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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의 맨 앞줄에서
중고도서

백악관의 맨 앞줄에서

한국여성언론인연합 역 | 답게 | 2000년 05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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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05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459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5741272
ISBN10 8975741273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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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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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자는 언론인으로서의 사회적 위치를 우월하게 생각한 나머지 마치 부당한 정치권력에 맞선 순교자나 사회정의를 실현코자 하는 재판관 또는 배심원인 체한다. 나는 그런 기자들에게 최대한 그 같은 생각을 억제하고, 가능하면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와 국익에 봉사하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 서문에서
미국 대통령에게 있어 기자회견은 아주 중요하다.

'아무리 불완전할지라도, 대통령 기자회견은 특권이 아니고 민주주의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아마도 모든 대통령은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 사실을 완벽하게 받아들인 대통령을 만난 적이 없다. 우리 기자들은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싶어하는 모든 미국민들의 대리인으로서 대통령에게 질문하는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기자란 의문의 여지 없이 양방향의 교류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국민과 국가를 위해 질문하는 동안에도 동시에 우리는 또한 미 국민들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대통령에게 알릴 수 있어야 한다.
--- pp.13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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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토머스가 백악관 최장수 기자라서 이 영예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여전히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고 감히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계산으로는 백악관에서 그녀는 1만 번 이상의 아침을 맞았고, 수천 권의 공책을 썼고, 수천 컵의 커피-아마 그 중 몇 잔은 백악관 직원들이 직접 타주었을-를 마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녀는 타협하지 않습니다. 백악관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그녀는 대들보 입니다. 그녀는 두려움 없는 온전함으로 일관성 있게 정부를 견제하고 있습니다.
--- 클린턴 대통령
우리 기자들이나 편집인들은 결코 만족을 모르는 부류에 속한다. 예를 들면 동료인 AP 통신의 프란 로윈과 나는 끊임없이 재키를 관찰했는데, 그녀는 우리의 끈질긴 추적에 질렸는지 자기 남편에게 우리를 백악관에서 멀리 격리시켜 놓을 수 없는지 물었다고 한다. 그녀는 아마 명목상으로나마 어디 머리 외국에라도 일을 주어 우릴 내보낼 길이 없는지 물어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재키에게 서면으로 인터뷰해 줄 것을 신청한 적이 있는데, 그녀는 이렇게 잘라 말했다.

''사람들은 우리들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캐롤라인의 조랑말인 마카로니에 대해 듣는 것에도 식상했을 텐데요. 무엇이 더 궁금한가요?''

물론 사생활을 지키려는 그녀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녀는 헌신적인 엄마였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백악관 생활 중 어떤 점이 가장 좋으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내 남편이 위대한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정치보다 아이들의 올바른 어머니가 되는 일이 우선'이라며 말을 이었다.

''나의 생활에서 공적인 부분이 아이들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만듭니다. 만약 나에게 정치적 의무가 더 주어진다면 아마 내가 아이들과 가질 시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엄마로서 아이를 돌보는 일, 이것이야말로 내 첫 번째 의무인데도 말입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남편도 뜻이 같습니다.''

사실 케네디 가는 기자들의 취재에 더 높은 담을 치고 있었으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재키는 그녀의 모든 움직임을 취재하는 여기자들에게 대단한 봉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사생활은 항상 우리에게 매일 1면 기삿거리를 제공한 셈이니까 말이다.

당시 백악관에서 열렸던 두 파티가 내 마음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첫 번째는 케네디 취임 이후 9일째 되는 날 새로 임명된 각료들을 위한 일요일 만찬 리셉션이었다. 바가 있는 국립 만찬회장에서 열렸는데, 그 자리에는 칵테일과 알코올 음료가 제공됐다. 그런데 이것이 말썽이었다. 금주 캠페인에 동조하는 사람들, 특히 기독교 여성절주연맹에서 나온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던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 부부는 이 관행을 깨고 얼마 후 조심스럽게 다시 재개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이런 행사가 열리면 술을 마실 사람들은 위층에 설치된 바로 올라가야 했다. 여러분은 이 시대에 바를 가지고 문제를 삼는 사람들이 있다니 믿기 어렵겠지만 아무튼 이것은 그후 백악관의 관례가 되었다.

