 않고……. 식당에 가서 일하는 것, 슈퍼에서 물건 담는 것 자신 없습니다. 세상이라는 거친 바다에 홀로 내던져지는 것이 너무 두렵고 또 남편을 남 주기 아까울 수도 있지요. 아이 때문이 아니고 이 모든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나 때문에 사는 겁니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아주 불쾌한 일이지요. 진실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진실은 굉장히 추한 것이지요. 하지만 정말로 나를 잘 들여다보고 나를 직시하면 그래서 진실을 직면하게 되면 의외로 문제가 건강하게 풀리기도 합니다.
- 내 인생이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 --- p.154
유부남과 연애해서 관계가 깊어진 처녀들, 이 신도들하고 같은 심정입니다. 진짜 믿었습니다. 이혼하고 올 거라는 것, 아니 이혼 안 해도 둘은 정말 사랑한다고 생각했지요. 사랑한다면 다른 것은 아무래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들이 다 사이비종교라고 뜯어말려도 본인은 정말 믿어서 그 자리에 있었던 겁니다. 결혼 같은 것 하지 않아도, 상대가 유부남이어도 사랑하니까 됐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자신이 있는 자리의 진실을 깨닫습니다. 이제 깨달았지만 쏟아부은 게 너무 많습니다. 손 털고 현실로 나갈 수가 없게 된 거지요.
- 불륜중독증, --- p.186
남편이 바람을 피울 경우 그 아내에게 모든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으로부터 정서적, 감정적, 경제적으로 독립하세요. 돈 벌어오는 기계라고 생각하세요. 이젠 당신의 인생을 사세요.”
바람피운 남편 응징하자고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렇게 해야 견딜 수 있고 살 수가 있으니까 그런 충고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서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그 사람은 내게 의미가 없는 사람이라는 얘기지요. 남편이 바람을 피우거나 내 속을 계속 끓이면 죽을힘을 다해 남편으로부터 마음을 거두려고 노력합니다. 잘 안 되지요. 그래서 다들 지지고 볶는 글들을 올리겠지요. 그런데 이것도 시간이 가면 해결이 됩니다. 어느 날 시간이 지나고 내 마음의 상처가 아무는 어떤 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편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 애들 아빠에 불과한 늙은 남자가 되실래요?, --- p.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