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캐나다 오타와에서 유대인 부모의 여섯 자녀 중 한 명으로 태어난 파이어스톤은 이후 미국으로 옮겨가 몬태나주 캔자스시티에서 자랐다. 1967년 시카고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60년대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이 여성을 2등시민으로 취급하는 것을 경험한 그녀는 ‘뉴욕급진여성New York Radical Women’과 ‘레드스타킹the Redstockings’, ‘뉴욕급진페미니스트New York Radical Feminists’ 등 세 개의 페미니스트 조직을 만들었으며, 급진적 페미니즘 저널인 「Notes」의 편집자이기도 했다.
『성의 변증법』을 썼을 때 고작 스물다섯 살에 불과했던 파이어스톤은 이 한 권으로 단숨에 1960년대와 70년대에 정점을 이루었던 제2물결 페미니즘의 선구적 이론가로 부상했다. 그러나 베티 프리단이나 글로리아 스타이넘처럼 법적 평등을 최우선시했던 다른 여성운동가들과 달리 파이어스톤은 “생물학적 가족의 압제the tyranny of the biological family”로부터의 자유를 설파하며 인공생식으로 태어난 아이들을 공동체 가구에서 키우는 용감한 신세계를 그렸다.
아마존닷컴은 “프로이트와 마르크스, 보부아르, 엥겔스를 통합한 이 책은 여성을 계급으로 선언하면서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유일한 존재로 강제되는 한 열등한 존재로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에 생식수단을 장악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며 페미니스트 혁명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쟁을 펼친다”고 전한다. 위키피디아는 “그녀는 인공두뇌를 사용하여 실험실에서 인공생식을 담당할 것을 주장하였고 피임과 낙태, 국가지원 양육의 확산 등으로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해방시킬 것을 촉구했다. 파이어스톤은 임신을 ‘야만적barbaric’이라고 묘사하였으며…… 성별 선택과 인공수정 등의 출산 기술들을 예언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파이어스톤은 “경제적 계급의 타파를 위해 하층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생산수단을 장악하는 혁명을 벌여 일시적 독재를 강제하듯이 성적 계급의 타파를 위해서는 하층계급(여성)이 생식수단의 통제권을 장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성性이 인류의 생식을 전담해 양성 모두에 이익을 주는 것은 (최소한 선택조건으로) 인공생식으로 대체될 것이다…… 아이의 엄마에 대한 의존성(또는 거꾸로의 경우)은 일반적으로 소규모의 타인들에게로 분산될 것이며…… 노동분업은 (인공두뇌를 통해) 노동 자체가 아예 철폐될 것이기 때문에 종식될 것이다. 생물학적 가족의 압제는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첨예한 화두가 되고 있는 출산과 과학의 문제를 예고하며 페미니즘의 대표적 저서로 자리 잡은 이 책은 당시 페미니스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이후 모든 페미니스트들과 대학의 여성학 강좌 필독서가 되었다. 그러나 책이 베스트셀러로 부상하자 그녀는 유명인에 대한 대중의 요구를 거부하며 대중의 눈에서 사라졌고 이후 정신병원을 들락거리게 되었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정신병원 입원 경험은 그녀에게 1998년 단편집 『진공의공간Airless spaces』을 발표하게 만들었고 그 책의 뒷장에는 그녀의 개인적인 투쟁을 암시하는 글이 실려있다. “직업적인 페미니스트 저술가의 커리어를 거부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성의 변증법』 출간 이래 ‘진공의 공간’에 갇힌 자신을 발견했다.”
2012년 8월 뉴욕의아파트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된 그녀는 오랫동안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했으며 사망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학사), 동 대학원 철학과(석사)와 심리학과(석사)를 졸업하고, 2004년 미국 세이브룩Saybrook 대학원 심리학과 박사과정을 수학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강사와 인천여성의전화 초대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춘해보건대학교 간호학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여성주의상담가로 2002년부터 김민예숙여성주의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2012년에 창립된 한국여성심리학회 산하 여성주의상담연구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외도, 결혼제도의 그림자인가』, 『한국여성철학』(공저), 『여성과 철학』(공저), 『왜 여성주의상담인가』(공저), 『여성주의상담 구조화모델 워크북』 등이 있다. 역서로는 『여성의 예속』, 『나는 이혼한다』, 『정신통합』, 『여성주의상담의 이론과 실제』(공역), 『스캇펙박사의 평화만들기』(공역), 『모성의 재생산』(공역), 『여성주의와 상담』(공역), 『여성주의상담의 전복적 대화』(공역) 등이 있다.
서강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뉴욕시립대 대학원에서 여성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합동통신에서 강제해직당했다.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의 창간 편집위원이자 「문화일보」 기자, 부장, 여성전문위원으로 일했으며, 한국 신문윤리위원, 방송위원을 역임했다.
페미니즘 연극 『자기만의 방』(1993년)의 대본을 썼고 『한국에 페미니스트는 있는가』, 『엄마 없어서 슬펐니?』, 『나는 일하는 엄마다』(공저)와 시집 『외로워서』를 펴냈다. 옮긴 책으로는 『버자이너 모놀로그』, 『나는 감정이 있는 존재입니다』, 『힐러리 미스테리』(공역), 『여자를 우울하게 하는 것들』 등이 있다. 현재 사단법인 문화미래 이프 공동대표,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이다.