두 번째 파티는 1962년 4월 29일, 49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참석한 만찬이었다. 여기서 바로 케네디 대통령은 후에 명언이 됐던 말을 남겼다.

''저는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께서 혼자 여기서 저녁 식사를 한 것을 빼고는 바로 이 자리가 지금까지 백악관에서 있었던 모임 중에 가장 비상한 재능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만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날 저녁 주목할 만한 것은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인 리너스 폴링이 하루 종일 백악관 밖에서 핵무기 폐지를 주장하는 시위에 참가해 놓고는 시간이 되자 호텔로 돌아와 턱시도로 옷을 바꿔 입고 만찬에 참석했다는 사실이다. 케네디는 그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만찬장 안에 들어오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
--- 제4장 케네디 대통령에 대한 추억 전문
'소련 여행'이 내게 주는 의미

사실 나는 우연한 기회로 백악관 출입 기자가 되었다. 소련 여행이 그 계기가 되었는데, 그 여행은 내가 전국여성언론인클럽 회장을 맡고 있을 때 초대했던 러시아 대외교류문화협회 Soviet Society for Foreign Friendship and Culture의 회장인 니나 포포바 여사의 답례 초청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공산주의자인 포포바 여사를 우리 클럽에 초대했을 때는 1960년 5월로 우연하게도 국제적 긴장이 고조된 때였다. 미국의 첩보 비행기가 소련 영공에서 격추됐던 U-2 사건 직후, 또 파리 평화회담이 결렬됐을 때 미국을 방문했던 것이다.
포포바 여사는 검은 정장 차림으로 사상적인 연설을 했는데 연설이 끝나자 그녀는 여러 청중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누군가 그녀에게 물었다.

''어째서 당신 나라 여성들은 화장을 하지 않죠?''

그러자 포포바는 대답했다.

''만약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화장을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미국의 전국여성언론인클럽 회원도 소련 당국에서 연설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포포바는 이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곧 나를 소련 대외교류문화협회의 손님으로 초청했고 나는 1960년 10월, 3주 동안 모스크바를 시작으로 러시아의 피오트르 대제가 바다 진출의 관문으로 러시아 제국의 수도로 삼았던 성 페테르부르크, 지금은 원래의 이름을 회복한 레닌 그라드를 들러 타시켄트까지 소련을 일주했다.

나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대우는 극진했다. 도착하는 도시마다 나에게 꽃다발을 안겨 주었고 공장이나 학교, 농장 등을 방문하고 나면 다과회를 마련해 주었다. 통역을 맡은 사람은 대단히 친절하고 똑똑한 여자였으며 좋은 동행자였다. 우리가 타시켄트에 갔을 때 그곳에 차려진 요리는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음식을 생각나게 했다.

나는 차츰 지치기 시작했다. 여행이 막바지에 이른 3주째에는 너무 스트레스가 쌓였는지 무척 피곤했다. 물론 나를 맞아 준 사람들은 상냥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방어적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체제가 다른 그들과의 대화는 피곤한 일이었다. 내색도 못하니 속 또한 탔다. 관제 언론에 세뇌를 당한 러시아인들이 ''왜 당신들은 전쟁을 원하십니까?''라고 물을 때는 더욱더 그러했다. 결코 그렇지 않다고 미국을 변호하는 바람에 애국자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계속 내 나라 미국을 생각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친절했고 우호적이었지만 내 생전에 평화 공존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비록 소련이 붕괴되고 공산체제가 무너진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지만 결국 내 판단이 틀린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매콜》의 편집장인 허버트 R. 마이어스가 준비해 준 30가지 질문들을 늘 가지고 다녔다. 언젠가는 그녀가 대답해 주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소련을 떠날 때 나는 그 질문사항이 적힌 종이를 포포바 여사에게 남겨 놓고 왔다. 고맙게도 그녀는 편지형식의 답변서를 써서 워싱턴 주재 소련 대사관으로 이를 보내왔고 그 곳에서 영어로 번역되어 우리에게 넘겨졌다.

'토머스 부인에게'라고 쓰인 흐루시초프 부인의 편지형식 답변서에는 총 30가지 질문 가운데 10개 항목이 적혀져 있었다. 그녀는 몇몇 질문에 대해서는 개인 사생활에 관계되므로 대답할 수 없다고 했다. 그녀는 정치적인 질문은 피했고, 미소 냉전에 관해서는 외교적인 면을 고려했는지 답변을 회피하면서도 소련의 정치가들은 모든 소련 인민을 대변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그러면서 답변서를 통해, 소련 여자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행복하고 즐겁고 슬픔으로 그늘지지 않는 어린 시절을 갖게 되길 바라며, 소련의 어린이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밝은 희망과 자신의 야망을 이룰 수 있는 모든 길들이 펼쳐져 있다고 했다. 다만 한 가지 어린 생명들에게 걸림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이며 이 때문에 자신들은 전쟁을 증오하고 이와 같은 재앙이 소련의 어린이들과 전세계의 어린이들에게 덮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끝을 맺었다. 이러한 흐루시초프 부인의 서면 인터뷰는 《매콜》 5월호에 실렸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백악관 출입기자가 된 사연을 자세히 설명하겠다. 내가 소련에 있을 때,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유세가 한창이었다. 모스크바에 있는 미국 대사관의 기자실에서 나는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의 TV 토론을 지켜보았다. 지구의 반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흑백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는 대담 프로였지만 나는 케네디의 매력에 압도됐다.

장래의 미국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절로 난다. 1950년대 초, 나는 파키스탄 대사관의 한 파티에서 참석했을 당시 매사추세츠 주 상원이었던 그에게 집까지 바래다주기를 제안한 적이 있었다. 그의 성격이 활달하고 친절하면서도 아주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그런 부탁을 했던 것이다. 우리는 차 안에서 즐거운 담소를 나누었다. 그는 친절하게 나를 아파트 앞에 내려주었다.

그 다음 날, 케네디 상원의원과 동행했던 사실을 알고 있었던 친구가 그에 대해서 물어보앗다. 그러나 그녀에게 엉뚱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케네디 의원은 할 일이 그렇게도 없거나 아니면 멍텅구리 같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대답을 했을가?

케네디에 대한 호감도 있었지만, 그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후 백악관은 내가 가고 싶어하는 취재처가 됐다. 완고한 기자클럽을 상대로 투쟁했던, 경력이 화려한 나이기에 백악관 취재에 별 어려움을 느끼지는 못했다. 나는 매일 그 곳에 모습을 나타내는 일부터 시작했다. 고맙게도 UPI의 백악관 책임자인 메리만 스미티와 그의 동료 앨 스파이백이 나를 계속 지원해 주었다. 그때 내 나이 40세였고, 그 때부터 40여 년동안 일생의 후반기를 대통령을 취재하는 출입기자로 보내게 된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을 취재한다는 것은 일주일 내내, 그리고 하루 24시간 전부가 요구되는 일이었다.

나에게 첫 번째로 맡겨진 일은 조지타운 N가에 살고 있는 케네디 대통령 당선자의 가족을 취재하는 것이었다. 그 때의 인연으로 백악관 출입기자가 종신직이 되고 말았는데, 사실 문자 그대로 맨발로 뛰면서 시작했다. 신발이 닳도록 눈썹이 희도록 말이다.

나는 11월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바깥에서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지키고 서 있었다. 적어도 매일 한 번 대통령 당선자는 문 앞 계단으로 와서 그가 구성할 정부의 새 인물을 발표하곤 했기 때문이다. 당시 백악관 출입 여기자는 일반적으로 전문화된 사회의 컬럼니스트 정도로 봐주고 있었다. 나도 재키와 딸 캐롤라인을 지켜보면서 차기 영부인이 어느 오찬에 참석했고 그때 어떤 의상을 입었는지 본사에 보고했다.

추수 감사절 날 재키는 캐롤라인과 문 옆에 서 있었는데 그녀는 해산달을 맞아 잠시 플로리다에 있는 케네디 가家의 팜비치 별장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선거운동으로 지쳐 있었기 때문에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케네디가 N가의 집을 떠나 저녁을 먹기 위해 돌아왔는데 자정 직전에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재키가 조지타운 병원에서 존 F. 케네디 2세를 낳았다는 것이었다. 출산은 예정보다 2주 빨랐다.

케네디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황급히 돌아왔다. 그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많은 기자들과 사진기자들이 모여 있었고 시간이 흐르자 그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우리는 케네디가 병원에 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하루에 두 번씩 산모와 아기를 보러 왔다. 어는 날 나는 그를 붙들고 물었다.

''당신은 이 아기가 커서 미국 대통령이 되기를 원합니까?''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나는 다만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기만 바랄 뿐이오.''

선배인 메리만 스미티는 《편집자와 출판인Editor and Publisher》이라는 잡지에 존 F. 케네디 2세가 태어났을 때 내가 조지타운 병원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케네디도 나를 늘 그 자리에 지키고 서 있는 붙박이처럼 여겼다는 점을 기사로 쓴 바 있다.

어느 날 아침 케네디는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취임 전 간담회를 갖기로 되어 있었다. 그 날 내가 맡은 일은 N가에 가서 그가 출발했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때 케네디는 N가에 와 있는 나를 보더니 농담으로 한마디했다.

''당신, 내 아기 버리고 여기 왔군요.''

왜냐하면 항상 병원에 붙박이처럼 서 있었던 내가 그 곳을 이탈하여 N가에 나타났으니 당연히 그런 말을 할 만했다.

드디어 백악관 출입 여기자들에게도 남자들처럼 뉴스를 취재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공보 비서관인 피에르 샐린저가 케네디와 그 부인의 뉴스까지 담당한다는 발표가 있은 후부터였다. 이와 같은 소식에 남자 동료기자들은 투덜대며 불평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종전의 남자들만이 누릴 수 있었던 특권이 사라졌다는 뜻이리라. 지금까지 고위급 정치회합 등에서 남자들은 그들만의 독과점을 누려왔으나 이제 여성들에게 침범당하고 보니 불평 불만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샐린저의 발표를 계기로 여기자들은 하루에 두 차례씩 있는 '뉴스 브리핑'에 참석할 수 있게 됐다. 그야말로 하늘이 준 기회였다.

케네디가 마지막 대통령직 인수 단계에서 크리스마스 휴가차 팜비치로 내려갔을 때 스미티와 나도 그 곳에 따라갔다. 나는 나중에 갔었지만 그 때가 백악관 출입기자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내가 있을 자리에 당연히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니 내내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나는 기자단이 머물고 있는 타워 호텔에서 매일 샐린저의 브리핑 원고를 받아 그것을 송고했다. 샐린저는 팜 비치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브리핑을 했는데, 별로 예쁘지 않는 그녀의 통통한 다리가 사진기자에게 찍힌 다음부터는 긴 바지로 바꿔 입었다.

나는 재키뿐만 아니라 케네디도 취재하기로 했다. 나는 남자 전용 골프장에 잠입하여 마치 파파라치처럼 수풀 뒤에 숨어 케네디를 추적했다. 그 일을 두고 나중에 스미티가 나의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말했다.

''마치 여자 골프 스파이 같았어.''

나는 팜비치에서도 열정적으로 재키의 뒤를 따라다녔는데, 본의 아니게 그 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사건이 발생했다. 내용은 이렇다.

내가 인터뷰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해고를 당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재키가 아이들의 옷을 샀던 가게의 점원이나 혹은 미용사, 요리사. 그리고 파티를 위해 고용된 피아니스트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 모두 해고되거나 거래가 끊기고 말았다. 이유인즉, 쓸데없이 기자와 인터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아기기저귀를 파는 가게의 주인을 예외였다. 그 가게 주인은 나와 인터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거래가 이루어졌다. 그 이유는 그 가게가 그 지역에서 아기용품을 파는 유일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와 같은 가게가 하나만 더 있었다면 거래가 끊겼을 것이다.

재키는 수줍음을 타서인지 우리를 피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녀는 자신의 사생활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그에 비례해서 언론에 대한 반감도 커져갔다. 그녀는 백악관에 있는 동안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살아야 하는 자신의 현실에 타협하지 않았다.

대부분 여기자들이 취재하는 케네디 가의 세계나 그 후의 존슨 대통령이 주최하는 백악관 파티는 여기자들에게 대단한 기삿거리를 제공했다.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취재한 내용을 전화로 각 데스크들에게 불러주고 나서 우리끼리 자주 모이는 니노 식당을 가곤 했다. 거기서 우리는 스파게티와 쇠고기 요리를 시켜놓고 토론을 하거나 그 날 보고 들은 것에 대한 잡담을 자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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